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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오픈이노베이션 관련 이론적 기반 및 개념

“열려 있는 조직만이 배우고, 배우는 조직만이 혁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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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Jin.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편은 오픈이노베이션 관련 이론적 기반 및 개념입니다. 이번 연재에서 제일 무겁고 학술적인 파트라 꺼내기 조심스럽습니다만... 기초 체력 없이 마라톤을 할 수는 없습니다. 딱딱한 내용을 다 읽어 볼 필요는 없지만, 제가 칼라마킹한 "맥락"을 이해한다면 나중에 실제 현장 실무에 있어 닿지 못했던 인사이트를 얻으실 수도 있습니다.



1. Chesbrough 이후 개방형 혁신 이론의 전개

앞서 1편에서 다룬 바와 같이, 오픈이노베이션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체스브로(Chesbrough) 교수가 2003년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이 아이디어를 받아 확장하고 다듬어 왔습니다. 체스브로가 “외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내부 아이디어를 외부와 공유”하는 혁신 모델을 제안하면서, 기존 폐쇄형 혁신 패러다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인데요. 이후 20년 간 학계에서는 “얼마나 개방해야 혁신에 좋은가?”, “개방형 혁신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가?”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었습니다. 이번 절에서는 체스브로 이후 부상한 주요 학자들과 그들이 제시한 개방형 혁신 모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조엘 웨스트(Joel West), 빔 반하버베이크(Wim Vanhaverbeke), 켈드 라우르센(Keld Laursen), 마셀 보거스(Marcel Bogers) 등의 연구에 주목하여, 개방형 혁신 개념이 어떻게 다층적으로 발전해왔는지 정리하겠습니다.


1.1 헨리 체스브로: “닫힌 연구소를 열어라” – 개방형 혁신의 출발

먼저 간략히 체스브로의 핵심 주장을 되짚어 보시죠. 그는 과거의 연구개발 모델이 기업 내부의 R&D 실험실에만 의존하여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폐쇄적 혁신(closed innovation)’이었다고 진단했습니다. 그 결과 유망한 아이디어도 회사 내부에서 활용하지 않으면 버려지고, 외부로 지식이 흘러나가지 않아 혁신의 기회손실이 크다고 보았죠. 체스브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업 경계의 벽을 허물어 외부 지식을 내부로 들이고(인바운드 혁신), 반대로 내부 기술 중 활용 못하는 것은 외부로 내보내 경제적 가치를 찾게 하는(아웃바운드 혁신) 양방향 흐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시각화한 “개방형 혁신 깔때기 모델”을 제시했는데, 기존의 빽빽한 깔때기에 틈을 만들어 아이디어가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전통적인 폐쇄형 깔때기는 회사 내부 아이디어만 다루지만, 개방형 깔때기에는 퍼져나가는 화살표와 외부에서 들어오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기술 라이선싱, 기술 스핀오프, 대학·스타트업과의 제휴 등 다양한 외부 협력 경로가 공식화되었지요.


개방형 혁신의 깔때기 모델: 왼쪽은 폐쇄형 혁신(아이디어가 내부에서만 생성·선별됨), 오른쪽은 개방형 혁신(외부에서 아이디어 유입, 내부 아이디어도 외부로 유출) 모델을 보여줍니다. 체스브로는 이처럼 경계가 반투과성인 조직만이 현대 환경에서 혁신을 선도한다고 보았죠.


체스브로의 개념은 기업 현장과 학계에서 반향을 일으켰지만, 초창기 오픈이노베이션 연구는 주로 현상 기술과 사례 소개에 머물렀고, 기존 경영이론과의 연계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Wim Vanhaverbeke, 2014). 이를 보완하고자 여러 학자들이 나서서 개방형 혁신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하고, 다른 개념들과 접목시키는 노력을 시작합니다. 이제 이러한 흐름을 이끈 주요 연구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2 조엘 웨스트: 개방성의 정도와 가치 획득의 균형

