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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r 28. 2023

어쩌다, 시낭송 079

심심한 상태는 귀하다

I    나의 신선도는 심심함에 있으니  


심심하다.

이 상태가 참 고맙다.

일과 중 기회만 있다면 호시탐탐 심심함으로 나를 초대한다.

그냥 던져놓을 수만은 없는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심심한 상태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스마트폰을 비롯해 심심함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은 요즘은 더 어렵다.

단순히 할 일이 없어진 상태로는 부족하다.

손에 쥐어진 일이 없어짐과 동시에 지루함과 따분함의 질을 살펴야 한다.

심심하다는 순우리말이지만

心하다 혹은 沁하다로 고쳐 부르고 싶다.

마음과 마음이 마주한 상태라든가

마음 너머 마음을 헤집고 헤매는 행위라든가

어디론가 깊이깊이 스며들고픈 욕망으로 해석하고 싶다.

심심해 본 사람만이 아는 느낌이 있다.

깊은 연못과 같은 내 안의 내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를.

심심해지기 시작하면 정처 없는 나의 브라운 운동을 만나게 된다.

비로소 싱싱해진다.

외부의 불필요한 요구에 의한 운동이 아닌 자발적인 생동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의 싱싱함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는 날마다의 심심함 확보시간이다.

심심함이 내게 다가올 때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가장 바쁜 것이 가장 게으른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II    글을 안 쓰면 한 치 앞도 몰라 예전 그대로    


내 의지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요?

내일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점심을 먹을 때쯤에나 알게 되잖아요.

내 마음도 내가 모르겠어서도 있지만 내가 누구와 점심시간에 있다가 같이 점심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내일 내가 그 시간에 식사를 하지 못할 상황이라든가 입맛이 없다거나 그럴 기분이 아니라거나 뭐 하여튼.

이쯤 되면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이 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글을 쓴다는 것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우리를 열 치 앞의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 그렇지 아닐 거예요. 그쵸?   




III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https://youtube.com/watch?v=SncEnWGceB8&feature=shares

담쟁이_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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