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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편 - 혁신 과제 공고 및 모집

오픈이노베이션 실무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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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Dr. Jin입니다.


최근 대기업들의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흥미로운 고민을 들었습니다. "공개 공모를 하면 지원자는 많은데 정작 우리가 원하는 스타트업은 안 나타나요. 그렇다고 비공개로 직접 찾아다니자니 시간도 리소스도 부족하고요." 반대로 스타트업 대표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모에 몇 번 떨어지니까 우리가 뭘 잘못한 건지도 모르겠고, 피드백도 없어서 답답해요."


이 양쪽의 고민은 사실 같은 문제의 다른 면입니다. 바로 '혁신 과제를 어떻게 공고하고 모집할 것인가'라는,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장 첫 단계에서 벌어지는 미스매칭입니다. 이번부터의 파트는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해법들의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노하우를 분석해보겠습니다.


들어가기 앞서, 사례연구로 예열 좀 해보죠.

사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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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브랜치 사이트의 Admin 페이지로 들어가서 본 2021년 해당 과제의 흔적이네요.

이제 혁신 과제가 정리됐고, 공개 모집부터 1대1 밋업 및 매칭까지 대략 3개월 일정으로 계획을 세우고 수요기업인 N사에 보고했습니다. 드디어 맨 처음 4개월여 물밑 작업의 결과로, N사의 첫 오픈이노베이션 공모가 한국무역협회의 담당자인 제가 혁신중개자로 물 위에서 개시된 것이죠.


모집은 저희 오픈이노베이션 전용 플랫폼인 이노브랜치에 제가 직접 포스터 제작 후 업로드, 관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담당이신 Y이사님께는 과정을 보여드리고 설명했죠. 이제, 다음 단계인, 홍보 및 소싱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모집 성과가 정해지겠습니다.



이론 정리

이제 이에 기반이 되는 생각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열린 문 vs 닫힌 문: 공개모집과 비공개 소싱의 딜레마

오픈이노베이션에서 스타트업을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공개모집(Open Call)비공개 소싱(Closed Sourcing). 각자 나름의 철학과 장단점을 가지고 있죠.


공개모집의 빛과 그림자

공개모집은 말 그대로 문을 활짝 열어두는 방식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나 홈페이지에 혁신 과제를 게시하고, 관심 있는 스타트업이 자유롭게 지원하도록 합니다.

장점부터 살펴볼까요?


첫째, 폭넓은 발굴이 가능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솔루션이 나타날 수 있죠. 전국을 대상으로, 공고를 어떻게 마케팅하느냐에 따라


둘째,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경우, "왜 저 기업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공개모집은 이런 정당성을 부여하죠.


셋째, 비용 효율적입니다. 플랫폼에 공고만 올리면 알아서 지원자들이 몰려오니, 별도의 탐색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미스매칭'입니다. 앞서 인용한, 2024년 무역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54.3%가 "눈높이에 맞는 스타트업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습니다. 공개모집에는 준비가 안 된 스타트업부터 과제와 전혀 맞지 않는 기업까지 무분별하게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둘째, 심사 부담이 큽니다. 어떤 공모는 수백 건의 지원서가 몰려드는데, 이를 제대로 검토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형식적인 서류 심사에 그치고, 진짜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놓치게 됩니다.


셋째, 기밀 유지가 어렵습니다. 공개된 과제는 경쟁사도 볼 수 있으니, 전략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올리기 힘들죠. 헬스케어,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등의 대분류 정도만 공개하는 경우는 그럴 리스크가 적지만, (없지 않습니다) 중/소분류로 내려오면 상당히 구체적으로, 타 경쟁사에게 자사의 미래 혁신 방향이 이거다, 를 보여주는 결과가 되지요. BMW/벤츠의 자율주행이나, 구글의 AI처럼, 너무나 뻔한 과제라면 모를까, 현실성 있는 과제는 뻔하지 않습니다.


