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라는 사건
벚꽃 잎이 하나 떨어진다.
벚꽃 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벚꽃 잎이 하나 둘 셋 떨어진다.
벚꽃 잎이 하나 둘 세 네 대여서 일고 여덟아홉열 떨어진다.
벚꽃이 피는 것은 아무도 몰라도 벚꽃이 지는 것은 모두가 알아 버렸네.
벚꽃놀이에서 벚꽃이 하는 일은 쥐고 있던 수많은 잎을 하나 둘 씩 가지에서 떨구는 작업.
벚꽃놀이를 하면 벚꽃들만 놀이에서 배제되는 이상한 규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벚꽃 잎 하나가 바닥에서 튀어올라 날아간다.
벚꽃 잎이 증발하는 것일까.
애초부터 벚꽃 잎은 액체이기도 하고 빛이기도 해서
벚꽃이 피는 순간 세상은 보름처럼 환해진다.
그 벚꽃의 빛은 가슴마다 불을 놓는다.
삼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내 눈앞에 피어도 벚꽃만 할까.
벚꽃 잎이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비가 내리는 속도보다 느리게
눈이 내리는 속도보다 느리게
느리게 느. 리. 게. 슬로 모션으로 라르고 라. 르. 고...
벚꽃 잎은 떨어지면서 바닥에 몸이 닿지 않기를 기원하듯
누군가 잡아주기를 바라듯 천천히 추락한다.
이순간 벚꽃은 생물에서 현상으로 변하게 된다.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사건이다.
이것은 감성학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사건이다.
벚꽃이라는 사건!
누구에게 진다는 것은 이기고 지는 말에서 온 것이 아닌 것 같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은 벚꽃이 지는 모습에서 차용한 것 같다.
그것이 거짓일지라도
벚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임을.
세상 누구에게라도 져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벚꽃이 지는 모습이 결코 패배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탓이다.
이렇게 무수히 지고도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지는 것이 결코 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com/watch?v=CoesWIohiiI&feature=shares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_이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