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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미국·유럽의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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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Dr. Jin입니다.


최근 글로벌 혁신 생태계를 공부하면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같은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과 유럽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있었죠. 마치 같은 악보를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것처럼, 두 지역은 각자의 산업 특성과 문화에 맞는 독특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실리콘밸리의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중심 구조와 유럽의 정책 기반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을 비교하며,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는지, 그리고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서론: 두 대륙, 두 가지 철학


1.1 오픈이노베이션의 본질적 의미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2003년 처음 소개한 오픈이노베이션은 미국에서 씨앗을 뿌리며 주로 '투자'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Google Ventures, Intel Capital, Salesforce Ventures 같은 거대 CVC들이 소수 정예의 스타트업에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으며, 빠른 성장과 Exit를 추구하는 모델이죠.


반면 오픈이노베이션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 특히 독일과 북유럽에서 다다르며 '협력'의 언어로 해석되었습니다. BMW, Bosch, Siemens 같은 제조 강자들이 벤처클라이언트(혁신구매) 모델을 통해 스타트업의 '고객'이 되어,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가 아닙니다. 각 대륙의 산업 구조, 자본 시장의 성숙도, 그리고 혁신에 대한 문화적 접근방식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죠.


1.2 이 비교가 어떤 의미인지가

2024년 현재, 글로벌 VC 투자는 3,683억 달러에 달하며, 이중 CVC가 참여한 투자는 1,851억 달러로 전체의 50%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실리콘밸리만 해도 900억 달러(미국 전체의 57%)를 차지하는 반면, 유럽 전체는 624억 달러에 그쳤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투자 방식의 차이입니다. 미국은 소수의 메가라운드에 집중하는 반면(2024년 Q4 OpenAI $6.6B, Databricks $10B 등), 유럽은 수백 개의 중소규모 프로젝트에 분산 투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많다 vs 적다'의 문제가 아니라, 혁신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 차이를 보여줍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지금 이 두 모델 사이에 어딘가에서 성장 중입니다. 과연 어떤 모델이 우리에게 더 적합할까요? 아니면 제3의 길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모델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2. 미국: 실리콘밸리의 'CVC' 중심 구조


2.1 실리콘밸리 생태계의 DNA

실리콘밸리는 단순한 지리적 위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생태계이자, 사고방식이며, 때로는 종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합니다. 2024년 기준, 미국 전체 VC 투자의 57%인 900억 달러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전 세계 빅테크 엔지니어의 49%, 스타트업 엔지니어의 27%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죠.


이러한 집중도는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가 투자자를 만나고, 우수한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첫 고객을 확보하는 과정이 다른 어느 곳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가 70년 넘게 혁신의 중심을 지키는 기반입니다.



2.2 CVC의 진화: 투자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2.2.1 CVC의 폭발적 성장

2024년 Silicon Valley Bank와 Counterpart Ventures의 State of CVC 리포트에 따르면, CVC는 더 이상 전통적 VC의 보조 수단이 아닙니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CVC는 전체 VC 딜 밸류의 46%를 차지했으며, 2024년에는 참여 비율이 35%로 201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CVC의 '독립성' 증가입니다. 과거 CVC는 모기업의 강력한 통제 하에 있었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오프 밸런스 시트(off-balance sheet) 구조를 채택하는 CVC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더 빠른 의사결정과 경쟁력 있는 보상을 가능하게 하여, 우수한 딜 소싱 능력을 갖춘 인재를 영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구체적인 숫자로 보는 주요 CVC들:

Google Ventures (GV) (공식 사이트):

16년간 738개 기업에 투자

운용 자산(AUM): 100억 달러 이상

2024년 단독으로 68건 투자 실행

포트폴리오 성과: 61개 유니콘, 44개 IPO, 234건 M&A

주요 성공 사례: Uber, Slack, HubSpot, Robinhood, GitLab

AI 부문만 50개 이상 기업 투자

시리즈 A 평균 라운드 사이즈: 2,840만 달러


Intel Capital (연례 리뷰):

26년간 844개 기업에 투자

총 투자 집행액: 200억 달러 이상

포트폴리오 성과: 22개 유니콘, 40개 IPO, 347건 M&A

2024년 주요 성과: Astera Labs IPO 성공

포트폴리오 지원 활동: 1,300건의 Global 2000 기업 고객 연결 37개 Customer Connect 이벤트 (전 세계) 30명 이상의 임베디드 전문가 파견 600개 이상 고유 고객사 연결

2025년 독립 펀드로 전환 발표


2.2.2 AI 시대의 CVC: 선택과 집중

2024년은 'AI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체 VC 투자의 37%가 AI 관련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갔으며, 2022년의 9%에서 4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CVC들은 이 흐름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2025년 1분기, CVC가 참여한 상위 10대 딜 중 7개가 AI 스타트업이었습니다. Anthropic의 35억 달러 시리즈 E 라운드(Cisco, Salesforce Ventures 참여)는 단일 분기 CVC 펀딩의 19%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CVC가 단순히 '분산 투자'하는 게 아니라, 미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베팅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3 SaaS와 IT 중심 생태계

2.3.1 SaaS: 미국 VC의 최대 수혜자

SaaS(Software as a Service)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 벤처 생태계의 심장입니다. 2023년 기준, SaaS 스타트업이 전체 VC 펀딩의 47%를 차지했으며, 이는 2019년의 36%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4년 상반기만 해도 전 세계 SaaS 스타트업 투자액은 723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이 중 미국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죠. 특히 AI 기반 SaaS가 혁신의 최전선이었습니다. GPT-4 기반 작성 도구, 머신러닝 플랫폼, AI 비즈니스 분석 도구 등 'AI+SaaS' 조합은 투자자들의 체크북을 열게 하는 마법의 공식이 되었습니다.


2.3.2 밸류에이션의 양극화

하지만 모든 SaaS가 환영받는 건 아닙니다. 2024년 데이터를 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납니다. 시리즈 A 중간 밸류에이션은 3,990만 달러로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2023년 대비 33% 증가). 시리즈 B도 1억 6,820만 달러로 20% 상승했죠.

그러나 시리즈 C는 여전히 2억 2,500만 달러로 2021년 피크(3억 2,000만 달러)에 훨씬 못 미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초기 단계에서는 AI 프리미엄으로 인해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지만, 후속 라운드에서는 명확한 재무 성과와 성장 효율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ROI, 즉 '효율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2.3.3 핫한 섹터들

2024년 VC들이 가장 주목한 SaaS 서브섹터들을 살펴보면:


AI 기반 SaaS: 의심의 여지 없는 챔피언입니다. Generative AI를 활용한 비즈니스 솔루션부터 머신러닝 플랫폼까지, AI 통합을 내세운 SaaS는 펀딩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했습니다.