조엘 웨스트(Joel West) 교수는 개방형 혁신 연구 초기부터 중요한 목소리를 낸 학자입니다. 그는 특히 기업이 얼마나 개방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요. 예컨대 “How open is innovation?”이라는 물음을 통해, 개방성에도 스펙트럼이 있으며 기업마다 최적의 개방 수준이 다를 수 있음을 짚었습니다. 웨스트는 개방형 혁신이 “너무 닫혀 있어서도 안 되지만, 무작정 다 공개하는 것도 위험”이라는 개방성의 역설(paradox)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그와 갤러거(Gallagher)가 함께 연구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분야 사례를 보면, 기업들이 개방 전략으로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핵심기술은 지키고 일부만 공유하는 절충적 접근을 택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는 이렇게 개방과 통제 사이 균형을 찾는 것이 개방형 혁신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웨스트는 개방형 혁신을 논하면서 비즈니스 모델 개념과 연계하기도 했습니다. “외부와 지식을 나누면 우리 이익은 어떻게 확보하지?”라는 현실적 질문에 대해, 그는 비즈니스 모델의 설계가 답이라고 지적했죠. 즉, 외부 아이디어를 도입해 제품화하더라도 우리 회사가 가치 사슬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를 명확히 정의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개방형 혁신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는데도 비즈니스 모델이 부실하면 정작 이익은 남들이 가져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웨스트의 이러한 통찰은 기업들에게 개방형 혁신을 무작정 따라할 것이 아니라, 자사에 맞는 개방 전략과 수익 모델을 함께 고민하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한편 웨스트는 후에 마셀 보거스 등과 함께 개방형 혁신 연구의 이론적 기반 강화를 주창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체스브로와 보거스가 공저한 논문에서, 개방형 혁신 연구가 이제 사용자 혁신, 흡수역량, 비즈니스 모델 이론 등 기존 이론들과 더 활발히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웨스트는 개방형 혁신의 범위를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입니다.


1.3 빔 반하버베이크: 네트워크와 전략 관점의 통합

벨기에 출신의 빔 반하버베이크(Wim Vanhaverbeke) 교수는 체스브로, 웨스트와 함께 2006년 개방형 혁신 연구서(Open Innovation: Researching a New Paradigm)를 편집한 인물로, 개방형 혁신의 전도사 3인방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반하버베이크는 특히 네트워크 관점과 전략 이론을 개방형 혁신과 연결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우선 그는 기업간 네트워크를 중요한 렌즈로 보았습니다. 개방형 혁신은 본질적으로 여러 조직이 지식을 주고받는 협력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기업이 누구와 연결되고 어떤 네트워크 구조를 갖는지가 혁신 성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반하버베이크는 “하나의 이론만으로는 개방형 혁신을 다 설명 못한다”며, 거래비용 경제학(TCE), 자원기반관점(RBV), 관계관점(relational view) 같은 기업이론들을 통합해서 개방형 혁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개방형 혁신에서는 외부 파트너와 지식거래가 활발하니 거래비용 이론으로 협상 구조를 볼 수 있고, 자원기반관점으로는 외부 자원을 끌어오는 능력을 평가하며, 관계관점으로는 파트너십의 신뢰와 공동이익 창출을 따져보는 식입니다. 반하버베이크는 이렇게 멀티 렌즈 접근을 통해 개방형 혁신을 더 탄탄하게 이론화하려 했습니다.


또한 그는 전략경영 측면에서도 개방형 혁신을 재해석했습니다. 기업이 개방형 혁신을 도입하려면 기존 전략 틀도 바뀌어야 하는데요. 반하버베이크는 개방형 혁신이 기업 전략에 주는 함의를 정리하면서, 동맹 전략, 플랫폼 전략, 생태계 전략 등과 연관지었습니다. 예컨대 과거에는 내부 R&D로 경쟁우위를 지켰다면, 이제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외부 지식을 흡수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느냐가 전략의 핵심이 됩니다. 이는 단순한 R&D 전술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 생태계 전략으로 격상되는 것이지요. 그는 이런 이유로, 개방형 혁신을 논하려면 전략 연구의 용어들을 가져와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실제로 그의 글을 보면 개방형 혁신을 기업이론(Theory of the Firm) 차원에서 조망하며, 동적 역량이나 실물옵션 이론까지 원용하는 등 여러 학문간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반하버베이크는 개방형 혁신을 보다 거시적인 경영 맥락에 연결시키고, 네트워크와 전략 프레임을 통해 개념을 풍부하게 만든 학자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개방형 혁신이 더 이상 현상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종합 경영이론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4 켈드 라우르센: 개방성의 범위와 깊이 – 얼마나 열어야 하나?

덴마크의 켈드 라우르센(Keld Laursen) 교수는 개방형 혁신의 “얼마나(open how much)”에 대한 답을 데이터로 제시한 선구자입니다. 앞서 조엘 웨스트가 개방성의 정도에 문제의식을 던졌다면, 라우르센은 이를 정량적 지표로 측정하고 경영 성과와의 관계를 연구했죠. 그의 2006년작 (살터(Salter)와 공저) 논문은 매우 유명한데, 여기서 그는 기업들이 외부 지식원을 몇 가지나 활용하는지(개방성의 폭, breadth)와 각 지식원과 얼마나 깊이 교류하는지(개방성의 깊이, depth)를 측정했습니다. 쉽게 말해 “당신 회사는 아이디어 얻으려고 외부에 몇 군데나 물어봅니까? 그리고 각 외부 파트너와 얼마나 긴밀히 협력합니까?”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지요.


