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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속지 말고, 호스텔 고르기 A to Z

예약 사이트에서 멋져 보이지만 사실은 별로인 호스텔 거르는 방법.

베트남에선 1박에 몇 천 원, 심지어 물가가 비싼 유럽이라도 2만 원 안팎. 호스텔의 저렴한 숙박비는 사실 잘못 선택하더라도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 웃어넘길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쾌적한 곳에 머무르는 게 낫지 않을까.


아고다나 부킹닷컴 같은 예약 사이트에서 일렬 비교해 호스텔을 고를 수 있는 요즘이지만, 그만큼 사진은 멀쩡하나 시설은 별로인 호스텔을 고를 가능성도 높아졌다. 지난 몇 년 간 100회 이상 호스텔을 예약해 본 덕분에 이제는 이상한 호스텔(?)을 거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됐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자.(아 참, 아고다로 대표되는 일부 예약 사이트는 언제, 어떻게 접속해서 무엇을 먼저 클릭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장난질(?)을 치는데, 걸려들지 않는 비법은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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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블로그와 구글맵 리뷰 사진을 뒤질 것


예약 사이트를 들여다보면 웬만한 호스텔은 다 좋아 보인다. 하지만 호스텔 주인장이 포토샵으로 엄청나게 보정한 사진은 그냥 참고만 하자. 오픈 당시 모든 것이 새것이고 반짝반짝할 때 촬영해 둔 것일 수도 있다. 좀 더 생생한 날 것 그대로의 사진을 보고 싶다면 단연 블로그를 검색해 보는 것이 좋다. 특히 해외 호스텔의 경우엔 협찬이 끼어들 여지가 0에 가깝기 때문에 대체로 리얼한 사진이 올라온다.


바르셀로나, 방콕, 도쿄, 하노이 등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내가 예약할까 말까 고민하는 그 호스텔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한 블로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혹시 새로 문을 열어 아직 블로그 후기가 없다면 구글맵의 리뷰 사진을 꼭 참고하자.


그렇지만 블로그와 구글맵 리뷰에서 우리가 참고할 것은 오직 사진 그리고 호스텔의 객관적인 시설에 대한 설명뿐이다. 저녁마다 파티가 있어 재밌는 사람들을 만나 즐거웠다고? 아마 파티는 계속 열릴 수도 있겠지만 리뷰를 작성한 사람이 참여한 파티의 그 사람들이 우연히 괜찮았을 뿐이다. 베드 버그가 나왔다고? 이후에 방역을 해서 지금은 깔끔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밤늦게 돌아다녀 잠을 못 잤다고? 마침 이상한 숙박객과 한 방을 썼고 지금은 그/ 그녀는 없을 것이다. 스텝이 불친절했다고? 역시 그 스탭은 오래전에 그만두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런 거다.



1. 침대가 흔들리거나 불편하지 않은지?

2. 도미토리룸은 창문이 있고 환기가 잘 되며 쾌적한지?

3. 호스텔에 주방이 있고 냉장고와 식기류가 비치되어 있는지?

4. 위치가 심하게 외지거나 지나치게 시끄러운 곳은 아닌지?

5. 화장실과 욕실의 수가 부족하진 않은지?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수면의 질을 결정할 1과 2를 집중적으로 따져 보자.


드림큐브1.jpg 바르셀로나 드림 큐브(Dream Cube) 호스텔. 두터운 커튼, 개인 조명과 콘센트, 선반까지 갖춘 모범 사례다.



커튼은 필수, 없다면 자가제작


호스텔에 숙박하다 보면 혼성 룸(믹스드 도미토리Mixed Dormitory라고 한다)만 있는 곳이 많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성이라면 여성 전용 룸을 찾다가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여성 여행자라면 여자들끼리 숙박하는 것이 편하다. 사실 그간 경험한 바에 따르면 여성 전용 룸의 숙박객은 확실히 코를 고는 일이 적었다. 같은 여자끼리 한 방을 쓰니 옷을 갈아입기도 좋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찜한 호스텔에 혼성 룸만 있다면 침대에 개별 커튼이 있는지 꼭 체크할 것. 아무래도 커튼을 치면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안이 훤히 보이지 않으니 도난의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물론 귀중품은 반드시 락커 안에 넣도록 하자) 좁은 이층 침대라도 커튼을 치면 순식간에 나만의 작은 공간이 되고 의외로 꽤 아늑하다. 나 같은 경우엔 커튼을 치고 호스텔의 침대에 눕고 나면 어렸을 때 할머니댁 이불장 안에 몰래 들어가 놀던 기억이 떠오를 정도다.


커튼의 재질도 의외로 중요한데, 암막 커튼이 연상되는 두꺼운 것일수록 주변 소음도 잘 차단되고 내부가 비치지 않아 옷을 갈아입기도 좋다. 바르셀로나 드림 큐브(Dream Cube) 호스텔은 굉장히 두꺼운 커튼이 달려 있어서 일단 커튼을 치고 나면 꿀잠에 빠질 수 있었다.