사이버보안 SaaS: 랜섬웨어와 데이터 유출이 급증하면서 보안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클라우드 보안, 제로 트러스트 네트워킹, IAM(Identity and Access Management) 등이 큰 투자를 받았습니다. 2024년 1분기에만 2023년 전체보다 많은 사이버 관련 실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핀테크 SaaS: 암호화폐/블록체인의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코어 B2B 핀테크가 부상했습니다. B2B 결제 및 청구 SaaS, 네오뱅킹 백엔드 소프트웨어, 규제 준수 SaaS(RegTech) 등이 견고한 펀딩을 받았습니다.


2.4 CVC의 전략적 목표와 한계

2.4.1 M&A의 역설

흥미롭게도, CVC 투자가 M&A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PitchBook 분석에 따르면, 2000년 이후 CVC 백드 기업 중 기존 CVC 투자자에게 인수된 경우는 4% 미만입니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CVC가 전체 딜 밸류의 46%를 차지했지만, 실제 M&A로 연결된 것은 극소수였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단계 선호도: CVC는 후기 단계 투자를 선호하는데, 이런 성숙한 기업을 통합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합니다.

전략적 유연성: 소수 지분 보유자로서 스타트업의 혁신과 경쟁 포지션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으면서도, 완전 인수의 리스크는 피할 수 있습니다.

목표 불일치: 후기 단계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종종 IPO를 목표로 하며, 인수 제안이 있더라도 여러 후보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완적 vs 통합적 관계: CVC가 투자한 스타트업이 모기업과 '보완적' 관계라면, 굳이 완전 통합할 필요가 없을 수 있습니다.


2.4.2 CVC의 진정한 가치

그렇다면 CVC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Global Corporate Venturing 연구에 따르면, 기업 투자자를 둔 스타트업은 파산 위험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인수나 IPO 시 Exit 배수가 증가합니다. 이는 CVC가 제공하는 부가가치 때문입니다:

산업 전문성과 멘토링

판매 채널 접근성

제조 및 유통 인프라

신뢰성 제고 및 검증 효과

전략적 파트너십 기회

결국 CVC의 가치는 단순한 자본 제공을 넘어, 스타트업이 대기업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2.5 실리콘밸리 모델의 강점과 약점


강점


1. 압도적인 자본력: 2024년 미국은 2,217억 달러의 VC 투자를 유치했으며, 이는 2023년 대비 28%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러한 자본 집중은 스타트업에게 빠른 확장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2. 속도와 민첩성: 실리콘밸리의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학습하라(Fail Fast, Learn Faster)' 문화는 혁신 사이클을 극적으로 단축시킵니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피벗이 자유롭습니다.


3. 생태계 밀도: 같은 커피숍에서 투자자, 창업가, 엔지니어, 멘토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은 세계에서 실리콘밸리뿐이라 하네요. 이런 '우연한 만남(Serendipity)'이 혁신을 촉진합니다.


4. Exit 기회: 미국은 2024년 IPO 거래가 38% 증가했으며, 금액 기준으로는 48% 성장했습니다. 활발한 공개 시장은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Exit 경로를 제공하지요.


약점


1. 과도한 집중 리스크: 2024년 4분기, 상위 4개 메가 딜(Databricks, OpenAI, xAI, Waymo)이 총 1,130억 달러 펀딩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이런 집중은 버블 리스크를 키웁니다.


2. 단기주의: Exit 압박은 장기적 가치 창출보다 빠른 성장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이는 때때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집니다.

3. 인수합병의 한계: 앞서 언급했듯, CVC 투자가 실제 M&A로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는 전략적 시너지를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4. 지나친 경쟁과 밸류에이션 인플레이션: AI 붐으로 인해 초기 단계 밸류에이션이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향후 조정의 위험을 내포합니다.



3. 유럽: 정책 기반의 생태계형 오픈이노베이션


3.1 유럽 혁신 생태계의 특징

유럽의 혁신 접근방식은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실리콘밸리가 '스타 시스템'이라면, 유럽은 '앙상블 연극'에 가깝습니다. 개별 플레이어의 화려함보다는 전체 생태계의 조화와 지속가능성을 중시하죠.

2024년 유럽의 VC 투자는 624억 달러로, 미국의 약 28% 수준입니다. 하지만 이 숫자만으로 유럽의 혁신 역량을 판단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유럽은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으니까요.


3.2 Horizon Europe: 세계 최대 공공 R&D 프로그램


3.2.1 프로그램 개요

Horizon Europe은 2021-2027년 기간 동안 약 950억 유로(약 1,000억 달러) 규모의 EU 연구혁신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공 R&D 이니셔티브이며, 유럽의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의 중추입니다.


2025-2027년을 위한 두 번째 전략 계획은 2024년 3월 채택되었으며, 세 가지 핵심 우선순위를 설정했습니다:

그린 전환 (Green Transition)

디지털 전환 (Digital Transition)

더 회복력 있고, 경쟁력 있으며, 포용적이고 민주적인 유럽


3.2.2 구체적 이니셔티브들

EIT Digital: 유럽 혁신기술연구소의 디지털 부문으로, 딥테크 스타트업과 기업 파트너를 연결하는 핵심 플랫폼입니다. 'Open Innovation Factory' 프로그램은 초기 단계 벤처에 최대 40만 유로의 재정 지원과 펀드레이징 지원, 멘토링, 350개 이상의 파트너 네트워크 접근을 제공합니다.


EIC Fund: European Innovation Council Fund는 딥테크 혁신 기업에 직접 투자합니다. 2024년 10월, 유럽 위원회는 'Trusted Investors Network'를 출범시켰는데, 71개 투자자(VC, 공공투자은행, 재단, CVC)가 참여하여 총 900억 유로 이상의 자산을 대표합니다.


EIT Manufacturing: 제조업 혁신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입니다. 'Innovate Together 2024' 콜은 500만 유로 예산으로 First-Time-Right Manufacturing과 End-of-Lifecycle Management라는 두 가지 주제에 집중했습니다. 이는 Net Zero Industry Act와 European Green Deal을 지원합니다.


3.2.3 정책의 실제 효과

이러한 정책 지원은 실질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Innovation Fund는 77개 탈탄소화 프로젝트에 42억 유로를 지원하는 보조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들은 2025-2031년 사이 가동될 예정이며, 향후 10년간 약 3억 9,760만 톤의 CO2 상당량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네요.