넷째, 공모인 만큼, 공정성 시비나 잡음의 여지가 생깁니다. "왜 우리는 기회도 못 받았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 있고,


저희 무역협회가 중개했던, 실제 익명화 공모 사례입니다. 어딘지 아시겠나요? 고객사와 NDA를 체결하고 진행한 소싱이라 저도 정답은 알려드리기 어렵네요.

실제로 무역협회에서는 2019년도 초창기 글로벌 대기업 본사의 오픈이노베이션 과제를 소싱했을 때, 몇몇 회사와는 NDA(기밀유지협약)을 직접 체결하고, 해당 회사의 명칭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분야만으로 공모해본 적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2025년 현재도 모 회사와 오픈이노베이션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한 이후, 별도로 해당 회사와 NDA를 체결했습니다. 포춘500 기업의 촘촘한 수준의 테크스카우팅 과제라면, 혁신 과제에 대한 취급에 보안을 강조하는 편인듯 합니다.








비공개 소싱의 정밀함과 한계

반대로 비공개 소싱은 선별적으로 문을 여는 방식입니다. 기업이 직접 또는 중개기관을 통해 특정 스타트업을 찾아가거나, Confidential하게 초청하는 형태죠. 일반적인 CVC들이 딜소싱으로 선호하는 방식이지만, 작은 프로젝트나 점조직의 경우 오픈이노베이션 사업화에서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첫째, 정확도가 높습니다. 스나이핑 소싱인 만큼, 전혀 엉뚱한 스타트업과 매칭될 확률은 낮습니다. 실제로 혁신중개자들이 큐레이션하거나 신뢰도 있는 채널의 추천에 의지한 매칭의 성공률은 공개모집 대비 3-4배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둘째,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합니다. 1:1 밋업이나 소규모 세션에서는 서류로는 드러나지 않는 스타트업의 진짜 역량과 열정을 파악할 수 있고 공모 등의 절차에 구애받지 않으니, 검증의 유연성을 갖기 좋습니다. 또한 사전에 스크리닝된 스타트업만 만나니, 시간 낭비도 적습니다.


셋째, 기밀성을 유지하면서도 소싱을 추진하기 좋습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과제일수록 비공개 방식이 선호되는 이유죠.


그러나 한계도 분명합니다.

첫째, 비용과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당연하지만 스텔스 소싱은 초보 기업이나 혁신생태계의 경험이 부족한 인력이 실행하기에는 무리수가 많습니다. 전문 인력이 스타트업을 직접 발굴하고 검증하려면 역시 상당한 리소스와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필요합니다. 하여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순환보직 중심의 공공기관은 이런 역량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앞서 사례의 N사 역시 중소기업이었던만큼, 저 같은 혁신중개자가 비영리로 돕지 않았다면 그만한 벤처링 활동이 어려웠겠죠.


둘째,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아무리 잘 찾아도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한계가 있죠. 혁신은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는데, 비공개 소싱은 이런 우연성을 포착하기 어렵습니다. 임팩트가 큰 이노베이션일수록, 우연성과 의외성의 여지를 두지 않으면 자칫 뻔한 혁신 발굴에 머물기 쉽습니다.


셋째, 리스크 관리에 취약합니다. 사내 혁신조직의 입장에서는, 제3의 혁신중개조직을 활용한 공모는, 소싱 또는 이후 오픈이노베이션 성패에 대한 책임의 분산이 내부적으로 가능하지만, 스텔스 소싱에 의존하게 될 경우, 그 리스크를 실무자가 온전히 떠안는 셈입니다. 몇년에 걸쳐 여러 리스크를 안고 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인 만큼, 리스크 헷징의 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사항이죠.


그래서 답은?

결국 정답은 '상황에 맞게'입니다. 과제의 성격, 조직의 역량, 기대하는 결과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최근 트렌드는 두 방식을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입니다. 공개모집으로 폭을 넓히되, 전문 중개기관의 큐레이션을 통해 질을 높이는 등, 둘을 동시에 병행하거나, 순차적으로 또는 영역/과제에 따라 달리 병행하는 방식이죠.


