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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새로운 호스텔로 이사합니다

호스텔에서 2~3일씩 묵고 다시 또 짐을 싸서 새로운 호스텔로!

호스텔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잠시 접고, 베트남 한 달 살기를 맘먹고 하노이로 와서 숙소 고민에 빠졌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자. (1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여기]서 다시 봐주시면 좋겠다)


결국 나는 하노이에서 한 달 이상 숙박할 곳을 찾는 대신, 호스텔에서 호스텔로 옮겨 다니기로 했다. 달팽이는 자기 집을 지고 다니겠지만, 나는 기내용 20인치 작은 캐리어 하나만 끌고 다닐 거였다.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나의 모친은 “그렇게 집시처럼 옮겨 다니다니 웬 고생이야?”라고 황당해했지만 호스텔 한 달 (넘게) 살기를 결정한 당시의 나는 의욕에 차 있었다.


한 호스텔에서 2~3일씩 머무르고 나서 근처의 다른 호스텔로 이사(?)해 다시 2~3일씩 머무르며,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공항버스 정류장 근처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런 동선이었다. 하노이의 경우 대부분의 호스텔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올드 쿼터와 그 근방에 모여 있다. 동선을 잘 짜면 호스텔에서 다른 호스텔로까지 5~10분 정도 걸으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 없이 손쉽게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하노이 올드 쿼터의 왁자지껄한 중심부 따히엔 맥주 거리 근처의 호스텔 두어 곳을 예약하고, 그 주변의 가격대나 시설이 괜찮은 호스텔도 미리 구글맵에 표시해 두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올드 쿼터에서 지내다 보면 찜해 놓은 호스텔 주변을 지나치게 될 텐데, 예약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주위 분위기-즉 심하게 외지거나 반대로 매우 시끄럽지는 않은지-를 짬짬이 돌아보기로 했다.

IMG_6523.JPG 하노이에 오는 이들은 반드시 들르는 호안키엠 호수.

호안키엠 호수 주변의 풍광과 분위기는 사실 구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일정이 촉박한 관광객이라 호안키엠 호수 근처를 구경하는데 반나절 밖에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더워서 뭘 하기 힘든 낮에는 수상인형극을 보고 선선한 해 질 녘엔 다리를 건너 녹손 사원을 구경하며 어둑해진 다음에는 따히엔 맥주 거리의 간이 테이블 앞에 앉아 소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맥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면 정신없는 오토바이 경적 소리와 엄청나게 몰려든 전 세계 관광객들만 인상에 남을 것이다. 나 역시 맨 처음 하노이를 방문했던 몇 년 전 그랬으니까.


하노이숙소.jpg


하지만 한 달 이상의 여유가 있는 나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단 호안키엠 호수 위쪽, 여행자들이 모이는 따히엔 맥주 거리 근처 호스텔에서 숙박을 시작한다.(위의 지도에서 빨간색 색칠한 곳) 여기는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카락을 대충 묶은 백패커와 골동품 가게를 돌아보는 한가로운 여행자들이 공존하는 묘한 곳이다. 더운 낮에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며 거리를 걷는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일단 해가 지고 나면 다들 어디서 나왔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로 넘쳐난다.


롱비엔 역 바로 아래쪽은 현지인들이 오토바이를 몰고 와서 장을 보는 시장 지역이다.


그다음에는 따히엔 맥주 거리에서 좀 더 올라가 롱비엔 역 아래쪽, 하노이 현지인들이 장을 보러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시장 근처로 숙소를 옮긴다. (지도에서 노란색 색칠한 곳) 따히엔 맥주거리 근처가 관광객들을 위해 특화된 곳, 틀림없이 영어 메뉴판이 있고 향신료 맛은 덜어낸 음식을 파는 식당과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싼 주스를 파는 카페와 기념품 가게로 가득하다면, 롱비엔 역 아래쪽 구역은 영어 메뉴 따위는 없는 작은 식당과 한화로 500원 정도만 내면 즉석에서 짜낸 사탕수수즙 한 잔을 맛볼 수 있는 노점 그리고 대나무 바구니나 철물이나 완구나 원피스를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 간혹 호스텔이 끼어 있다.


하노이에는 이처럼 건물 5~6층 높이에 이르는 키 큰 나무들이 많다.