놀랍게도, 라우르센의 연구 결과는 개방성에도 “골디락스 영역(Goldilocks zone)”, 즉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적정 수준이 존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업이 외부 지식원을 너무 좁게(한두 군데) 쓰면 혁신에 도움이 안 되지만, 너무 넓게(너무 많은 곳) 의존해도 오히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영국 제조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외부 지식원 활용의 폭과 깊이가 혁신성과와 역 U자형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즉, 처음에는 외부와 교류 범위를 넓힐수록 성과가 좋아지다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너무 산만해지면 성과가 떨어지는 패턴이 나온 것이죠. 이는 개방형 혁신에도 “적정 개방도”가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라우르센은 이를 두고 “과유불급”의 교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업은 외부 협력 파트너 포트폴리오를 전략적으로 관리해서 다양성은 확보하되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최대의 혁신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견은 개방형 혁신이 무조건 열면 좋다는 단순한 믿음에 제동을 걸고, 관리와 선별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라우르센과 살터의 지표(검색 폭과 깊이 개념)를 활용해 개방형 혁신을 측정하고 분석했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연구는 이 “개방성의 역설(paradox of openness)”을 심화시켜, 지식의 누설 위험과 외부탐색 비용 때문에 지나친 개방이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지요. 라우르센 본인도 후속 연구에서 특정 상황(예: 산업 특성이나 기술환경)에 따라 최적 개방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규명하는 등 해당 주제를 확장했습니다.


한편 라우르센은 “Open for Innovation”이라는 논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개방형 혁신이 기업 성과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초창기에 실증적으로 보여준 공로도 있습니다. 이는 경영자들에게 개방 전략 도입을 설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고, 학계에도 정량적 근거를 제공하여 개방형 혁신 논의의 신뢰성을 높였습니다.


정리하면, 켈드 라우르센은 개방형 혁신의 정도 문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얼마나 개방할 것인가?”에 답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학자입니다. 그의 연구는 “개방도도 전략적으로 최적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5 마셀 보거스: 개방형 혁신 연구의 통합자

네덜란드 출신의 마셀 보거스(Marcel Bogers) 교수는 비교적 젊은 학자로, 개방형 혁신 연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통합하는 작업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는 2010년대에 들어 여러 문헌 리뷰와 개념 논문을 통해 개방형 혁신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는데요. 특히 체스브로와 함께 쓴 2014년 논문에서는 개방형 혁신을 명확히 정의하고 관련 연구 주제들을 망라하여, 이후 학계 표준 정의로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Marcel Bogers, 2023). 또한 Bogers 등 (2017)이 쓴 논문 “The open innovation research landscape”에서는 그동안의 개방형 혁신 연구를 개인, 조직, 생태계 등 여러 수준(level)에서 조망하고,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졌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개방형 혁신 연구가 초기에는 기업 내부/외부 수준에 집중했지만, 요즘은 개인(사용자), 산업 생태계, 사회적 혁신 등 다층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지요.


보거스의 또 다른 기여는 “연결”입니다. 그는 개방형 혁신 개념을 사용자 혁신(Von Hippel의 개념), 공공 혁신, 온라인 커뮤니티 등 인접 분야와 적극 연결했습니다. 예컨대 “개방형 혁신에는 창조적 소비자(creative consumers)도 포함된다”거나 “사용자 커뮤니티의 아이디어 공유도 개방형 혁신의 일부”라고 언급하며, 개방형 혁신의 범위를 기업 경계 밖의 행위자들까지 확장한 것이죠. 이는 개방형 혁신이 단순히 기업 대 기업의 지식흐름만이 아니라, 기업-개인(사용자), 기업-커뮤니티 간의 상호작용까지 포괄하는 더 넓은 혁신 패러다임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현대의 예를 들면, 레고(LEGO)가 열성 팬 커뮤니티 아이디어를 신제품으로 채택하거나, 소프트웨어 기업이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협력하는 것 등이 모두 개방형 혁신의 스펙트럼에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보거스는 이러한 경계 확장을 통해 개방형 혁신을 포괄적 혁신 메타프레임워크로 자리매김하려 한 셈입니다.