3.3 벤처클라이언트 모델: 유럽의 독창적 발명


3.3.1 벤처클라이언트의 탄생 배경

2015년, BMW의 혁신 매니저였던 그레고어 김미(Gregor Gimmy)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자율주행 팀이 수십 개의 머신 비전 제품을 테스트한 후, MobileEye의 제품만이 필요한 수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던 것이죠.

김미는 세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BMW의 R&D 예산으로는 MobileEye가 쏟은 5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

최고의 스타트업 솔루션은 기존 VC를 통해서도 접근하기 어렵다

많은 스타트업이 초기 고객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통찰에서 BMW Startup Garage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벤처클라이언트(Venture Client)' 모델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졌죠.


3.3.2 벤처클라이언트 vs CVC: 근본적 차이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의 핵심은 지분 투자가 아니라 제품 구매입니다. 기업은 스타트업의 솔루션을 실제로 사용하는 '고객'이 되는 것이죠.


전통적 CVC 접근:

소수 지분 투자 (보통 5-20%)

연간 5-10개 스타트업 투자 한계

재무적 리턴과 전략적 가치 동시 추구

투자 심사 과정이 길고 복잡함 (6-12개월)

Exit 시점에 가치 실현


벤처클라이트 접근:

지분 투자 없음 (제품/서비스 구매)

연간 10-25개 스타트업과 파일럿 프로젝트

즉각적인 전략적 가치에 집중

빠른 의사결정 (2-3개월)

파일럿 단계에서부터 가치 창출


첫 구매는 'MVP(Minimum Viable Purchase)'로, 비즈니스 유닛이 검증할 수 있을 정도의 샘플만 구매합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초기 수익을 확보하고, 실제 사용 사례와 피드백을 얻으며, 대기업의 검증을 받는 효과가 있지요.


3.3.3 글로벌 확산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은 이제 글로벌 현상이 되었습니다. 27pilots(김미가 2018년 BMW를 떠나 설립한 회사, 2023년 Deloitte에 인수됨)는 50개 이상의 기업이 벤처클라이언트 역량을 구축하도록 도왔습니다.


주요 채택 기업들:

독일: BMW, Bosch, Siemens, BSH, Holcim, Otto

프랑스: Airbus, AXA

스위스: Zurich Insurance, Knauf

아시아: Mitsubishi Electric, OKI (일본), Vale (브라질)

미국: GE (초기 단계 도입)


2024년 State of Venture Client 리포트에 따르면, 27pilots가 설립을 도운 벤처클라이언트 유닛 중 폐쇄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이는 이 모델의 효과성을 입증합니다.


3.3.4 성공 사례

BMW와 Brighteye Ventures: AI 기반 운전자 지원 시스템 개선으로 안전 기능 향상

Bosch와 Teralytics: 도시 교통 혼잡 감소 및 대중교통 스케줄 최적화로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 강화


Siemens와 Konux: 철도 운영자의 유지보수 일정 개선 및 다운타임 감소로 운영 효율성 향상

Airbus: 전통적 액셀러레이터 접근방식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혁신 프로세스의 속도, 품질, 효율성 개선



3.4 제조업 중심의 혁신 생태계


3.4.1 독일 제조업의 DNA

유럽, 특히 독일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제조업 중심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독일은 'Industrie 4.0'의 발상지이며, 정밀 엔지니어링과 장인 정신(Handwerk)의 전통을 자랑합니다.

2024년 European Innovation Scoreboard에 따르면, 독일은 제조업 부문에서 가장 적은 해외 투입 의존도를 보였습니다. 지식집약적 수출의 50% 이상이 국내에서 생산된 가치입니다. 이는 미국, 한국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3.4.2 Net Zero Industry Act와 제조업 혁신

2024년 채택된 Net Zero Industry Act는 19개 넷제로 기술을 다루며, 유럽의 고도로 집중된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 투자에 유리한 조건을 만듭니다.

이 법안은 다음을 통해 혁신을 지원합니다:

넷제로 규제 샌드박스 생성

SEST(Strategic Energy Technologies Plan) 운영 그룹을 통한 R&I 활동 조정

상업화 이전 조달 및 혁신 솔루션의 공공 조달 활용


3.4.3 제조업 혁신의 실제 사례


Siemens Mobility의 StationX: 2018년 설립된 Siemens Mobility의 벤처클라이언트 유닛입니다. 첨단 스타트업과 비즈니스 유닛 간 파트너십을 촉진하여 함께 확장하고 양측에 비즈니스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EIT Manufacturing의 Innovate Together: European Factories of the Future Research Association (EFFRA)과 협력하여 제조 기술의 시장 배치를 가속화합니다. 2024년 500만 유로 예산으로 First-Time-Right Manufacturing과 End-of-Lifecycle Management에 집중했습니다.


3.5 유럽 모델의 강점과 약점


강점


1. 체계적이고 포용적인 접근: Horizon Europe 같은 프로그램은 모든 회원국의 연구자와 혁신가를 포함하며, '혁신 격차'를 줄이려 노력합니다. Regional Innovation Valleys 이니셔티브는 혁신 성과가 낮은 지역도 포함합니다.


2. 장기적 지속가능성: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은 빠른 Exit보다 장기적 파트너십을 추구합니다. 이는 더 깊은 기술 통합과 지속가능한 혁신으로 이어집니다.


3. 규제의 명확성: AI Act, GDPR 등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는 장기적으로 법적 확실성을 제공하고,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습니다. 유럽은 여러 의미에서 규제 강국(!)이라기보다, 규제 선진국이죠.


4. 제조업 강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강력한 제조 기반은 하드웨어와 물리적 제품 혁신에서 우위를 제공합니다.


5. 리스크 분산: 많은 중소규모 프로젝트에 분산 투자하는 것은 시스템 리스크를 줄입니다.


약점


1. 자본 격차: 2024년 Mario Draghi의 유럽 경쟁력 보고서는 유럽이 기술과 혁신에서 미국과 연간 7,000억 유로의 투자 격차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2. 분절화: 27개 EU 회원국의 서로 다른 규제, 언어, 문화는 '숨겨진 세금'을 만듭니다. 진정한 디지털 단일 시장 없이는 국경을 넘어 확장하는 것이 너무 비용이 많이 듭니다.


3. 느린 의사결정: 유럽의 합의 기반 문화와 관료주의는 때때로 혁신 속도를 늦춥니다. 실리콘밸리의 '빠르게 움직이고 파괴하라'는 유럽에서 '신중하게 움직이고 규칙을 따르라'가 됩니다.


4. Exit 시장의 부재: 유럽의 IPO 시장은 미국보다 훨씬 작고 덜 활발합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Exit 경로가 부족함을 의미합니다.


5. 위험 회피 문화: 유럽의 투자자들은 미국보다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파괴적 혁신보다는 점진적 개선을 선호하게 만듭니다.


