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처럼 벽에 걸려 있고 싶은 날에는
이른 새벽에 작업을 한다는 작가의 전시회를 보러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오롯이 작가의 손길이 닿은 시간대에 맞춰서 관객인 나의 눈길을 작품에 가져가기 위해서다.
나는 심히 원했으나 아쉽게도 정확하게 일치를 할 수는 없는 환경이었다.
새벽 4시부터 발길을 허용하는 갤러리는 없다.
기대대로 이른 시간이고 평일이라 아무도 없다.
작품들이 네모랗게 팔을 벌려 환대한다. (관객이 많은 시간대의 작품들은 다소 지쳐 보이고 웅크리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당연하다. 수많은 시선이 얼마나 대상을 혹사시키는가. 쳐다만 보아도 시들해지는 것을 그대도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오늘의 첫 번째 시선을 받은 그림들은 제각각 나에게 귀엣말로 속삭인다.
사물은 피로를 누적하지 않기에 처음은 진짜 처음이 된다.
그림들은 제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태생의 우열이 분명해서 놀랐다.
작가의 처지가 작품을 생산할 때마다 사뭇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마음이 웅장해질 때에는 캔버스도 운동장처럼 넓었고
작가의 마음이 옹졸해질 때에는 캔버스가 성냥갑처럼 좁았다.
이유는 작가도 답해줄 수 없기에 그림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너는 어쩌자고 이렇게 표정을 만들어 여기에 걸린 거니?
그림에게서 어떤 표정을 보았고 인간도 아닌 그림에게 따져 물었다.
-표상이라고는 들어보았는데 너처럼 표정을 읽어낸 인간은 처음이야. 고마워.
고맙다고는 하지 않았으나 처음이야라고 말하는 어미에서 어떤 감사의 뉘앙스를 들은 것 같다.
예술에 가까워질수록 까칠해지고 인간미가 떨어지는 것이 작품이기에 말랑해지려는 이 녀석은 예술과 멀어지고 있나 보다. 다시 보니 작품 오른쪽 아래에 붙은 가격표에 색깔별로 구비할 만큼의 고급 모피 값이 적혀 있다. 작품 몸값이 달린 전시회는 처음이라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건데... 프로의 세계...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건 친절한 가이드. 둘러봐도 카드 리더기는 없다. 문화상품권도 안 받겠지? 통신사 할인 안내문구도 보이지 않는다. 쿠폰 도장 카드도 눈에 띄지 않는다. 거래의 방식이 그대가 아는 그대로일 것이다.
작품 사이의 연결을 해 보려 했지만 그들끼리는 철저하게 분리해 놓아서 어떤 힌트도 들을 수가 없었다.
작가가 있었다면 그림 밖에 있는 이야기를 가장 예술가적인 톤으로 아름답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없어서 답답한데 없는 게 더 나은 순간이 있다.
예술에 무슨 정보가 필요하담!
그냥 두 눈과 옆의 그림으로 이동할 두 다리만 있으면 되는 걸.
게걸음으로 벽 라인을 따라 한 바퀴를 돌고 갤러리를 나왔다.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삼삼오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얼굴을 하고 건물에서 물감을 짜내듯 쏟아져 나왔다.
텅 빈 극장의 엔딩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통로 너머 한 인상 온화한 청년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반가워 손이라도 맞잡을 듯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나의 귀를 그의 입가에 가까이 가져간다.
-아니. 극장에서 핸드폰 불빛이 새 나오도록 켰다 껐다 하시면 어떡해요? 그것이 주변사람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아! 영화가 끝날 무렵 두 세 차례 급한 메시지 확인차 가리면서 열어본 것이 거슬렸나 보다.
아주 정중하면서도 짜증이 들어간 말투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생각을 안 해보았냔 말이 왜 이리 생각이 없는 사람이냐처럼 들린다.
요즘 친구들의 화법을 낯설게 경험하면서 어색해하는 나를 발견한다.
직설적이고 합리적인 투가 묘하게 잔상이 남는다.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기에 구구절절 사연과 이유를 단 둘이 다방에 마주 앉아 이해시키고 싶었으나 다방에 가자고 하면 방 보러 가잔 줄 오해할 듯해서 이내 생각을 접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래요. 조심해서 가리고 본다는 게 본의 아니게 불편을 드렸네요. 미안해요.
어깨를 가볍게 감싸며 다소 상기된 얼굴을 진화했다.
그는 생각보다 쿨하게 수용하고 옆자리에 놓인 목발을 챙겨 극장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