또한 보거스는 개방형 혁신 연구에 정교한 이론적 퍼즐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그는 West 등과 함께 “How Open Is Innovation?”이라는 연구에서, 단순히 개방 여부가 아니라 “얼마나, 어떻게” 개방할지에 초점을 맞추며 미래 연구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개방형 혁신을 무작정 추구하기보다, 개방 전략의 미시적 설계(예: 지적재산권 관리, 협업 플랫폼 구축)와 맥락적 요인(산업 환경, 기술 표준 등)에 따른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이처럼 보거스는 개방형 혁신 담론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지 않고 더 정확한 질문들을 던지도록 이끌었습니다.


마셀 보거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방형 혁신 연구의 “큐레이터(curator)”이자 “길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선 연구자들의 성과를 체계화하고, 새로운 연구 주제와 이론적 연결고리를 제시함으로써, 개방형 혁신 분야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개방형 혁신은 경영학에서 하나의 확고한 연구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다양한 세부 주제로 분화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1.6 그 외: 개방형 혁신 연구의 다채로운 스펙트럼

위에서 다룬 인물들 외에도 개방형 혁신 분야에는 여러 흥미로운 연구들이 존재합니다. 올리버 가스만(Oliver Gassmann)은 2006년 논문에서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을 활용하는 3가지 핵심 프로세스 – 인바운드(Outside-in), 아웃바운드(Inside-out), 양방향(Coupled) – 를 제시하여 널리 인용되었습니다. 이는 기업들이 외부 아이디어를 수혈하거나 내부 아이디어를 외부에 이전하거나, 둘을 조합하는 협력(co-creation) 형태로 혁신한다는 분류로, 오늘날 개방형 혁신의 하위 범주를 설명하는 표준 모델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Enkel, Gassmann & Chesbrough (2009)는 이 세 가지 모드를 명확히 정의하며 개방형 혁신 활동을 체계화했는데, “outside-in(외부지식 활용), inside-out(내부지식 외부화), coupled(내외부 공동혁신)”으로 불립니다. 기업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조합하여 활용할 수 있지요.


또 다른 분야로, 개방형 혁신과 지식재산권(IP) 관리의 관계도 중요한 연구주제입니다. 처음에는 개방형 혁신이 특허와 상충되는 듯 보였으나, 오히려 IP를 전략적으로 공유하고 개방하는 방식(예: 특허 풀, 라이선스 장터)이 혁신을 촉진한다는 분석들이 나왔습니다. 더불어 플랫폼 비즈니스의 부상과 함께, 개방형 혁신은 양면시장 플랫폼의 개방전략과도 맞물려 연구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앱스토어나 게임 콘솔 플랫폼이 외부 개발자들을 참여시켜 혁신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개방형 혁신 사례로 분석되지요.


요약하면, 체스브로 이후 개방형 혁신 연구는 이론적·실증적으로 풍부해지며 경영학의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개방해야 한다”는 당위와 개념 정립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얼마나, 누구와 함께 개방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문제들로 논의가 심화되었습니다. 또한 개방형 혁신은 기술경영, 조직이론, 전략, 창업, 경제정책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며 종합적 연구 주제로 자리잡았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개방형 혁신과 특히 밀접한 개념 중 하나인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외부 지식을 받아들이려면 기업 내부에 그것을 흡수할 능력이 있어야 하니까요.



2. 흡수역량 이론: 외부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 힘

개방형 혁신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숨은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흡수역량(Absorptive Capacity)입니다. 아무리 바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들여와도, 그것을 잘 소화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겠지요. 흡수역량은 기업이 외부 지식의 가치를 인지하고, 그것을 체화하여 활용하는 능력을 뜻하는데요. 한마디로 “지식 소화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1990년경 영미 경영학계에 등장하여 혁신 연구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았고, 개방형 혁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없어서는 안 될 이론적 축이 되었습니다.


본 절에서는 흡수역량 이론의 정의와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주요 학자들의 공헌을 짚어보겠습니다. 특히 흡수역량을 처음 제시한 코헨(Cohen) & 레빈탈(Levinthal)의 정의, 이후 자후라(Zahra) & 조지(George)의 재해석, 그 외 발전들을 다룰 것입니다. 그리고 흡수역량과 개방형 혁신 간의 밀접한 관계 – 개방형 혁신의 성패를 좌우하는 조건으로서의 흡수역량 – 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지식 흡수의 세계로 들어가 보시죠~


2.1 흡수역량의 탄생: Cohen & Levinthal (1990)의 정의

웩슬러 코헨(Wesley Cohen)과 대니얼 레빈탈(Daniel Levinthal) 교수

이 관점을 최초로 경영이론에 도입한 이들이 바로 웩슬러 코헨(Wesley Cohen)대니얼 레빈탈(Daniel Levinthal)입니다. 두 사람은 1990년 논문에서 흡수역량을 “조직이 새로운 외부 지식의 가치를 인지(recognize)하고, 그것을 동화(assimilate)하며, 상업적 목적에 활용(apply)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이 중 “새로운 외부 지식의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이는 아무리 대단한 기술이라도 우리 회사에 어떻게 유용한지 알아채지 못하면 그냥 지나쳐버린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결국 흡수역량이 높다는 것은 눈이 밝고, 머리가 유연하고, 손발이 빨라서 외부 아이디어를 기민하게 자기것으로 만든다는 의미겠지요.