2. 한국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지형도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어떤 플랫폼들이 이런 매칭을 돕고 있을까요? 크게 공공 플랫폼과 민간 플랫폼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공공 플랫폼: 생태계의 기반이자 정부 지원 사업과의 연계성


중기부 OI 마켓 (oimarket.kr)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이 운영하는 'OI 마켓'은 한국 오픈이노베이션의 대표적인 공공 플랫폼입니다. 2024년 3월 출범 1주년을 맞아 대규모 개편을 진행하며 AI 기반 매칭 기능인 'OI 어시스턴트'가 도입됐고, 2025년 들어 운영사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로 바뀌었습니다. 여러 오픈이노베이션 공모 일정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 캘린더 등 참신한 기능과 희소한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들을 볼 수 있는 오픈이노베이션 인사이트 등 콘텐츠가 돋보입니다. 2025년 11월 26일 기준, 스타트업 약 1352개사가 등록되어 있네요.


이 플랫폼의 강점은 정부 사업과의 연계입니다.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의 수요기반형 트랙은 OI 마켓을 통해 접수되며, 선정된 스타트업에게는 최대 6천만 원의 사업화 자금과 1.2억 원의 R&D 후속 지원이 제공됩니다. 출범 이후 누적 방문자 8만 명, 1,0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죠. 정부사업의 단점은 높은 행정의 벽인데, 플랫폼 자체가 정부 플랫폼인만큼 행정 흠결 관리 면에서 좋습니다.


기술 보호 기능 역시 있습니다. 플랫폼 내에서 중소벤처기업부의 표준 비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할 수 있어, 스타트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기술 탈취 문제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별 거점의 전통적인 역량 (창조경제혁신센터 통합 공고)

전국 17개 지역에 구축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각 지역의 특화 산업을 중심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지원합니다. 예를 들어 대구센터는 의료, 경기센터는 자율주행, 제주센터는 관광·농업에 특화되어 있죠.


오픈이노베이션은 어쩔 수 없지만, 많은 경우 대기업 본사가 중심으로 추진되는 만큼, 수도권인 서울과 경기가 특화사업으로 강세를 보여왔습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의 경우, 2019년부터 CJ, SK텔레콤, 현대자동차그룹 등 대기업 수십개사와 함께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해왔습니다. 특히 '스타트업 오픈안테나'라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을 통해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과 실제 사례를 상세히 공유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유니콘브릿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오픈이노베이션과 PoC를 일관되게 연결하는 사업을 특화하여 해왔습니다. 벤처기업의 메카인 대전에 위치한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의 '드림벤처스타(DVS)' 프로그램은 2015년부터 운영되어 온 대표적인 성공 모델입니다. 하나은행, LG전자, 일동제약 등 20여 개 파트너 기업과 100여 개 스타트업의 PoC를 지원했고, 실제 제휴 협약으로 이어진 사례가 다수 있습니다.


지역마다 지자체의 재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경제진흥원들이 있는데, 서울은 서울경제진흥원(SBA)이 오픈이노베이션에 특화하여 오랫동안 마중물 역할을 해왔습니다. 스타트업플러스라는 자체 스타트업 DB 시스템과 함께 PoC 프로그램, 투자기금 등을 병행하며 서울창경, 무역협회 등과 협력해 다양한 대기업들과 오픈이노베이션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민간 플랫폼: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

무역협회 이노브랜치 (https://innobranch.com/)

2019년 출범한 이노브랜치는 한국 유일의 영문 기반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입니다. 국내외 28개국 5,000개 이상의 스타트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으며, 지난 5년간 367회의 오픈이노베이션과 2,900여 건의 1:1 밋업을 성사시켰습니다. 한국무역협회 100% 구축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컨셉 때문에 무역협회 로고도 홈페이지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무려 나무위키도 있군요...