6. AI 투자 격차: 2024년 미국의 AI 투자는 약 1,000억 달러로 추정되는 반면, 유럽은 낙관적으로 봐도 20억 달러 수준이라 합니다. 50배 차이가 나네요...



4. 심층 비교: 두 모델의 철학적 차이


4.1 혁신에 대한 철학적 접근

미국과 유럽의 오픈이노베이션 차이는 단순한 방법론을 넘어, 혁신 자체에 대한 근본적 철학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4.1.1 미국: 창조적 파괴의 신봉자

실리콘밸리는 슘페터(Schumpeter)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이론의 가장 충실한 실행자입니다. 기존 산업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미덕이며, 실패는 배움의 기회로 여깁니다.


'Fail Fast, Learn Faster', 'Move Fast and Break Things' 같은 격언들, Lean Startup 방법론 등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런 문화는 대담한 실험과 빠른 피벗을 장려하며,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베팅도 가능하게 합니다.


CVC는 이런 철학의 연장선입니다. 소수 정예의 스타트업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유니콘'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90%의 스타트업이 실패하더라도, 10%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습니다.


4.1.2 유럽: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자

반면 유럽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과 '포용성(Inclusiveness)'을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혁신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회를 파괴하거나 환경을 해치면 안 됩니다.


'Precautionary Principle(사전예방 원칙)'은 유럽 규제 철학의 근간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안전함이 입증될 때까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죠. AI Act, GDPR 등이 이를 반영합니다.


벤처클라이언트 모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분 투자 없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스타트업에게 초기 수익과 검증을 제공하면서도, 대기업이 과도한 통제권을 갖지 않도록 합니다. 이는 더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든다 볼 수 있죠.



4.2 시간 지평(Time Horizon)의 차이


4.2.1 미국: 빠른 Exit를 향한 질주

실리콘밸리의 전형적인 스타트업 여정은 5-7년입니다. 시드 펀딩부터 시작해서, 시리즈 A, B, C를 거쳐, IPO나 M&A로 Exit하는 것이 이상적인 시나리오입니다.


VC들은 10년 만기 펀드를 운영하므로, LP(Limited Partner)들에게 리턴을 돌려줘야 하는 압박이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빠른 성장과 빠른 Exit를 추구하게 만듭니다.


이런 구조는 효율적이지만, 때때로 단기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분기별 성장률에 집착하고, 장기적 가치 창출보다 빠른 밸류에이션 상승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4.2.2 유럽: 마라톤 주자의 인내

유럽 기업들, 특히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을 채택한 제조업 기업들은 훨씬 긴 시간 지평을 갖고 있습니다. BMW, Bosch, Siemens 같은 기업들은 수십 년, 심지어 백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들입니다.


이들에게 스타트업과의 협력은 분기별 실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10-20년 후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단기 ROI보다는 장기적 전략적 가치를 중시합니다.


벤처클라이언트 유닛이 연간 10-25개의 스타트업과 파일럿을 진행하고, 그 중 30-50%만이 장기 상업 관계로 발전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여기도 깔때기가 하나 있는 셈이네요) 많은 실험을 통해 배우고, 진짜 가치 있는 관계는 오래 유지하는 것이죠.



4.3 성공 지표의 차이


4.3.1 미국: 재무적 리턴이 중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은 명확합니다. 얼마나 큰 Exit을 만들어냈는가, 펀드의 IRR(Internal Rate of Return)은 얼마인가, 유니콘을 몇 개 배출했는가...


2024년, OpenAI의 66억 달러 라운드, Databricks의 100억 달러 라운드 같은 메가 딜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이들의 밸류에이션(각각 1,570억 달러, 620억 달러)은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CVC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전략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재무적 리턴으로 평가받습니다. LP들에게 돌아가는 DPI(Distributed to Paid-In capital)가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4.3.2 유럽: 전략적 가치와 생태계 건강

유럽, 특히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에서는 성공 지표가 다릅니다. BMW Startup Garage는 "x10 더 많은 스타트업을 CVC나 일반 기술 소싱보다 훨씬 빠르게 채택했다"고 자랑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속도'와 '수량'입니다. 얼마나 빨리 혁신적 기술을 찾아서, 실제 비즈니스에 통합할 수 있는가. 또한 얼마나 많은 스타트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가.


Horizon Europe 같은 정책 프로그램의 경우, 성공은 더욱 다면적입니다: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는가

지역 간 혁신 격차를 줄였는가

환경적 지속가능성에 기여했는가

사회적 포용성을 향상시켰는가

이런 지표들은 정량화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전체의 건강을 좌우합니다.



4.4 리스크 관리 접근


4.4.1 미국: 포트폴리오 접근과 집중 베팅

실리콘밸리 VC들은 전형적으로 포트폴리오 접근을 취합니다. 30-50개 스타트업에 투자하되, 그 중 1-2개의 '홈런'이 전체 펀드 리턴의 대부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최근 트렌드는 '집중 베팅'입니다. 2024년 딜 카운트는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지만, 중간 딜 사이즈는 1,000만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즉, 더 적은 회사에, 더 큰 금액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CVC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2025년 1분기, CVC가 참여한 상위 10대 딜 중 7개가 AI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미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베팅에 집중하는 것이죠.


4.4.2 유럽: 분산과 단계적 확장

유럽의 접근은 더 보수적입니다.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에서 첫 구매는 MVP(Minimum Viable Purchase)로 시작합니다. 스타트업 솔루션의 샘플만 구매해서, 비즈니스 유닛이 검증하는 것이죠.

검증이 성공적이면, 점진적으로 규모를 확대합니다. 파일럿 프로젝트 → 제한적 롤아웃 → 전사 확산의 단계를 밟습니다. 이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스타트업에게는 학습과 개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정책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Horizon Europe은 단일 메가 프로젝트보다는, 수백 개의 중소 프로젝트에 분산 투자합니다. 이는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의 리스크를 피하면서, 더 많은 연구자와 혁신가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4.5 지리적 집중 vs 분산


4.5.1 미국: 실리콘밸리로의 극단적 집중

2024년 데이터는 놀랍습니다. 실리콘밸리(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가 미국 전체 VC 투자의 57%인 900억 달러를 차지했습니다. 두 번째인 뉴욕이나 보스턴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수치입니다.

이런 집중은 자기 강화 사이클을 만듭니다. 최고의 창업가, 투자자, 엔지니어가 실리콘밸리로 모이고 →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 더 많은 자본이 유입되고 → 더 많은 인재가 모입니다.