코헨과 레빈탈은 또 한 가지 통찰을 남겼습니다. 흡수역량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이전에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전 지식 베이스(prior knowledge)가 탄탄한 조직일수록 새로운 지식을 잘 흡수합니다. 예를 들어, AI 분야 전문성이 전혀 없는 회사는 최신 AI 논문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AI 인력을 보유한 회사는 그 논문에서 금방 힌트를 얻어 응용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코헨과 레빈탈은 기업이 내부 R&D를 완전히 없애고 외부 아이디어만 의존하면 오히려 흡수역량이 떨어져 장기적으로 손해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내부 연구개발을 통해 기본기를 갖춰야 외부 지식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역설이죠. 그래서 “외부 지식을 활용하려면 어느 정도 내부 지식 축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이 논리는 오픈이노베이션 실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턱대고 외부 기술 도입만 하면 능사가 아니고, 사전에 내부 인재 양성이나 관련 역량을 구축해놔야 성과가 난다는 것이니까요.


요약하면, 코헨 & 레빈탈은 흡수역량 개념을 통해 “혁신은 외부에서 얻는 것 뿐만 아니라, 그걸 소화하는 능력싸움”임을 일깨워주었습니다. 그들의 정의는 이후 30여 년간 수많은 연구에 인용되며, 흡수역량을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2.2 흡수역량의 재구성: Zahra & George (2002) – 잠재력과 실현력

04.png 샤케르 자후라(S. Zahra)와 제라드 조지(G. George) 교수

2000년대에 들어와 흡수역량 개념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샤케르 자후라(S. Zahra)와 제라드 조지(G. George)가 2002년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논문에서 흡수역량을 “잠재적 흡수역량(Potential ACAP)과 실현된 흡수역량(Realized ACAP)”으로 나누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한 것이지요. 이들은 코헨 & 레빈탈의 원개념을 발전시켜, 흡수역량을 네 가지 능력으로 세분하였습니다:

획득(Acquisition): 외부 지식을 탐색하고 획득하는 능력

동화(Assimilation): 획득한 지식을 이해하고 흡수하는 능력

변형(Transformation): 새 지식과 기존 지식을 융합·변형하여 새로운 통찰을 얻는 능력

활용(Exploitation): 최종적으로 그 지식을 상업적 결과로 구현하는 능력

ACAP.PNG ACAP 모델(S. Zahra, G. George, 2002)

이 중 획득과 동화를 합쳐서 “잠재적 흡수역량(PACAP)”, 변형과 활용을 합쳐 “실현된 흡수역량(RACAP)”이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단계 능력(PACAP)과 실제 성과를 내는 실행단계 능력(RACAP)으로 흡수역량을 구분한 것입니다.


이 구분의 장점은, 어떤 조직은 외부 아이디어를 잘 찾아내고 흡수하지만 (PACAP 높음) 정작 그걸 제품화 못할 수 있고, 또 어떤 조직은 새로운 아이디어 적용에 능숙하지만 (RACAP 높음) 외부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못 구할 수 있다는 상황별 분석이 가능해졌다는 겁니다. 예컨대 연구소는 PACAP은 높으나 RACAP이 낮을 수 있고, 제조 현장은 반대일 수 있겠지요. Zahra & George는 이렇게 흡수역량의 내부구성을 파악하면, 기업이 어디를 강화해야 할지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통합 메커니즘(Social integration mechanisms)이나 지식 활용의 제도적 환경(Regimes of appropriability) 같은 요인들이 PACAP→RACAP 전환에 영향을 준다고 논의하여, 흡수역량을 동태적 프로세스로 파악했습니다.