이노브랜치의 차별점은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네트워크입니다. BMW, 다임러, 아마존, 포르쉐 등 Fortune 500 기업들과 한국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포천 500 커넥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실제로 투자 유치, 기술 협업, 해외 수출 등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2.0으로 대규모 개편을 통해 ▲법인·개인 이용자 구분 등록 ▲직관적 챌린지 개설 구조 ▲국영문 병기 ▲통계 대시보드 등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매년 6월 혁신대전인 NextRise, Seoul과 연계한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 그리고 국내 오픈이노베이션 챌린지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준히 퍼오는 노력은 주목할 만합니다.


혁신의숲 그로스 브릿지 (Growth Bridge)

오픈이노베이션에 특화한 민간 액셀러레이터인 마크앤컴퍼니가 운영하는 혁신의숲은 원래 스타트업 성장 데이터 분석 플랫폼으로 출발했습니다. 15,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대한 50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축적하며, MAU(월간활성사용자), 거래액, 투자 유치, 재무제표 등을 제공하죠.

2024년 출범 3주년을 맞아 본격적인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인 '그로스 브릿지'를 출시했습니다. 이 플랫폼의 강점은 데이터 기반 매칭입니다. 대기업이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면,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장성과 적합성을 분석해 스타트업을 추천합니다. "감"이 아닌 "팩트"로 매칭하겠다는 것이죠.

또한 IPMS(Innoforest Program Management System)를 통해 스타트업 지원 기관들이 지원 기업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추적·관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합니다. 혁신의숲은 앞서 소개한 이노브랜치와도 개별 기업 데이터 링크를 공유해 협업하고 있습니다.


넥스트유니콘 (https://www.nextunicorn.kr/)

2015년 설립된 넥스트유니콘은 원래 스타트업과 전문 투자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시작했습니다. 현재 약 15,000개의 스타트업과 2,000명 이상의 투자자가 활동하며,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이 6,500억 원을 돌파했죠.

최근에는 앞서 소개한 OI 마켓의 개발사로서 공공 영역으로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2024년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의 수요기반형 트랙 주관기관으로서, 상하반기 총 46개 과제를 매칭하는 성과를 냈습니다. 대교에듀캠프, 대웅제약, 아모레퍼시픽, 현대건설,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을 연결했더랬죠.

넥스트유니콘의 차별점은 투자 관점의 검증 시스템입니다. 플랫폼에 등록된 스타트업들은 이미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은 기업들이 많아, 검증된 풀에서 협업 파트너를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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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다른 얘길 덧붙이자면,


사실 플랫폼이라 불리려면, 그 고유목적이, 수요기업 담당자가 자발적으로 들어와 공고를 게시하고, 플랫폼의 순수한 기능에 의지해 그에 맞는 스타트업 이용자가 신청하며 매칭되는 구조로, 중개자 없이 수요-공급자간의 양면시장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픈이노베이션이 양면시장에만 의존해 활성화된 플랫폼은 아직껏 한국 내에서 보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매칭, 그리고 그 이후, 일정 비율로 전환되는 성과 사례까지 가기까지, 지루하고 리스크 높은 과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문적인 혁신중개자가 수요기업 내부 그리고 외부에서 공조해야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중개가 개입하게 되면 사실 그 사이트는 양면시장에 의존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전문용어로 거래/중개 알선사이트가 됩니다. 현재 한국의 대부분 사이트는 플랫폼 기능은 갖고 있으나, 중개가 많이 개입하여 품질을 관리하고 있고, 그 방식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수요기업과 스타트업이 실체있는 오픈이노베이션 경험이 축적되어 플랫폼만으로 좋은 매칭을 일굴 수 있다면, 바람직하겠죠.



3. 접수 방식의 기술: 전용 플랫폼 vs 구글 서베이

자, 이제 플랫폼을 선택했다면 다음 고민은 '어떻게 접수를 받을 것인가'입니다. 의외로 많은 기업들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접수 방식이 모집의 질을 크게 좌우합니다.


전용 플랫폼의 장점

OI 마켓이나 이노브랜치 같은 전용 플랫폼을 사용하면 여러 이점이 있습니다.

