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Feb 14. 2023

어쩌다, 시낭송 037

커피는 3화다

I    커피에 관한 3분 스피치 해보실래요?


방송화법 시간.

교수는 말하기 발표 전 7분가량의 글쓰기 시간을 준다.

훌륭한 말하기는 단단한 글쓰기에서 나온다고 그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가 오늘 던져준 주제어는 '커피'.

짧은 시간이기에 폰으로 검색을 해보아야 그리 깊은 이야기를 엮기 힘들다.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에 천착할 기세인지 부지런히 노트에 적고 있다.

한 여학생은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차마 글까지 표현해 내지 못하였다고 해맑은 하얀 미소를 내민다.

한 덩치 좋은 남자는 자신의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 사랑을 한여름의 에피소드와 함께 들려준다.

한 키 큰 남학생은 별다방의 스토리텔링을 차용해 와서 카페문화의 명과 암을 피력한다.

한 이마 넓은 남자는 커피가 몸에 안 맞는 체질이라 사회생활에서 불편했던 점을 토로한다.

하나같이 모두들 커피에 관한 추억과 기억과 견해를 가지고 있음에 놀라웠다.

나는 이렇다 할 커피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없어서 6분가량을 멍하니 앉아 공상만 하고 있었다.

티오피는 커피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 앞뒤 한 자씩 뺀 건 아닐까...

요즘 자판기커피는 얼마일까. 예전에는 백 원 동전 하나면 충분했는데...

그러다가 30초 정도 남은 시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는 무언가를 합해주거나 무엇이 되도록 하지 않은가.

그리고 어떤 프랜차이즈카페에서 보니까 대중소로 사이즈를 나누는데 이 두 가지 영감을 조합해서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관점에서 대충 말해보지 뭐.

그리고 내가 발표할 차례가 왔다.

에라 모르겠다.

 



II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저는 커피가 삼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뇨! 싸마가 아니구요. 삼화페인트 할 때 그 3화입니다.

제가 말하는 삼화는 대화, 중화, 소화를 이릅니다.

첫째, 커피는 대화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나와 지금부터 대화를 나누자'라고 하지 않고 '커피 한 잔 할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가서 마주 보고 커피만 홀짝홀짝 마시다 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대화를 나눕니다. 잡담부터 험담을 지나 괴담까지 무수한 대화를 나누다가 대화거리가 떨어질 때 즘 일어납니다. 만약 커피가 없었으면 우리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뭐라고 해야 했을지 난감할 지경입니다. 커피는 대화의 가장 이상적인 매개가 됩니다.

둘째, 커피는 중화입니다.

가끔 글을 쓰기 위해 카페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집에도 책상이 있지만 제대로 추출된 커피를 마시는 탁자에서의 글쓰기는 그간의 혼돈의 시간들을 평평하게 만들어줍니다. 산과 염기가 서로 만나 서로의 성질을 잃게 하듯이 커피를 마시는 순간 일상의 불규칙한 리듬과 생각의 불안정한 리듬을 정리해서 중화시켜 줍니다. 사실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몸에 수혈해 글을 쓰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커피는 소화입니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서는 구수한 숭늉보다는 고소한 커피를 선호합니다. 무언가 두둑해지고 더부룩해진 위장에는 커피만 한 소화제가 없나 봅니다. 커피가 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둘러 돌아온 그 길에서의 걸음이 소화를 시키는데 심리적으로 소화되는 기분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소화는 해소와도 닮았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먼지처럼 쌓이는 심리적 피로감이나 잔 걱정들의 처리를 커피 한 잔으로 해소하기도 합니다. 쓰디쓴 커피 한 잔을 입술에 대고 그윽한 커피 향을 흠뻑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발표를 마치고 나자 누가 보냈는지 커피 기프티콘이 스마트폰에 도착해 있었다.  




III    113년 전 오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를 일제가 사형선고한 날을 기억합니다


https://youtube.com/watch?v=3OaXULtsdX4&feature=shares

농담_이문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