네트워크 효과의 완벽한 사례이지만, 동시에 다른 지역은 소외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AI와 같은 기반범용기술이 치고 올라올수록,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네요.


4.5.2 유럽: 다중심 생태계

유럽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27개 회원국, 24개 공식 언어, 다양한 규제 시스템. 이는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Horizon Europe의 'Regional Innovation Valleys' 이니셔티브는 의도적으로 혁신 성과가 낮은 지역을 포함합니다. 목표는 혁신을 분산시키고, 모든 지역이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2024년 European Innovation Scoreboard를 보면, 다양한 국가들이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웨덴: 지식재산권 출원에서 강점

독일: 제조업 부문 국내 가치 창출 비율 최고

덴마크: 전체 혁신 성과 1위

에스토니아: 빠른 성장으로 'Strong Innovator' 그룹 진입

이런 다양성은 때로 비효율적이지만,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고 다양한 혁신 모델을 실험할 수 있게 합니다.



5. 산업별 특화: IT/SaaS vs 제조업


5.1 왜 미국은 SaaS에 강한가


5.1.1 소프트웨어 우선 문화

실리콘밸리는 근본적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입니다. "Software is eating the world"(Marc Andreessen)라는 격언이 상징하듯, 모든 산업이 결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입니다.

이런 문화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Intel, Hewlett-Packard, Apple, Microsoft, Oracle, Google, Facebook으로 이어지는 계보는 모두 소프트웨어/플랫폼 중심 기업들입니다.


5.1.2 SaaS 비즈니스 모델의 매력

SaaS는 VC들이 가장 사랑하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확장성: 추가 고객 확보 비용이 낮습니다

반복 수익: 월간/연간 구독으로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

높은 마진: 소프트웨어는 복제 비용이 거의 없습니다

빠른 글로벌 확장: 물리적 제약 없이 전 세계 고객 확보 가능

2023년 SaaS 스타트업이 전체 VC 펀딩의 47%를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5.1.3 AI+SaaS: 완벽한 조합

2024년 AI 붐은 SaaS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AI 기능을 통합한 SaaS 제품들은 투자자들의 열광적 반응을 얻었습니다.

기존 SaaS 카테고리들도 AI로 재탄생했습니다:

CRM → AI-powered sales intelligence

프로젝트 관리 → AI-driven resource optimization

고객 지원 → AI chatbots and sentiment analysis

재무 관리 → AI-based forecasting and anomaly detection


5.2 왜 유럽은 제조업에 강한가


5.2.1 Industrie 4.0의 발상지

독일이 2011년 'Industrie 4.0' 개념을 제시했을 때, 이것은 단순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200년 산업 역사를 가진 나라의 미래 비전이었죠.

Industrie 4.0는 사이버-물리 시스템, 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지 컴퓨팅을 통합하여 '스마트 팩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독일의 강점(정밀 제조, 자동화, 품질 관리)과 미래 기술을 결합한 것입니다.


5.2.2 히든 챔피언의 나라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이 명명한 'Hidden Champions'는 유럽 제조업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이들은 글로벌 시장 1-3위를 차지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견 제조 기업들입니다.

예를 들어:

Kärcher (고압 세척기)

Webasto (자동차 루프 시스템)

Harting (산업용 커넥터)

Trumpf (레이저 기술)

이들은 B2B 시장에서 압도적 기술력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합니다. 화려한 소비자 브랜드는 아니지만, 산업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들이죠.


5.2.3 벤처클라이언트가 제조업에 최적인 이유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은 제조업의 특성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긴 제품 수명주기: 자동차는 7-10년, 산업 기계는 20-30년 사용됩니다. 장기적 파트너십이 필수입니다.

복잡한 공급망: 제조업은 수천 개의 부품과 공급업체가 얽혀 있습니다. 스타트업 솔루션을 통합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높은 안전/품질 기준: 제조업, 특히 자동차나 항공우주는 엄격한 인증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이 이를 충족하려면 대기업의 지원이 필수입니다.

물리적 제약: 소프트웨어와 달리, 하드웨어는 '빠르게 움직이고 파괴하기' 어렵습니다. 신중한 테스트와 검증이 필요합니다.

BMW Startup Garage가 자율주행, 배터리 기술, 경량 소재 등에서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것은 이런 맥락입니다.


5.3 두 접근의 융합 가능성

흥미롭게도, 최근 두 접근이 융합되는 조짐이 보입니다.

미국의 하드웨어 회귀: Tesla, SpaceX, Rivian 같은 회사들은 소프트웨어 마인드셋으로 하드웨어를 만듭니다. 이들은 '소프트웨어 회사'로 자신을 정의하지만, 물리적 제품을 만듭니다.

유럽의 디지털 전환: BMW, Siemens, Bosch 같은 전통 제조 기업들이 'software-defined'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이제 '바퀴 달린 컴퓨터'이고, 공장은 '데이터 허브'입니다.


6. 규제 환경의 극명한 차이


6.1 미국: 혁신 우선, 규제는 나중에


6.1.1 Permissionless Innovation

실리콘밸리의 철학은 'Permissionless Innovation'으로 요약됩니다. 즉, 일단 만들고 보자는 것입니다. 허가를 기다리지 말고, 혁신한 후 필요하면 규제를 조정하라는 접근입니다.

이런 철학은 엄청난 혁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Uber/Lyft: 먼저 서비스 출시, 나중에 택시 규제 협상

Airbnb: 먼저 플랫폼 구축, 나중에 호텔 규제 대응

Facebook: 먼저 성장, 나중에 프라이버시 문제 해결


6.1.2 장점과 부작용

이 접근의 장점은 명확하죠. 규제 불확실성이 혁신을 막지 않습니다. 창업가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장에서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 않습니다.

프라이버시 침해 (Cambridge Analytica 스캔들)

노동자 권리 문제 (gig economy 논쟁)

시스템적 편향 (AI 알고리즘의 인종/성별 차별)

시장 지배력 남용 (빅테크 독점 논쟁)


6.2 유럽: Precautionary Principle


6.2.1 AI Act: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

2024년 8월 발효된 EU AI Act는 세계 최초의 포괄적 인공지능 규제로 기록됐습니다. 이는 유럽의 규제 철학을 상당히 선명하게 보여주지요. AI Act는 AI 시스템을 리스크 수준별로 분류합니다:

금지된 AI: 사회적 점수 시스템, 잠재의식 조작, 실시간 원격 생체 인식 등

고위험 AI: 얼굴 인식, 의료 기기, 채용 시스템 등 - 엄격한 요구사항

제한적 위험 AI: 챗봇 등 - 투명성 의무

최소 위험 AI: 대부분의 AI 애플리케이션

고위험 AI의 경우, 다음을 준수해야 합니다:

리스크 관리 시스템 구축

데이터 거버넌스 및 관리

기술 문서화

인간 감독

정확성, 견고성, 사이버보안


6.2.2 비판과 옹호

비판: Meta의 Chief AI Scientist Yann LeCun은 오픈소스 AI를 과도하게 규제하면 유럽의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컴플라이언스 비용이 그들을 늦출까 두려워합니다.