간혹 반투명의 아사 면 커튼 같은 것을 도미토리 침대에 달아 놓는 호스텔이 있는데, 사진으로 볼 때는 뭔가 인스타그래머블하고 감성적인 느낌이 나서 좋아 보였으나 실제로 숙박해보니 바깥에서 내부의 움직임이 보여서 별로였다. 혹시 맘에 드는 호스텔의 침대에 개별 커튼이 없다면 커다란 보자기나 스카프를 챙겨 가서 침대에 늘어뜨려 시선을 차단하는 것도 방법이다.



침대 프레임, 두꺼울수록 칭찬해


그 다음 할 일은 도미토리 룸의 침대 사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재질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일단 침대 프레임이 가느다란 철제라면 위 또는 아래에 함께 숙박하는 낯선 누군가가 뒤척일 때 침대가 흔들릴 수 있다. 침대가 꽤 두꺼운 나무 프레임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그만큼 흔들릴 확률도 낮다.


일본 현지인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도쿄 우에노 주변의 슬립 아울(Sleep Owl) 호텔은 사실 호텔이라는 이름과는 다른, 호스텔에 가까운 숙소다. 2층 침대 스타일로 내부가 꾸며져 있지만 두꺼운 나무판으로 프레임을 짜고 발이 닿는 방향 쪽에 커튼을 달아 결과적으로 틔여 있는 면보다 막혀 있는 면이 많은 독특한 구조인데, 덕분에 침대의 흔들림이 전혀 없다. 사실 침대의 측면이 벽에 딱 붙어있다면 뒤척임 때문에 좀 흔들거려도 진동이 상쇄되는데, 벽과 떨어져 있다면 흔들림이 고스란히 매트리스에 전해져 잠 못 이루게 될 수도 있다.


호스텔의 이층 침대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매트리스의 두께다. 굉장히 인색한 주인장이 운영하는 호스텔의 경우, 매트리스 대신 스펀지 깔개 하나만 놓아두는 경우가 꽤 많다. 이런 곳은 구글맵의 리뷰에서 분노한 서양 여행객이 혹평을 하곤 하니 찬찬히 들여다보자.


슬립아울 2024.JPG 도쿄의 슬립 아울(Sleep owl) 호텔의 도미토리룸. 침대라기보다 침대 형태로 두꺼운 나무판으로 짜 넣은 큐브형 개인룸에 가깝다. 당연히 소음과 흔들림이 없다.



침대 안의 개인 조명과 수납공간


요즘은 호스텔 침대 안쪽에 소형 전등과 개인 콘센트가 달려 있는 곳이 많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가격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전체적으로 호스텔의 시설이 괜찮은 곳은 도쿄, 방콕이었는데, 이 지역의 호스텔은 반드시 소형 전등과 개인 콘센트를 갖추고 있어서 이게 법으로 정해진 건가 궁금했을 정도. 의외로 유럽의 경우 이런 기본적인 시설을 빼먹은 곳이 꽤 많다. 심하게는 방 안에 콘센트가 단 2개뿐이고 숙박객은 12명이라 매일 충전을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른 경험도 있었다.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의 경우 각 침대 안에 미니 선풍기가 달려 있는 곳도 있다. 더위를 못 참는 편이라서 공용 에어컨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이런 호스텔을 고르는 것도 좋다.


또 하나 확인할 점은 침대 안에 수납장이나 선반이 있는지 여부. 열쇠 달린 미니 수납장이 있다면 세면도구나 귀중품을 수납할 수 있어 침대 안 공간을 정리하기 훨씬 편하다. 선반이 있으면 안경이나 거울 같은 소지품을 올려둘 수 있다.


IMG_4731.JPG 태국 방콕의 탐니(Tamni) 호스텔의 침대 내부 수납공간. 커다란 여닫이장과 선반이 돋보인다. 개인 조명과 콘센트 뿐만 아니라 미니 선풍기까지 갖추고 있다.


사물함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


커다란 배낭이나 캐리어가 들어갈 만한 대형 수납장이 개인별로 주어진다면 도난의 위험이 0에 가까워진다. 물론 일부 숙박객은 열쇠를 채우지 않고 짐을 넣고 다니는 부주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럴 때 소지품이 없어진다면 어쩔 수 없이 본인 귀책사유가 되니 주의할 것. 혹시 개인 사물함이 없다면 캐리어에 귀중품을 넣고, 캐리어 지퍼에 자물쇠를 채운 다음 그 자물쇠와 침대 프레임을 사슬로 연결해 다시 자물쇠를 채우는 방식으로 도난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나의 경우 이런 방법으로 호스텔에 숙박하면서 단 한 번도 소지품을 잃어버린 일이 없다. 호스텔 생활자라면 자물쇠를 여러 개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IMG_4513.JPG 베트남 하노이의 튜나(Tuna) 호스텔. 여성용 도미토리는 커다란 프랑스식 창문과 발코니가 있어서 환기가 잘 되고 쾌적했다.


