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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편. 오픈이노베이션의 한계와 비판,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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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Dr. Jin입니다.


오늘은 앞서 살펴본 오픈이노베이션의 이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공공기관까지 너도나도 “개방형 혁신”을 외치며 사내외 아이디어를 모으고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현실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분명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과 빠른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한계와 부작용,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팩트에 대한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활성화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들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들어가며: 장밋빛 환상의 그늘

2003년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가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많은 이들은 이것이 기업 혁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폐쇄적인 R&D의 한계를 넘어 외부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활용하고, 내부의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개념은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025년 현재, 오픈이노베이션은 과연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었을까요?

새삼스럽지만, 통계들로만 접근하면, 상당히 비관적입니다.

혁신 프로젝트의 90% 이상이 실패하며, 빛을 보지 못하거나 기업에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합니다 (UMI Innovation, 2023).

매년 약 30,000개의 신제품이 출시되지만, 그 중 95%가 실패합니다 (MIT Professional Education, 2023).

VC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의 75%가 실패하고, 스타트업의 92%가 첫 3년 내에 문을 닫습니다(LinkedIn Analysis, 2021).

McKinsey 조사에 따르면 72%의 고위 경영진이 자사가 좋은 결정보다 나쁜 결정을 더 자주 내린다고 인정합니다

MTB 보고서, 오픈이노베이션 아웃룩 2025

Mind the Bridge의 2025년 보고서는 더욱 암울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출처). 2024년은 오픈이노베이션의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27%의 기업들이 오픈이노베이션 예산을 삭감했고(2023년의 6%에서 급증), 월마트는 2017년부터 운영하던 Store No.8을, SAP는 5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한 SAP.iO를 폐쇄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경기침체 때문일까요? 아니면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와 리스크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학술 연구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의 어두운 면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화려한 성공 사례 뒤에 감춰진 실패의 메커니즘, 그리고 오픈이노베이션에 참여할 사람들이 직면할 불편한 진실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걸 극복할 방안과 확신, 그리고 뚫고갈 의지를 확보하고야 그 때 비로소 OI를 해보겠다 얘기해도 될 것입니다.


1. 지적재산권의 역설: 열린 혁신, 닫힌 우려


1.1 지식유출의 구조적 딜레마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협력을 위해서는 정보를 공유해야 하지만, 정보를 공유하는 순간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2023년 발표된 보거스(M. Bogers)의 연구는 이를 "오픈이노베이션의 역설(paradox of open innovation)"이라 명명했습니다. 개방성(openness)통제(control)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이 균형점을 찾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Wagner 등(2025)의 연구에 따르면, "더 많은 지적재산 자산이 조직 경계를 넘어 흐를수록, 의도하지 않은 유출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합니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위험은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한 번 유출된 정보는 되돌릴 수 없고, 그 파급효과는 예측 불가능합니다.


1.2 지적재산권 보호 메커니즘의 한계

그렇다면 법적 보호 장치는 충분할까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Greco 등(2022)의 연구에 따르면 (출처), 특허, 저작권 등 공식적(formal) 보호 메커니즘만으로는 부족하며, 비밀유지계약(NDA)과 같은 준공식적(semi-formal) 메커니즘, 그리고 신뢰 기반의 비공식적(informal) 메커니즘이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조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방어적(defensive) IP 전략을 취하는 기업들은 공식적 보호수단에만 의존할 경우 외부와의 협력 깊이(outbound depth)가 감소하고, 비공식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협력의 폭(outbound breadth)이 제한됩니다.


더 심각한 것은 법적 대응의 실효성입니다. 한국의 특허권자 1심 승소율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평균 20%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37%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입니다 (서울이코노미뉴스, 2020). 한국의 특허 손해배상액 중앙값은 6천만 원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5억 7천만 원으로 10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MBC 보도, 2021).

기술을 탈취해서 얻는 이익이 처벌받을 위험보다 훨씬 크다면, 누가 법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은 명백합니다.



2. 조직 문화의 벽: NIH 신드롬과 내부 저항


2.1 "여기서 발명되지 않았다"는 오만'

님비 현상

"Not Invented Here (NIH) Syndrome"—아마도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장 고질적인 적일 것입니다. 1950년대에 처음 명명된 이 현상은 조직 구성원들이 외부에서 개발된 아이디어, 기술, 솔루션을 거부하는 편향을 말합니다 (Number Analytics). "우리가 더 잘 만들 수 있다", "외부 것은 우리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입니다.


심리학적 실험 결과: Alex Haslam 등의 심리학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Hype Innovation, 2023). 동일한 아이디어라도 그것이 내부에서 나왔다고 믿을 때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외부에서 왔다고 인식하면 혁신성이나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지적 편향이며, 합리적 판단을 방해합니다.