옹호: 지지자들은 AI Act가 게임의 명확한 규칙을 설정하여, 스타트업과 기업에 법적 확실성을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GDPR이 데이터 보호의 글로벌 표준이 된 것처럼, AI Act도 수출 가능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2.3 기타 규제들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2018년 시행된 이 규제는 개인 데이터 보호의 글로벌 골드 스탠다드가 되었습니다. 미국 기업들도 유럽 시장에 진입하려면 GDPR을 준수해야 합니다.

Digital Markets Act (DMA): 빅테크 기업들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의무를 부과합니다.

Digital Services Act (DSA): 온라인 플랫폼이 불법 콘텐츠와 허위 정보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지도록 합니다.

Cyber Resilience Act: IoT 제품과 소프트웨어의 사이버 보안 기준을 설정합니다.



6.3 규제의 경제적 영향


6.3.1 혁신 저해 vs 신뢰 구축

비판자들은 과도한 규제가 유럽의 혁신을 저해한다고 주장합니다. 2024년 ITIF 보고서 "Europe's Innovation Lethargy"는 유럽이 미국과 중국에 기술 리더십을 양보했으며, 규제가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합니다.

반면 지지자들은 명확한 규제가 장기적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더 지속 가능한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SME를 위한 AI 샌드박스, 간소화된 문서화, 데이터 보호 가이던스 같은 지원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6.3.2 실제 데이터

숫자는 어떻게 말할까요? 유럽의 투자 감소: 2024년 유럽 VC 투자는 624억 달러로, 2023년 676억 달러에서 8%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8% 증가했습니다.

AI 투자 격차: 미국의 AI 투자는 약 1,000억 달러, 유럽은 20억 달러. 50배 차이입니다.

기업 밸류에이션: 세계 7대 트릴리온 달러 테크 기업은 모두 미국 기업입니다. 유럽은 1,000억 달러 이상 밸류에이션 기업이 28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죠.

특허 품질: 유럽 특허청(EPO)에 출원된 특허들은 미국 특허보다 평균적으로 더 엄격한 심사를 거치며, 품질이 높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지속가능성 리더십: 그린테크와 클린테크에서 유럽은 글로벌 리더입니다. Innovation Fund가 77개 탈탄소화 프로젝트에 42억 유로를 지원한 것이 이를 보여줍니다.



7. 문화적 차이와 인재 전쟁


7.1 실리콘밸리의 인재 자석


7.1.1 Dream Big 문화

실리콘밸리는 '꿈을 크게 가지라(Dream Big)'를 설교합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망은 조롱받지 않고, 오히려 장려됩니다. "Make a dent in the universe"(Steve Jobs)가 표준 어휘라 할 수 있죠.

이런 문화는 전 세계 야심찬 인재들을 끌어들입니다. H1B 비자로 미국에 온 엔지니어들 중 상당수가 실리콘밸리로 향하고 있고,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도 이에 동참했죠. 산호세에는 한인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7.1.2 실패의 재정의

실리콘밸리에서 실패한 창업자는 낙오자가 아니라, 경험을 쌓은 베테랑으로 여겨집니다. 여러 번 실패한 '연쇄 창업가'가 오히려 투자받기 쉬운 역설적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는 위험 감수를 장려하고, 대담한 실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7.1.3 보상 구조

스톡옵션(stock option)과 RSU(Restricted Stock Unit)는 실리콘밸리 보상의 핵심입니다. 초기 직원들은 낮은 현금 급여를 감수하고, 회사 성공 시 큰 보상을 받는 구조입니다.

성공적인 Exit 후 갑자기 부자가 된 엔지니어들의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7.2 유럽의 인재 유출 문제


7.2.1 Brain Drain

유럽은 심각한 'Brain Drain'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최고의 AI 연구자, 엔지니어, 창업가들이 미국으로 떠납니다.

상징적 사례는 DeepMind입니다. 2010년 영국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유럽 VC들로부터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2014년 Google에 인수되었습니다. 현재 DeepMind는 Google의 AI 리더십을 뒷받침하며, 미국 AI 생태계의 일부가 되었지요.


7.2.2 보상 및 스톡옵션 문제

유럽에서는 스톡옵션이 미국만큼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국가마다 다른 세법과 규제가 통합된 스톡옵션 제도를 만들기 어렵게 합니다.

European Commission은 이를 인식하고, 2025년부터 스타트업 직원 스톡옵션에 대한 작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27개 회원국의 합의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7.2.3 위험 회피 문화

유럽, 특히 남부와 동부 유럽에서는 안정적인 직장(대기업, 공무원)이 여전히 선호됩니다. 창업은 '마지막 수단' 정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교육 시스템과 사회 안전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실패 시 두 번째 기회가 제한적이면, 위험을 감수하기 어렵습니다.


7.3 유럽의 반격: 인재 유지 전략


7.3.1 New European Innovation Agenda

하지만 유럽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2022년 발표된 이 아젠다는 다음을 포함하고 있죠. 인재 유지를 위한 다소 놓친 타이밍 같아도 효과적인 방법들입니다.

딥테크 혁신 기업 스케일업 지원

혁신 인턴십 제도

EU 인재 풀: 스타트업이 비EU 인재를 찾도록 지원

여성 기업가 및 리더십 제도

스톡옵션에 대한 선구적 작업


7.3.2 Local Champions 전략

Spotify (스웨덴), Adyen (네덜란드), UiPath (루마니아) 같은 유럽 유니콘들이 '롤모델'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에 머물면서도 글로벌 성공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7.3.3 Quality of Life 카드

유럽은 '일과 삶의 균형', '사회 안전망', '문화적 다양성'을 강점으로 내세웁니다. 미국의 '일 중독' 문화에 지친 인재들에게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을 가진 경력 많은 전문가들에게는 유럽의 의료, 교육, 육아 지원이 큰 장점입니다.


8. 미래 전망: 두 모델의 진화


8.1 AI 시대의 재편


8.1.1 AI 슈퍼파워로의 집중

2025년 현재, AI는 혁신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OpenAI, Anthropic, Google DeepMind, Meta AI, xAI 등 주요 AI 연구소는 모두 미국에 있습니다(중국 제외). 이들은 막대한 자본(2024년 AI 투자 1,000억 달러), 최고의 인재, 그리고 엄청난 컴퓨팅 파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Mistral, Hugging Face 같은 유망 스타트업이 있지만, 규모와 자금 면에서 크게 뒤처져 있습니다.


