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곳의 호스텔에서 숙박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반전
이번에는 좀 의외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동안 호스텔에서 숙박하면서(어림잡아 100회 이상!) 여러 호스텔을 비교하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호스텔을 예약하려고 마음먹고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면 처음 보이는 것은 그 호스텔의 가장 저렴한 방이다. 보통 10인실, 8인실 등의 대형 혼성 도미토리의 1박 가격이 가장 저렴하게 책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냥 얼핏 생각하기에도 한 방에서 숙박하는 사람 수가 많을수록 코 고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쓸 확률도 올라가고, 소음을 유발하는 누군가가 있을 가능성도 높아지니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예약 사이트를 좀 더 둘러보자. 방 하나에 들어가는 침대 수가 적어질수록 이젠 가격이 조금씩 높아진다. 그렇게 따지다 보면 12인실보다는 6인실, 그리고 6인실 보다는 4인실의 도미토리 베드의 1박 숙박비가 더 비싸다. 결국 4인실이 가장 비싼 축에 들게 된다. 그냥 얼추 생각하기에도 왠지 쾌적할 것 같잖아? 네 명이서 내는 소음이 거슬려봐야 얼마나 거슬리겠어?
그런데 문제는 꽤 거슬린다는 것이다. 이건 테이블이 10개 정도 놓인 대형 카페와,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카페에 앉아있다고 가정하고 비교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대형 카페는 대화하는 음성, 찻잔 부딪히는 소음, 부스럭대는 소리가 뒤섞여 오히려 은은한 백색소음이 발생해서 쾌적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작은 카페에선 어떤 소음이건 묻히지 않고 더 크게 들려서 귀를 공격하게 되고 소음 때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바로 이 원리 때문에 4인실은 꽤 불편할 수 있다. 보통 4인실에는 벙크베드 2개가 달랑 들어가고 가운데에 좁은 통로가 있을 텐데, 그걸 따져 보면 4인실 룸 자체가 얼마나 좁은지 상상할 수 있다. 바로 위의 치앙마이 박스(Box) 호스텔 사진을 살펴보면 맞은 편 침대에 누운 사람과 얼마나 가까이 있게 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이 호스텔의 4인실은 내가 본 호스텔 4인실 중 꽤 넓은 편이었고, 침대 뒤쪽에 다른 침대를 하나 더 넣는 대신 사물함을 설치해 숙박객의 편의를 도모한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어느 호스텔이나 4인실은 많지 않은데, 약간이라도 여유 공가닝 있으면 벙크베드를 하나 더 넣고 6인실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 사파의 러스틱 호스텔은 무려 벙크베드가 7개나 들어가는 혼성 도미토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쾌적한 편이었는데, 바로 사파의 전경이 펼쳐지는 커다란 발코니가 딸려있었고 침대 앞쪽으로 넓직하게 여유 공간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호스텔 역시 커다란 창문과 발코니가 딸려 있고 그라시아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쾌적한 방은 여성전용 4인실이 아닌 혼성 12인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항상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치앙마이의 어느 호스텔에 묵었을 때의 일이다. 4인실은 절대 가지 말아야지 결심한 나는 열심히 8인실을 예약했으나, 당시는 비수기였고 효율성만 따진 호스텔 직원은 나에게 4인실을 배정했다.
같은 방을 쓰는 혼자 온 중국인 남자는 매우 조용한 편이었는데, 밤늦게 도착한 남자 2명이 문제였다(국적은 밝히지 않겠다). 보통 도미토리에선 일행이 있더라도 다른 숙박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편인데, 이 둘은 달랐다. 일단 나란히 2층을 배정받은 이 두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면 될 텐데 굳이 2층 침대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렸고(도대체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자신들이 쿵쿵 대는 소음에 미안해하지 않았다. 음식 섭취가 금지된 실내에서 과자를 먹는 것은 물론, 커튼을 닫고 책을 읽고 있던 내 침대 쪽으로 와서 안을 들여다보며 말을 걸기까지 했다. 이곳에서 묵은 다음부터는 호스텔 측에서 4인실로 업그레이드(이게 과연 업그레이드인가…) 해준다 하더라도 싫다고 하기로 결심했다.
간혹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다니는 여행객이 호스텔의 도미토리를 예약하는 경우가 있다. 2~3명부터 많게는 5~6명까지 다양한데 대부분의 호텔은 2인 더블룸이나 3인 트리플룸만 갖춘 경우가 많으니 아예 이 모든 인원이 하나의 룸에 머무를 수 있는 호스텔 도미토리룸을 선호하는 것.
하지만 호스텔에서 4인실이나 6인실 같은 비교적 작은 도미토리에 이들을 배정하고, 거기에 개별 여행자가 같이 숙박하도록 배치하는 경우가 문제다. 단체 여행객 사이에 끼인 개별 여행자가 되는 순간 예기치 않았던 불편한 일들이 생길 수 있다. 아무래도 외국에 나왔다는 해방감, 단체인 데서 오는 편안함, 그리고 함께 외국 여행을 올 정도니 매우 친밀한 사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그 사이에 낀 나 홀로 여행객을 배려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호스텔 매니저는 가급적 단체 여행객과 개별 여행자를 분리한다거나, 아시아인은 아시아인끼리 한 방에 배치하는 등의 나름대로 세심한 배려를 하기도 하지만 이건 실제로 그 호스텔에 묵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에 있는 호스텔에 묵었을 때의 일이다. 호스텔임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 벙크베드가 아닌 일반 침대가 6개 놓여 있였는데 그중 4개는 영어를 쓰는 네 명의 여자들이, 1개는 내가 배정받았다. 나머지 한 침대에 숙박객이 더 들어왔다면 좋았을 텐데, 머무는 내내 침대 하나는 고스란히 비어있었다.
덕분에 이분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밤새도록 떠들고 아침에는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에 아예 고데기 코드를 꽂아놓고 세면대를 점령하기 일쑤였다. 아마 내가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듯, 남자 친구 문제부터 프랑스에 대한 경멸까지 다양한 주제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눴는데 덕분에 당시 내 영어 듣기 능력이 프랑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취월장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혼성 도미토리를 예약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여성이라면 위에서 말한 이유와 별개로 가급적 4인실은 예약하지 말고 최소 6인실 이상, 넉넉하게 8인실이나 10인실 같이 한 방에 머무는 인원이 많은 도미토리를 고르라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이 혼성 도미토리에서 각종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인데, 나는 주로 8인실~12인실의 대형 도미토리에 묵었기 때문인지 의외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방에 숙박하는 이가 많을수록 보는 눈도 많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문제에선 더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각종 연애사는 도미토리 룸보다는 공용 공간, 즉 라운지나 루프탑이나 주방에서 이루어진다. 의외로 전 세계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도미토리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암묵적 룰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