Zahra와 George의 모델은 흡수역량 이론에 정교함을 부여한 획기적인 공헌으로 평가됩니다. 원래의 흡수역량 개념이 다소 모호하게 쓰이던 것을, “잠재적 vs 실현된”으로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이 프레임워크를 채택했습니다. 오늘날 논문들에서 “PACAP”과 “RACAP”이라는 약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바로 이들의 영향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연구에서 “개방형 혁신 활동이 PACAP과 RACAP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다면, 이는 외부 협력이 지식 획득/동화 능력과 변형/활용 능력을 각각 어떻게 증진시키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Zahra & George의 논의는 개방형 혁신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줍니다. 이들은 기업이 외부 아이디어를 얻는 것(PACAP)을 넘어서, 조직 내부에서 그 아이디어를 재창조하고 실용화하는 것(RACAP)까지 가야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짐을 강조했습니다. 즉, 개방형 혁신의 전반부(inbound)와 후반부(internal exploitation)를 모두 잘 수행해야 성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흡수역량은 동적역량의 한 형태”라고 규정하여,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려면 조직이 지속적으로 흡수역량을 개발·재구성해야 함을 시사했습니다. 이는 개방형 혁신이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조직 학습의 지속적 프로세스임을 뒷받침합니다.


정리하면, 흡수역량 이론은 “혁신은 단순히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내재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며, 개방형 혁신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내공(內功)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외부에서 배우고, 그 배움을 내재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내는 학습조직이야말로 개방형 혁신 시대의 승자가 되겠지요.


3. 조직학습, 네트워크, 혁신생태계 이론과 개방형 혁신: 시각의 차이

개방형 혁신은 여러 가지 경영학 이론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직학습이론, 네트워크 이론, 혁신생태계 이론은 개방형 혁신과 특히 밀접한데요. 재미있는 점은, 국내 연구자들과 해외 연구자들이 이러한 이론들을 개방형 혁신에 적용하는 방식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연구자들의 학문적 배경이나 자국의 산업 환경, 문화적 맥락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기 때문일 텐데요.


이번 장에서는 조직학습, 네트워크, 생태계 관점에서 개방형 혁신을 해석한 주요 견해들을 살펴보고, 국내 vs 해외 연구에서 어떠한 시각차가 있는지 비교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학습을 중시하는 국내 연구”, “네트워크 구조를 중시하는 해외 연구” 이런 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물론 오늘날 연구는 글로벌하게 공유되기에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나뉘진 않지만, 그래도 강조하는 포인트 면에서 미묘한 차이가 감지됩니다. 각 이론별로 살펴보겠습니다.


3.1 조직학습 관점: 배움으로서의 혁신

조직학습이론(Organizational Learning Theory)은 조직이 지식을 창출, 공유, 축적함으로써 성과를 향상시키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이 이론의 대표적인 개념으로 탐색(Exploration) vs 활용(Exploitation)의 학습 이중성이 있습니다 (March, 1991). 조직은 새로운 지식을 탐색하는 학습과, 이미 아는 것을 활용하여 효율을 추구하는 학습 간에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데, 두 가지를 균형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쇠퇴한다는 것이죠. 개방형 혁신은 이 맥락에서, 조직학습의 외연을 조직 밖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부와 지식을 교환함으로써 탐색 범위를 넓히고 (외부 아이디어 수혈), 활용 기회를 증폭시키는(내부 아이디어 외부 적용) 효과를 내니까요. 사실 엄청 새로운 얘기는 아니죠.


해외 연구자들은 개방형 혁신을 조직학습 측면에서 분석할 때, 주로 개방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과 학습능력이 개방효과를 조절하는 부분을 실증하는 데 관심이 높았습니다. 예컨대 “외부협력이 조직의 지식저장소를 확장시켜 혁신성과를 높인다”, “조직 학습능력이 뛰어난 기업일수록 외부 아이디어 도입 효과가 크다”는 식이죠. 또한 흡수역량 역시 조직학습의 하위개념으로 보아, 학습능력이 좋은 조직이 개방형 혁신 성과를 잘 낸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이런 해외 연구들은 주로 정량 데이터를 통해, “학습 ○○지표 (ex: 직원교육, 지식관리도구 활용 등) × 개방형 혁신 활동”의 상호작용 효과를 검증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Flatten et al. (2015)은 조직의 학습문화 지수가 높을수록 인바운드 개방형 혁신의 성과가 증폭됨을 보였고, Knudsen & Srikanth (2014)은 내부 지식공유 수준과 외부 협업의 시너지 관계를 다루었습니다.


한편 국내 연구자들은 조직학습 관점에서 개방형 혁신을 말할 때 “학습 과정 그 자체”를 묘사하거나 성공 사례에서 배우는 교훈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즉, 실증분석보다는 사례 연구나 개념적 논의에서 “A기업은 외부 파트너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역량을 학습했다” 또는 “한국 기업들은 개방형 혁신을 도입하려면 실패를 학습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한 국내 연구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 과정을 학습전이(Learning Transfer) 관점에서 질적으로 분석하여, 대기업 직원들이 스타트업을 통해 기민한 실험정신을 배우고 스타트업은 대기업을 통해 체계적 문제해결 방식을 배우는 쌍방향 학습이 일어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른바 상호학습, Co-learning). 이러한 논의는 개방형 혁신을 단순 기술거래가 아닌 인적·문화적 학습 교류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입니다.