8.1.2 중국 변수

2024년 말, 중국의 DeepSeek가 미국 AI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보이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중국은 Alibaba의 Qwen, Baidu의 Ernie 등을 통해 빠르게 추격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중간 지점 같은 모델을 보입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유럽식)와 빠른 상업화(미국식)를 결합하고 있죠.


8.2 벤처클라이언트의 글로벌 확산


8.2.1 미국의 관심 증가

한편,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은 조용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CVC 중심이었던 미국 기업들도 벤처클라이언트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GE가 초기 단계 도입을 시작했고, 다른 Fortune 500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CVC가 M&A로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더 직접적으로 스타트업 기술을 채택할 방법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8.2.2 아시아의 급부상

일본(Mitsubishi Electric, OKI), 브라질(Vale), 인도(Tata Group) 등이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은 흥미롭습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일본 기업들이, 벤처클라이언트를 통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8.3.1 CVC + Venture Client

가장 정교한 기업들은 두 모델을 결합하고 있습니다. BMW가 좋은 예입니다:

BMW i Ventures: 전통적 CVC로, 미래 모빌리티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

BMW Startup Garage: 벤처클라이언트 유닛으로, 다양한 기술 솔루션 파일럿

BMW Group Ventures China: 중국 시장 특화 CVC

이런 다층적 접근은 각 모델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단점을 보완합니다.


8.3.2 정책 지원 + 민간 자본

유럽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Horizon Europe 같은 공공 프로그램이 초기 단계를 지원하고, 민간 VC와 CVC가 후속 투자를 담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출범한 Trusted Investors Network가 좋은 예입니다. EIC Fund가 딥테크 기업에 투자하면, 71개 민간 투자자들이 co-invest하는 구조입니다.


8.4 규제 수렴의 가능성


8.4.1 미국의 규제 강화

최근 미국도 빅테크 규제에 적극적입니다. FTC의 반독점 소송, 주 차원의 프라이버시 법안(California Consumer Privacy Act 등), AI 윤리 가이드라인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유럽식 규제를 전면 도입하지는 않겠지만, 두 접근이 점진적으로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8.4.2 유럽의 혁신 친화적 조정

한편 유럽도 과도한 규제가 경쟁력을 해친다는 비판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AI Act에 SME를 위한 샌드박스와 간소화된 절차가 포함된 것이 그 예입니다.

2025년부터 시작될 스톡옵션 개선 작업, 규제 간소화 패키지 등도 같은 맥락입니다.


8.5 제3의 길: 아시아 모델?

8.5.1 중국: 국가 주도 + 시장 경쟁

중국 모델은 독특합니다. 정부가 전략 산업을 선정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지만, 동시에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을 장려합니다.

AI에서 Alibaba, Baidu, Tencent, ByteDance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정부 지원 아래 민간 기업들이 실제 혁신을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8.5.2 한국: 재벌 중심 혁신?

한국은 또 다른 모델입니다. 삼성, 현대, SK, LG 같은 대기업 그룹(재벌)이 경제를 주도하는 구조에서, 스타트업 생태계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가 과제입니다.

최근 한국 기업들도 CVC와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입니다. 삼성Next, 현대Cradle, SK Ventures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하지만 아직 벤처클라이언트 모델 같은 독자적 혁신은 부족합니다.


8.5.3 싱가포르: 정부 주도 생태계 구축

싱가포르는 작은 국가이지만, 정부 주도로 세계적 혁신 허브를 만들었습니다. GIC, Temasek 같은 국부펀드가 적극적으로 VC 시장에 참여하고, Block71 같은 인큐베이터가 스타트업을 지원합니다.

유럽의 정책 주도 접근과 미국의 민간 주도 활력을 결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9. 시사점: 한국에게 주는 교훈

9.1 우리는 어떤 모델을 선택해야 하는가?

한국은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미국처럼 강력한 VC 생태계가 없고, 유럽처럼 탄탄한 중견 제조 기업 네트워크도 부족합니다. 대신 삼성, 현대 같은 글로벌 대기업과, 역동적이지만 Exit가 어려운 스타트업 생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9.1.1 대기업-스타트업 협력 강화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CVC를 운영하고 있지만,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제조업 강점을 가진 현대자동차, LG전자,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에게 적합할 것입니다.

BMW Startup Garage나 Siemens StationX를 벤치마킹하여, 연간 20-30개 스타트업과 파일럿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전담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9.1.2 정부 역할 재정립

한국 정부는 이미 K-Startup, TIPS, 중소벤처기업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Horizon Europe처럼 장기적 비전과 대규모 예산을 가진 통합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특히 딥테크(반도체, 바이오, 신소재 등)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출연연과 대학의 기술을 상업화하는 메커니즘을 개선해야 합니다.


9.1.3 인재 생태계 구축

한국은 우수한 엔지니어링 인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로의 유출이 심각합니다. 스톡옵션 제도 개선, 재도전 문화 조성, 실패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싱가포르가 EntrePass로 글로벌 창업가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한국도 매력적인 비자 및 정착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9.2 산업별 전략 차별화

9.2.1 반도체: 미국식 대규모 투자 + 유럽식 생태계

한국의 가장 강력한 산업인 반도체는 막대한 자본과 장기 R&D가 필요합니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CVC를 통한 적극적 투자와 동시에, 팹리스 스타트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정책 지원이 필요합니다.

9.2.2 바이오헬스: 유럽식 규제 명확성 + 미국식 자본

바이오 산업은 긴 개발 기간과 높은 규제 리스크가 특징입니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 프레임워크(유럽식)를 만들고, 동시에 충분한 환자 자본(patient capital)을 공급해야 합니다.

9.2.3 AI/소프트웨어: 미국식 속도 + 한국적 응용

한국은 AI 기초 연구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대신 제조, 헬스케어, 엔터테인먼트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AI를 응용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네이버, 카카오의 AI 연구소를 강화하고, 산학 협력을 통해 실용적 AI 솔루션을 개발해야 합니다.

9.3 Exit 시장 활성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장 큰 약점은 부실한 Exit 시장입니다. IPO는 어렵고, M&A는 더욱 드뭅니다.

9.3.1 코스닥 개혁

코스닥을 진정한 혁신 기업의 시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상장 요건 완화, 기술 평가 역량 강화, 기관 투자자 참여 확대가 필요합니다.