첫째, 구조화된 정보 수집이 가능합니다. 미리 정의된 입력 필드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빠짐없이, 일관된 형식으로 받을 수 있죠. 사업자등록번호, 대표자 정보, 기술 분야, 투자 유치 현황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동 필터링과 매칭이 지원됩니다. AI 기반의 추천 시스템이 지원서를 사전 분류해주고, 유사 기업이나 이전 참여 이력 등을 자동으로 파악해줍니다. OI 마켓의 'OI 어시스턴트'가 대표적이죠.

셋째, 데이터 축적과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한 번 입력된 기업 정보는 플랫폼에 저장되어, 다음 공모에서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매번 같은 내용을 반복 입력하는 수고를 덜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도 과거 지원 이력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넷째, 보안과 NDA 관리가 용이합니다. 플랫폼 내에서 비밀유지협약을 체결하고, 민감한 정보의 접근 권한을 단계별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구글 서베이/폼 등 재래식(?)의 매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구글 서베이나 구글 폼을 사용합니다. 왜일까요?

첫째, 압도적인 간편함입니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접수 양식을 만들 수 있고, URL만 공유하면 됩니다. IT 담당자의 도움 없이도 HR이나 혁신 담당자가 직접 만들 수 있죠.

둘째, 유연성이 높습니다. 원하는 질문을 자유롭게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실험적이거나 일회성 공모의 경우, 무거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구글 폼이 효율적입니다.

셋째, 제로 비용입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구글 워크스페이스를 쓴다면 조직 내 협업도 쉽습니다.

넷째, UI의 친숙함입니다. 스타트업들도 이미 익숙한 인터페이스라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그러나 구글 폼의 한계

물론 구글 폼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데이터 관리의 어려움입니다. 스프레드시트로 떨어지는 응답을 일일이 정리하고 분석해야 합니다. 지원자가 많아지면 엑셀 지옥에 빠지죠.

둘째, 연속성 부족입니다. 매번 새로운 폼을 만들어야 하고, 과거 데이터와의 연결이 어렵습니다. "이 스타트업, 지난번에도 지원했었나?"를 파악하려면 수작업이 필요합니다.

셋째, 보안 취약성입니다. 구글 폼 링크는 누구나 접근 가능하고, 제출된 데이터의 보안 수준이 낮습니다. 민감한 기술 정보나 사업 계획을 받기에는 부적절합니다. 특히, 많은 대기업들은 사내에서 보안상 구글서베이 접속이 어려운 곳들이 있어 관련 편이에도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넷째, 브랜딩과 전문성의 문제입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공식 공모가 구글 폼으로 진행되면,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진지하게 하는 건가?"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전략: 현명한 선택

결국 정답은 역시 '때에 따라 다르다'입니다. 실무적으로는 이런 전술을 해볼 수도 있겠죠. 보통은

1차 접수는 리서치 차원에서 구글 폼으로 간단하게: 기본 정보와 관심 표명을 받습니다.

2차 심화 정보는 전용 플랫폼에서: 본선에 진출한 스타트업만 상세 정보를 입력하게 합니다.

최종 심사는 직접 밋업으로: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팀의 역량과 열정을 확인합니다.


어떤 방식이든, 실무의 묘입니다.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도, 진지한 지원자에게는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4. 한국 시장의 특수성: 공짜의 역설

한국 오픈이노베이션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바로 공공 지원의 보편화입니다. 이것은 축복이자 저주입니다.


공모의 일반화가 가져온 변화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는 물론,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테크노파크, 산학협력단 등 전국에 수백 개의 지원 조직이 있죠.

이런 환경은 스타트업에게는 기회의 땅입니다. 정부 지원금과 함께 대기업과 협업할 기회를 공짜로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일단 되는 대로 다 지원해본다"는 전략을 취합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민간 유료 서비스의 설자리를 좁히고 있습니다. "왜 돈 내고 민간 플랫폼을 써야 하나? 공공 플랫폼에 올리면 정부 돈도 받고 매칭도 되는데"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공모의 한계: 품질 vs 수량

문제는 공모 방식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첫째, 미스매칭 비율이 높습니다. 지원 자격만 되면 누구나 지원하다 보니, 실제로 대기업의 니즈와 맞는 스타트업 비율은 10-2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80-90%는 심사하는 시간이 아깝죠.