또 국내에서는 “실패로부터의 학습”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개방형 혁신 시도에서 실패한 경험들을 기업 조직이 어떻게 학습자산으로 전환했는가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IT 대기업의 개방형 프로젝트가 좌초됐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으로 이후 협업 프로세스를 개선한 사례를 분석한 연구 등이 있습니다. 이는 학습조직론(P. Senge)이나 이중루프 학습(Argyris) 이론을 개방형 혁신 맥락에서 풀어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유교문화 영향으로 실패에 대한 관용이 낮다고 하여, 개방형 혁신을 정착시키려면 실패를 학습으로 포용하는 문화가 중요하다는 제언도 국내 연구자들이 즐겨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요약하면, 조직학습 관점에서 개방형 혁신을 해석하는 데 해외 연구는 양적 검증과 이론 통합에 초점을 두고, 국내 연구는 맥락적 조언과 문화적 함의에 무게를 싣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선 “학습능력이 개방효과를 높인다(Saima Mirza, 2022)”는 식으로 증명하려 하고, 국내에선 “개방형 혁신하려면 우리 조직이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화두로 두는 셈입니다. 이는 한국 기업들이 개방형 혁신을 경험적 학습 곡선으로 여기고 체질 개선을 논의하는 데 연구 관심이 많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3.2 네트워크 이론 관점: 연결망으로서의 혁신

네트워크 이론(Network Theory)은 조직이나 개인 간의 관계망(structure)이 행위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개방형 혁신은 여러 조직들이 얽혀 지식을 주고받는 네트워크 현상이므로, 자연스레 네트워크 분석의 시각으로 많이 다루어집니다. 핵심 질문은 “어떤 네트워크 구조가 혁신에 유리한가”, “네트워크에서의 위치(중심성 등)가 지식흐름을 어떻게 좌우하는가” 등입니다.


해외 연구에서는 개방형 혁신을 사회네트워크이론(SNA)으로 분석한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산업 내 기업들 간 특허 공동출원 네트워크나 공동 연구 컨소시엄 네트워크를 그려서, 노드의 중심성(centrality)이나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s) 지표가 각 기업의 혁신성과(특허 수 등)와 상관있는지 본 연구들이 있습니다. 한 연구는 “개방형 혁신 네트워크에서 매개 중심성(betweenness centrality)이 높은 기업은 외부지식을 중개하며 혁신성과가 높다”고 보고했습니다(윤진효 외, 2016). 이는 네트워크 이론의 거장 버트(R. Burt)의 주장이 개방형 혁신 맥락에서도 유효함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즉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을 메워 연결자 역할을 하는 조직이 더 다양한 지식을 접하고 혁신적이 된다는 것이죠.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는 “개방형 혁신 네트워크의 꼬리(long tail) 현상”입니다(윤진효 외, 2016). 이 연구에 따르면, 기업-기업 협력 네트워크에서 소수의 기업들이 다수의 연결을 차지하고, 다수의 기업들은 적은 연결만 갖는 긴 꼬리 분포가 나타났습니다. 이는 일부 허브 기업이 개방형 혁신 네트워크를 이끌고, 많은 기업들은 주변부에 위치함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 제약 분야에서 글로벌 대기업들이 여러 스타트업과 협력하면서 허브 역할을 하고, 작은 기업들은 대기업과만 연결된 채 서로는 연결이 없는 식입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구조 분석은 “개방형 혁신이 실제론 완전 개방이 아니라 허브-스포크(hub-spoke)형 계층적 망일 수 있다”는 통찰을 줍니다.


국내 연구자들도 네트워크 분석 기법을 개방형 혁신에 적용한 사례가 늘고 있는데요. 특히 산업 클러스터 내 기업·대학·연구소 협력 네트워크를 시각화하여, 한국의 특정 지역에서 누가 개방형 혁신 허브 역할을 하는지 파악한 연구가 있습니다. 예컨대 대덕연구단지 혁신생태계에서 정부출연연이 중심 노드인지, 대기업 연구소가 중심인지 등을 분석하죠. 국내 연구에선 또한 정책적 시사를 위해 이 작업을 합니다. “우리 지역의 혁신네트워크에 대학이 소외돼 있으니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또는 “중소기업간 연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식입니다(최용록, 2010). 이는 해외보다 네트워크의 형평성과 정책개입점에 관심이 많은 국내 연구 풍토를 반영합니다.



