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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Feb 12. 2023

어쩌다, 시낭송 035

모든 일은 일어난다

I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도


간단히 아침 허기를 채우러 식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쇠가 돌에 긁히는 기다란 마찰음에 놀라 돌아보자 오토바이가 팽이처럼 돌고 있었고 바닥에는 우주인 같은 헬멧을 쓴 채 한 남자가 깊은 동면에 빠진 듯 누워 있다. 좌우로 차들이 달리고 혼자서는 도로밖으로 피할 수는 없다는 우려가 들 무렵 아스팔트 위에 일직선을 따라 오토바이에서 새어 나온 기름에 불이 붙어 남자의 몸까지 옮겨 붙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갑자기 남자는 겨우내 개구리가 봄을 알아차리듯 벌떡 일어나 깡충깡충 뛰기 시작하고 이제야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접촉차량에서 두 여자가 내려 운전수 여자는 웃옷을 벗어 불붙은 남자의 몸을 먼지 털듯 패대기친다. 조급한 마음만큼 소화는 더뎠고 남자는 뜨거움을 견디기 어려운지 아직 꺼지지 않은 몸에 밀착한 바지를 버겁게 벗고 있다. 조수석 여자는 한 손은 이마를 짚은 채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데 그 사이에 오토바이의 불길은 캠프파이어의 기억처럼 높이 솟다가 도로변 화단으로 옮겨 붙는다. 전신주로 가까워질 때쯤 가까운 미용실에서 한 여자가 달려오며 밀가루 같은 소화기를 뿌린다. 붉은 불꽃은 이내 흰 연기로 가득하다. 거의 진압되나 싶더니 오토바이 잔해에서 펑 소리가 나자 미용실 소화기 여자는 폭발소리보다 더 큰 비명소리를 내고는 사라진다. 오토바이 남자가 길가로 몸을 옮기자 안도의 숨을 돌리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저 오토바이 비싼 건데...

-사고 나고 저렇게 팔딱팔딱 뛰어도 되나...

-요즘 배달 오토바이들이 너무 위험하게 달려...

-세상에! 영화로만 봤지 정말 불이 붙네...

사방에서 경적음이 울리고 뒤엉켜진 도로를 뚫고 소방차와 앰뷸런스가 달려온다. 식당에 들어와 메뉴를 시키지도 않은 채 식사를 마친 사람처럼 나왔다. 그 사이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장의 바리케이드가 되어 버려 어떤 일이 이후에 벌어진 지는 모르겠다.

어떤 일도 일어난다.

어떤 일도 드러누워만 있지 않는다




II   동그란 식사


동그란 버거를 두 손으로 동그랗게 말아 쥐고는 동그란 탁자에 앉아서 동그란 컵의 가장자리에 입을 대고는 통창 너머로 보이는 간판에 박힌 동그라미 자음에 시선을 박은 채 먹는다.

-이응 이응 이응 히읗 이응

먹는 소리도 이응 이응처럼 들린다.

어린 시절 우리의 밥상은 지금의 네모난 식탁이 아닌 동그란 반상이었다.

그때는 밥상처럼 서로가 원만했는데...

내 몸에 있는 동그란 인체부위를 본다.

눈은 동그랗다.

별명이 단추구멍이니 작아도 동그란 건 동그란 거다. 우뛰!

콧구멍도 동그랗다.

그건 검지손가락이 각진 모양이 아닌 탓에 그러하다. 내 콧구멍 크기는 검지사이즈다.

배꼽도 동그랗다.

점점 우는 입모양에 가까워지는 건 비밀이다.

오늘도 동그란 내 몸을 바라보며 둥글둥글한 하루를 보내야지.




III   어두운 생각+부끄러움+후회=여인숙


https://youtube.com/watch?v=HuXUQhhTrZQ&feature=shares

여인숙_잘랄루딘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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