둘째, 소싱 품질의 유지가 어렵습니다. 공공 사업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중시하다 보니, 큐레이션에 한계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탈락시켰느냐"는 항의에 명확히 답해야 하는데, 스타트업의 잠재력 같은 정성적 평가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셋째, 후속 관리가 부실합니다. 매칭만 시켜주고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협업이 성공하려면 지속적인 코칭과 혁신중개가 필요한데, 공공 사업은 다음 기수 모집하기 바쁩니다.


민간 혁신중개자의 필요성

그래서 역설적으로 전문 혁신중개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공모로는 할 수 없는,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 깊이 있는 사전 검증입니다. 민간 중개자들은 스타트업을 직접 만나 기술력, 팀 역량, 사업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서류만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스크리닝이죠.

둘째, 맞춤형 매칭입니다. 대기업의 암묵적인 니즈까지 파악해서, 단순히 기술이 맞는지를 넘어 조직 문화, 협업 스타일까지 고려한 매칭을 제공합니다.

셋째, 지속적인 관계 관리입니다. 매칭 후에도 협상, 계약, PoC 진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갈등을 중재하고, 양측이 윈윈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넷째, 기밀성 보장입니다. 공개적으로 올릴 수 없는 전략적 과제들을 다룰 수 있습니다.


다만 민간은 수익원이 없이 생존할 수 없습니다. 무역협회 같은 기관은 별도 재원을 통해 수익을 내어 스타트업 사업은 비영리 무료로 제공하는, 치트키를 쓰고 있지만요. 민간은 매칭의 전문성을 유지하되, 매칭 이후 단의 PoC/액셀러레이팅/어드바이징/투자운용 등 다양하고 합리적인 수익원을 개발해 수익구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공공-민간 협업 모델

결국 최선의 해법은 공공의 폭넓은 접근성과 민간의 전문성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협업 모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업진흥원의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은 수요기반형 트랙을 넥스트유니콘 같은 민간 플랫폼에 위탁 운영합니다. 공공의 예산과 정당성, 민간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결합한 모델이죠.

또 다른 예는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입니다. 공개모집으로 1차 풀을 만들되, 최종 매칭 단계에서는 민간 액셀러레이터들이 참여해 밀착 코칭을 제공합니다.

무역협회의 이노브랜치도 공공 기관들과 협력하면서도, 유료 서비스로 프리미엄 매칭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5. 마치며: 열린 혁신을 위한 닫힌 전략

오픈이노베이션, 말 그대로 '열린 혁신'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성공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닫힌 전략'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문을 활짝 열기보다는, 누구에게 어떻게 문을 열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공개모집이냐 비공개 소싱이냐는 이분법적 선택이 아닙니다. 과제의 성격, 조직의 역량, 기대하는 결과에 따라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합니다. 때로는 공개모집으로 폭을 넓히고, 때로는 비공개로 깊이를 더합니다.


플랫폼도 마찬가지입니다. OI 마켓 같은 공공 플랫폼의 접근성과, 이노브랜치 같은 민간 플랫폼의 전문성을 상황에 맞게 활용해야 합니다. 구글 폼의 간편함도 무시할 수 없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혁신중개자의 역할입니다. 공모가 일반화된 한국 시장에서, 단순히 플랫폼에 올리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좋은 매칭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전문성을 가진 중개자가 큐레이션하고, 깊이 있는 검증을 하며, 지속적으로 관계를 관리해야 진짜 혁신이 일어납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공모에 떨어졌다고, 혹은 원하는 스타트업이 안 나타난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핵심은 '매칭의 기술과 전문성'입니다. 올바른 플랫폼을,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른 파트너와 함께 활용한다면, 오픈이노베이션은 분명 양쪽 모두에게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2026년, 한국의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는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고, 국내와 글로벌이 연결되며, 플랫폼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혁신은 열린 문에서 시작되지만, 성공은 현명한 선택에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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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Dr.Jin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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