침실에 창문이 있고 외부와 통하는지


도미토리룸에 바깥을 향해 열 수 있는 창문이 있다면 최고다. 환기도 되고 해가 뜨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져서 쓸데없이 늦잠을 잘 확률이 줄어들고 일정도 일찍 시작할 수 있다. 베트남 하노이 서호 근처에 있는 튜나(Tuna) 호스텔은 여성 도미토리의 경우 커다란 프랑스식 창문과 발코니가 있다. 하루 종일 환기를 할 수 있고 양말 같이 자그마한 빨래도 널어 말릴 수 있어 쾌적했던 기억.


만약 방 안에 창문이 하나도 없고 에어컨 같은 환기 시설도 눈에 띄지 않는다면 가급적 그런 숙소는 거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창문이 있다 해도 결코 열리지 않는 장식용인 경우도 있으니 예약 사이트의 후기를 꼭 체크해 볼 것. 게다가 실내 에어컨 용량이 너무 적을 경우 눅눅한 습기가 잘 빠져나가지 않고, 한여름에는 더울 수 있다.


실제로 하노이의 대형 게스트하우스는 에어컨 냉기가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기 위함인지 창문이 열리지 않고 환기가 안 되는 곳이 많았는데, 밤만 되면 목감기로 기침하는 사람이 꼭 한두 명씩은 있어서 겁이 났을 정도. 이럴 때는 좀 답답하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자는 것이 낫다.



2층 침대 vs 1층 침대


도미토리 벙크 베드에서 하루라도 묵어본 사람은 알 거다. 단연코 아래쪽 침대가 편하다. 일단 침대에 걸터앉을 수 있기 때문에 침대 앞도 내 사적 공간이 되고, 사다리나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니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망설임 없이 곧바로 씻으러 갈 수 있다.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아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2층 침대에 묵게 되면 아래로 내려가기가 귀찮아 한없이 핸드폰만 보다 시간을 버릴 수도 있다.) 다만 같은 방을 쓰는 이들이 침대 안을 볼 수 있어 도난에 주의해야 하고, 위층 침대를 쓰는 사람이 몸을 뒤척이는 스타일이라면 소음에 잠을 설칠 수도 있다.


반대로 벙크베드의 2층은 오르내리기가 좀 불편하지만 소지품을 도난당할 위험이 한결 덜하다. 게다가 난간에 수건이나 양말 같은 빨래를 널 수 있는 것도 2층 숙박객만 누리는 장점이다. 그렇지만 침대와 벽 사이에 틈이 있는 벙크 베드인 경우, 수건이나 핸드폰을 떨어뜨렸을 때 아래 침대를 쓰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건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소지품이 떨어지지 않게 주의할 것.


다낭의 모 호스텔에 묵었을 때의 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충전선을 잡고 핸드폰을 끌어당기다가 핸드폰이 무게를 못 이기고 충전선에서 분리되어 아래쪽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오전 8시라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그렇다. 호스텔 숙박객들은 이상하게 다들 늦게 일어나더라)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1층 침대의 숙박객이 나를 부르더니 핸드폰을 건네준 적이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였는데 그날따라 얼마나 천사처럼 보이던지…! 보답으로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를 사서 드렸고 이후 조심 또 조심하게 됐다.



KakaoTalk_20250227_191124861.jpg 바르셀로나의 유나이트(Unite) 호스텔은 이런 세면 공간이 무려 도미토리 룸 안에 있다. 새벽에 누가 씻으면 소리가 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



화장실은 도미토리룸 외부? 내부?


의외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도미토리 룸 안에 있으면 편할 것 같다는 것이 1차적인 생각. 한밤중에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편이라면 도미토리룸 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낫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밤늦게 또는 이른 아침 누군가가 화장실에 가거나 샤워를 하면 그 소음에 잠을 깰 확률도 있다는 의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근처에 있는 유나이트(Unite) 호스텔은 시설이 깔끔하고 잘 관리되어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놀랍게도 도미토리 룸 안 오픈된 공간에 세면대 두 개가 놓여있다. 덕분에 새벽에 누군가가 세수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잠에서 깰 수 밖에 없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다행히 이렇게 잠에서 깬 건 단 한 번이고, 이후에는 우리 룸 사람들이 모두 늦게 일어나는 잠꾸러기였기 때문에 새벽의 소음은 더이상 없었다.


사실 내 경우엔 커다란 화장실과 욕실이 도미토리 룸 밖에 별도로 있는 것이 숙면을 취하기 좋았는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화장실과 욕실에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옷을 챙겨 입고 소지품을 도난당하지 않도록 간수해야 비로소 화장실에 갈 수 있으니 좀 귀찮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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