3.3 혁신생태계 관점: 협력적 공생으로서의 혁신

혁신생태계(Innovation Ecosystem) 이론은 기업, 공급자, 고객, 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혁신을 공동 창출하는 환경을 강조합니다. 1990년대 제임스 무어(J. Moore)가 “기업은 생태계의 한 종”이라고 비유한 이래, 플랫폼 생태계, 지역 혁신클러스터, 산업 공동체 등의 개념으로 발전했지요. 개방형 혁신은 한 기업 안에서 완결되지 않고 생태계 내 지식 흐름으로 나타나므로, 이 관점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해외 연구자들은 혁신생태계 관점에서 개방형 혁신을 이야기할 때, 플랫폼 리더십이나 보완재 네트워크 같은 주제를 즐겨 다룹니다. 대표적으로 애플이나 구글 같은 플랫폼 기업이 개발자 생태계를 열어 혁신을 이끈 사례를 연구합니다. 이때 개방형 혁신은 생태계 전체의 가치창출 최적화라는 맥락으로 파악됩니다. 하나의 기업보다, 플랫폼+파트너 전체가 개방형 혁신의 단위가 되는 것이죠. Adner & Kapoor(2016)은 “한 기업의 혁신성공은 생태계 내 보완재 혁신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개방형 혁신은 기업이 자신 생태계 파트너들을 얼마나 잘 거느리며 혁신하느냐 문제라고 했습니다. 가령 자동차 전기차로의 혁신은 완성차 회사 혼자 못하고, 배터리 회사, 충전 인프라 회사, 소프트웨어 회사 모두와 함께해야 달성됩니다. 따라서 개방형 혁신 전략도 개별 기업 수준이 아니라 생태계 설계 전략이어야 한단 것이지요.


체스브로 교수 본인도 2014년 저서 “Open Innovation: the New Imperative…”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했었습니다.

“Open Innovation requires a systemic perspective – looking at entire ecosystem”


또한 해외에서는 정부와 공공기관도 혁신생태계의 일부로 봅니다. 앞서 2편에서 다룬 바와 같이, 이른바 Triple Helix (대학-기업-정부) 모델이 대표인데, 개방형 혁신이 국가 혁신체계 속에서 확산되려면 정부의 역할(표준 수립, R&D 매칭 등)이 중요하다는 논의입니다. 이는 특히 유럽연합(EU)에서 강조되었고, 오픈이노베이션 2.0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Quadruple Helix (시민사회까지 포함)도 언급됩니다. 요컨대, 혁신생태계 = 다중 이해관계자 협력망으로 보고, 개방형 혁신도 그 틀에서 확장된 개념이 된 것입니다.


국내 연구자들도 혁신생태계 개념을 애용하는데, 국가 및 지역 혁신생태계 맥락에서 개방형 혁신을 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산업생태계를 중소기업 참여 개방형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클러스터에서 산학협력을 통한 개방형 혁신으로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화두들입니다. 이때 국내 학자들은 개방형 혁신을 정책이나 거버넌스 문제와 연결합니다.


국내외 시각 차이를 정리하면, 해외는 혁신생태계를 시장 주도적 관점에서 – 즉 플랫폼 기업과 다수 파트너들의 자발적 협력 시스템 – 바라보며 개방형 혁신을 설명하는 반면, 국내는 정책/거버넌스 관점에서 – 즉 제도 설계와 문화 개선을 통해 개방형 혁신생태계를 구축 – 논의하는 경향입니다. 또한 해외는 생태계를 글로벌 밸류체인 차원에서 그리는데, 국내는 산업정책 맥락상 국내 생태계에 초점이 강합니다. 이는 경제 규모와 구조 차이에서 기인하지요. 한국은 특정 대기업 중심 구조가 강하니 이를 어떻게 개방형 생태계로 바꿀까 고민하고, 해외 (특히 미국, EU)는 다극화된 산업환경에서 플랫폼 전략을 많이 얘기하는 겁니다.


결국 강조점 차이는 있어도, Moore의 말대로 “한 종으로는 숲을 못 이룬다”는 것이고,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취지에 부합하게, “혼자서는 혁신을 만들지 못한다, 함께 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는 같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개방형 혁신은 혁신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팀플레이하라는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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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으로 들어오니 퍽 머리도 아프고, 그 말이 그 말 같기도 하지요. 이제 이론은 다음 편까지만 적당히 다루고, 실무로 차근차근 들어가볼께요. 다음 편은, 좋은 말로 가득해 보이는 오픈이노베이션에서 한계와 문제점을 조금 시니컬하게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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