이번에는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와 86번 공항버스가 다니는 도로 주변에서 지내보자. (지도에서 초록색 색칠한 곳) 이 지역은 건물 5~6층 높이는 거뜬히 넘는 키 큰 나무들이 들어서 있어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곳이다. 찰밥 식당 쏘이옌을 필두로 현지인들 사이에 유명한 맛집이 곳곳에 숨어 있으며 최근에는 근사한 카페도 계속 생기는 중이다. 이 지역은 앞서 언급한 두 곳과 달리 번잡하지 않고 조용하며, 저렴한 소규모 호스텔을 찾아볼 수 있다.


IMG_6569.JPG 프렌치 쿼터의 프랑스식 베이커리의 진열대.


이젠 한참 내려가 호안끼엠 호수 아래쪽, 흔히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로 대표되는 프렌치 쿼터 지역에서도 지내보자. (지도에서 파란색 색칠한 곳) 하노이의 관공서가 모여 있는 곳이라 커다랗고 멋스러운 건물들이 인상적이고, 올드 쿼터에 비하면 인도의 폭이 넓어 산책하기 쾌적하다. 아기자기한 서점과 멋진 문구점이 있고 힙한 카페도 숨어있으며 매일 산책길에 두어 가지씩 빵을 사더라도 한 달 동안 절대로 같은 빵을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종류의 프랑스 빵을 파는 베이커리, 그리고 노트북을 펴놓고 작업하기 좋은 프랜차이즈 카페도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피자 레스토랑 피자포피스(Pizza 4P’s)도 이곳에 있다. 점심시간에는 우리나라 광화문이나 역삼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팀장으로 추정되는 나이 지긋한 분과 팀원으로 짐작되는 20대~30대 젊은이들이 함께 식당 쪽으로 몰려간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은 호안끼엠 호수의 위쪽, 오른쪽, 그리고 아래쪽 동네이다. 여기서 성요셉 성당이 있는 왼쪽은 빠졌는데, 왼쪽에서도 살아보고(?) 싶었지만 호스텔이 그다지 많지 않고, 호텔뿐이었던 것으로 봐서 임대료가 비싼 동네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자, 이제는 호안끼엠 호수 근처는 충분히 살아봤으니 하노이에서도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커다란 호수, 자주 바다로 오해받곤 하는 서호 근처로 가보자.


서호의 오른쪽은 주로 하노이에서 장기 숙박하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나도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었으나, 호스텔은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서호의 왼쪽 편에 있는 호스텔을 발견해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구글 리뷰를 보니 현지인들이 아침저녁으로 서호 주변을 산책하고 휴일에는 강가 카페에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전형적인 하노이 주택가인 것 같았다. (사실 그곳에 가보고 나서 하노이의 모든 인도가 올드 쿼터처럼 좁다란 게 아니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널찍널찍한 길과 도로, 깔끔한 식당과 카페, 가끔 등장하는 멋진 사원 덕분에 관광지가 아니라 그냥 살기 좋은 주택가로 이사 온 듯한 느낌을 갖게 한 곳이다)


IMG_3963.JPG 서호 근처의 호스텔에 묵었을 때는 틈만 나면 호숫가로 산책을 나가 이런 풍경을 원 없이 보았다.




이런 방식의 여행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하나 싶으신 분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여행을 떠날 때 제일 경계하는 것은 소위 ‘퍼지는 것’이다. 여행은 계속 여행이었으면 싶은데, 어느 순간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 버리고 애초에 품고 있던 예민한 감각은 점점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사람에 따라 여행의 패턴이 다를 텐데, 나 같은 경우는 어떤 지역에 오랫동안 있으면 매우 빨리 지겨워지는 편이다. 사실 어떤 좋은 호텔과 리조트건, 사흘 정도 묵게 되면 처음엔 만족스러웠던 인테리어에도 데면데면하게 되고, 뷔페식 조식에 질리며, 자꾸 주변 현지인들 집의 창문을 보며 내부를 궁금해하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호스텔에서 호스텔로 옮겨 다니다 보니 내가 궁금했던 모든 지역에서 살아볼 수 있어 매일이 새로웠다. 아침마다 호스텔 문을 밀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 펼쳐지는 풍경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주변의 가게에 낯이 익고 근처 카페 사장님과 눈인사를 주고받아 "드디어 이곳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 싶을 즈음에는 다음 호스텔로 이동한다. 새로운 호스텔에 도착해 보니 유명한 쌀국수 식당이 옆집이라 줄을 설 필요 없이 오픈런해서 첫 번째로 먹을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그다음에 옮긴 호스텔은 커다란 가로수가 늘어선 멋진 길 한가운데에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뭐 이런 식이다. 지루할 틈이라곤 없다. 항상 주변에 예민하고 날 선 느낌, 새로운 자극을 맛볼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의 특권이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예민함을 누리려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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