나스닥이 테크 기업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코스닥도 아시아의 혁신 시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9.3.2 M&A 문화 조성

한국 대기업들은 스타트업 인수에 소극적입니다. 이는 '내부 개발 선호(NIH: Not Invented Here)'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벤처클라이언트 모델이 이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고객으로서 협력하고, 성공하면 인수하는 단계적 접근이 리스크를 줄입니다.

9.4 글로벌 연결성 강화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 일본 사이에 위치하며, 문화적으로는 아시아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서구 지향적입니다. 이런 독특한 위치를 활용해야 합니다.

9.4.1 아시아 허브 전략

서울/판교를 '아시아의 혁신 허브'로 포지셔닝할 수 있습니다. 동남아, 중앙아시아 스타트업이 한국 대기업 및 VC와 연결되고, 한국을 발판으로 글로벌로 진출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9.4.2 글로벌 파트너십

실리콘밸리, 중국 선전, 싱가포르, 베를린 등과 공식적 파트너십을 맺어, 스타트업과 투자자의 교류를 촉진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의 MOU가 아니라, 실질적인 비즈니스 연결이 일어나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10. 결론: 오픈이노베이션의 미래


10.1 단일 모델은 없다

이 긴 여정의 끝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CVC 중심 모델은 소프트웨어와 빠른 확장이 중요한 산업에서 탁월합니다. 유럽의 벤처클라이언트와 정책 기반 모델은 제조업과 장기 R&D가 필요한 분야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두 모델 모두 장단점이 있으며, 각 국가와 기업은 자신의 맥락에 맞는 접근을 찾아야 합니다.


10.2 융합과 진화

더 흥미로운 것은 두 모델이 점진적으로 융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기업들이 벤처클라이언트에 관심을 보이고, 유럽이 혁신 친화적 규제 개선에 나서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미래의 오픈이노베이션은 아마도 하이브리드 형태일 것입니다:

초기 단계: 정책 지원 + 엔젤/시드 투자 (유럽식)

성장 단계: CVC 투자 + 벤처클라이언트 파일럿 (하이브리드)

확장 단계: 대규모 VC 라운드 (미국식)

성숙 단계: 전략적 파트너십 또는 M&A


10.3 AI 시대의 새로운 게임

AI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있습니다. 2024년 우리가 목격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컴퓨트 파워의 중요성: AI 시대에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수입니다. Anthropic의 35억 달러 라운드, OpenAI의 66억 달러 라운드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개발이 아니라, GPU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자금입니다.

이는 자본 집약적 성격이 강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스타트업이 아무리 좋은 알고리즘을 가져도, 충분한 컴퓨팅 파워 없이는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오픈소스 vs 독점: 흥미롭게도, AI는 또한 오픈소스 운동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Mistral, Hugging Face 같은 유럽 스타트업들이 오픈소스 모델을 옹호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자본력에서 밀리는 플레이어들에게 오픈소스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습니다.

규제의 향방: AI Act가 유럽 AI 산업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신뢰할 수 있는 AI의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향후 5-10년 내에 명확해질 것입니다.


10.4 지속가능성과 혁신의 균형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혁신의 방향도 바뀌고 있습니다. '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이 새로운 목표입니다.

이 측면에서 유럽의 접근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Net Zero Industry Act, European Green Deal, Innovation Fund의 77개 탈탄소화 프로젝트는 혁신과 지속가능성을 통합하려는 진지한 시도입니다.

실리콘밸리도 변하고 있습니다. Climate Tech 투자가 급증하고, ESG가 투자 결정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Tesla가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상징적입니다. 전기차는 이제 '환경주의자의 선택'이 아니라, 쿨하고 강력한 제품입니다.


10.5 다양성이 힘

결국, 미국과 유럽이 서로 다른 접근을 취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만약 전 세계가 하나의 모델만 따랐다면, 시스템적 리스크가 훨씬 컸을 것입니다.

생태계의 건강은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플레이어(미국)와 신중하게 움직이는 플레이어(유럽), 자본 집약적 베팅(CVC)과 관계 중심 협력(벤처클라이언트), 정책 주도(유럽)와 시장 주도(미국) – 이 모든 접근이 공존하면서 서로 배우고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10.6 한국의 선택

한국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미국을 따라 할 것인가, 유럽을 벤치마킹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적 길을 개척할 것인가?

제 생각에 답은 "모두 조금씩"입니다.

미국에서 배울 것:

대담한 비전과 빠른 실행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활발한 VC 생태계와 Exit 시장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는 자력

유럽에서 배울 것:

장기적 지속가능성 추구

대기업-스타트업 협력 메커니즘 (벤처클라이언트)

명확한 규제 프레임워크

지역 간 균형 발전

한국만의 길:

제조업 강점 + 디지털 역량 결합

빠른 실행력과 규모의 경제

문화 콘텐츠와 기술의 융합 (K-pop × 기술)

동북아시아 허브로서의 지정학적 위치 활용


10.7 마지막 생각: 협력이 경쟁을 이긴다

21세기의 가장 큰 도전들 – 기후 변화, 팬데믹, AI 안전성, 사이버 보안 – 은 어느 한 국가나 기업이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 산업을 넘어,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넘어 협력하는 것. 미국의 자본과 속도, 유럽의 제도와 지속가능성, 아시아의 제조 능력과 역동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진짜 혁신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히 기업이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방법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철학입니다. 혁신의 여정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는 것만큼 확실한 오답도 없습니다. 이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의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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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Jin 드림



참고문헌 및 추가 자료

주요 리포트:

Silicon Valley Bank & Counterpart Ventures, "State of Corporate Venture Capital 2025"

CB Insights, "State of CVC Q1 2025 Report"

27pilots (Deloitte), "State of Venture Client 2024"

European Commission, "European Innovation Scoreboard 2024"

KPMG, "Venture Pulse Q4 2024"

Sapphire Ventures, "State of the SaaS Capital Markets 2024/2025"

Mario Draghi, "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 Report" (2024)


추천 도서:

Henry Chesbrough, "Open Innovation" (2003)

Gregor Gimmy, "Venture Clienting" (관련 학술 논문 및 HBR 기고문)

Brad Feld & Jason Mendelson, "Venture Deals"

Eric Ries, "The Lean Startup"


유용한 웹사이트:

Global Corporate Venturing (globalventuring.com)

CB Insights (cbinsights.com)

Crunchbase (crunchbase.com)

European Commission Research & Innovation (ec.europa.eu/research)

27pilots (27pilots.com / stateofventureclient.com)


한국 관련:

K-Startup (k-startup.go.kr)

중소벤처기업부 (mss.go.kr)

한국벤처캐피탈협회 (kvca.or.kr)

창업진흥원 (kise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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