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잔뜩 채워진 풍선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직 끝을 막지 않아 긴장은 살아있다. 손에서 놓치게 되면 브라운 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마다 소년은 이름을 붙여주었다. 대체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용언과 체언을 결합한 형태였다. 지금 입고 있는 상의의 색깔에 어제 먹은 점심메뉴를 합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지금 이 순간은 베리 페리 감자탕. 우연적인 조합은 인디 밴드 이름처럼 탄생했고 무언가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 같아 흥미로웠다. 상의 색깔이 지겨워질 때쯤에선 그날의 탄생화를 검색해 학명을 쓰기도 했다. 시큼한 옥살리스라고 부르면 이 순간이 예측 가능한 내 범주 안으로 편입되는 착각이 들게 되었다. 모든 순간들은 이름을 지어 부르던 욕을 지어 부르던 흘러갔다. 이제 시낭송대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막바지 연습과 집중을 위해 소년은 오늘은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시간을 규모 있게 사용하기 위해 계획을 세워본다. 계획은 세우는 순간 신기루가 되고 무지개가 된다. 계획은 애초부터 실천을 위한 설계도나 지침서가 아닌 해찰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어릴 적 밀린 숙제를 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은 아이처럼 공책을 펴놓고 연필을 들기 전 얼마나 많은 식전 공연이 있었던가. 코딱지 파서 책상 밑에 동그랗게 숨겨두기, 서랍 속 정리하다가 발견한 딱지 모양별 구분해 쌓기, 사인펜으로 팔뚝에다 로봇 그리고 잠들다가 흘린 침이 번져 온통 얼굴은 잉크 범벅이었다. 누가 뭐래도 그 행위는 숙제보다 시급했고 중요했다. 숙제는 기억이 안나도 산만했던 그 동작들은 남아있는 것만 봐도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소년은 계획을 적다 말고 연습으로 들어갔다.
시는 충분히 이해한 상태라 묵독은 생략하고 바로 소리 내어 읽는다. 현재의 소리 상태를 일차적으로 점검하고 조정하는 것이다. 이때 감각기관이 열리고 오감을 작동할 대비를 한다. 절대로 이 단계를 생략해서는 안된다. 밤새 달린 자동차도 멈춘 후에 다시 달리려면 시동을 걸어야 하듯이 연습이 시작될 때마다 기본 읽기 단계는 필수적이다. 낭송을 시작하는 순간 이전의 생각하기를 멈추고 신속하게 감각하기로 전환해야 한다. 생각하기로 빠지는 순간 이미지보다 시어 떠올리기에 매몰되어 경직된 낭송을 하게 된다. 생각은 감성보다 감정을 이끌어내기에 이는 낭송의 방향을 가로막는다.
소년은 마인드 컨트롤하듯 중얼거리며 본인이 정한 연습 루틴을 하나씩 해나갔다. 막막한 마음이 들수록 의미를 찾기 힘든 날일수록 머릿속이 지푸라기로 버석거리는 혼란의 시간일수록 직접 몸으로 밀고 나가는 행동만이 안갯속에서 의지를 구출하는 유일한 구명조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