역사적 사례:

1980년대 IBM: 외부에서 개발된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아키텍처 채택을 거부하다가 경쟁사에 뒤처짐

1990년대 Microsoft :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개발한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NIH의 태도로 비판을 받음. 마이크로소프트는 자바 채택을 꺼렸고, 결국 자체 개발 언어인 C#을 개발.(Number Analytics, 2025)


2.2 조직 문화가 혁신을 막을 때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출처), NIH 신드롬은 혁신 성과에 직접적 영향보다는 외부 사회적 자본(external social capital)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합니다. 즉, 외부 파트너와의 신뢰와 관계가 무너지면서 협업 프로젝트의 성과가 저하되는 것입니다.

2014년 말레이시아 하이테크 섹터 연구 (339명의 중상급 관리자 대상) (출처):

위계적(hierarchy) 조직 문화: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오픈이노베이션 모두를 저해

통합적(integrative) 문화: 인바운드 오픈이노베이션을 촉진하지만, 아웃바운드에는 큰 영향 없음

조직 문화는 오픈이노베이션의 거대한 예측 변수(huge predictor)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공 여부는 기술이나 전략보다 조직 문화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2023년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스웨덴 250개 기업 연구 (ScienceDirect):

혁신 기후(innovation climate)는 NIH를 관리하는 유용한 도구

NIH가 인바운드 오픈이노베이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외부 사회적 자본을 통해 매개됨 (직접 영향이 아님)

제한된 정보 공유 → 대체될 것이라는 두려움 → 협력 저항


2.3 혁신 기후(Innovation Climate)의 중요성

Burcharth 등(2023)의 연구는 NIH 신드롬을 극복하기 위한 관리 도구로 "혁신 기후"를 제시합니다. 혁신 기후란 외부 아이디어에 대한 개방성, 실패에 대한 관용, 위험 감수를 장려하는 분위기를 말합니다.

오픈이노베이션 문화의 8가지 요소 (MDPI, 2020):

NIH 신드롬의 반대 태도 (규범)

Not Sold Here 신드롬의 반대 태도 (규범)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경영진 지원 (관행)

의구심 표현의 자유 (관행)

조직적 위험 감수 (관행)

기술적 기회주의 (관행)

개방적 성격 (규범과 관행의 수렴)

개방적 동기 (규범과 관행의 수렴)


하지만 이러한 문화를 구축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위계적이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2024년 크라우드소싱과 AI 시대의 NIH (MDPI, 2024):

생성형 AI의 부상으로 많은 조직이 내부 데이터와 AI 주도 혁신에 집중하면서 NIH 신드롬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

외부 인사이트의 우선순위가 낮아짐

AI 도입 저항도 NIH와 유사한 패턴: 전문성 대체에 대한 우려


NIH 극복을 위한 실천 방안 (Hype Innovation):

다양한 관점 장려: 기존 가정과 편향에 도전

협력 문화 조성: 내부와 외부 지식 공유

실패 포용: 실패를 학습 기회로

오픈 커뮤니케이션: 투명하고 열린 대화

외부 전문성 활용: 자문위원회, 파트너십


하지만 현실은 냉혹합니다. 2023년 Cricelli 등의 문헌 분석에 따르면 (출처), 조직 문화와 관련된 오픈이노베이션 실패 원인 중 NIH 신드롬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결론지어졌습니다.



3. 대기업-스타트업 간 불공정한 동상이몽, 상생과 약탈 사이


3.1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의 기술탈취

한국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입니다. 중소기업 기술보호 상담은 매년 6,000건 이상 발생하지만, 신고와 수사까지 진행된 건은 2024년 기준 단 7건에 불과합니다 (더스쿠프, 2025). 2021년 4건, 2022년 5건, 2023년 4건과 비교하면, 대기업의 기술탈취 수법이 더욱 교묘해졌다는 방증입니다.


2022년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출처), 한 스타트업 A사는 대기업 B사와의 오픈이노베이션에서 1년 가까이 명확한 답변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습니다. 실사를 담당한 실무진이 퇴사했다는 이유,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습니다. 그 사이 A사는 다른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마저 놓쳤습니다.


더 심각한 사례도 있습니다. 대기업 C사는 재활용 관련 스타트업 D사에게 오픈이노베이션을 빌미로 핵심 기술 전부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고, D사가 거부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부를 신설했습니다. 이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아니라 '기술정찰'에 가깝습니다.


구체적 피해 사례:

(주)삼영기계 : 현대중공업에 LNG선 핵심 부품 납품 중 기술 탈취 피해. 3년간 소송 끝에 공정위로부터 기술유용 인정받았으나, 현대중공업은 불복소송 준비 중. 200억 원의 매출이 사라지고 핵심 인력들은 소송 대응에 지쳐가는 중 (서울이코노미뉴스, 2020)

삼성전자 vs. (주)아이밀 : 반도체 장비 롤러 기술 탈취 의혹. 삼성측은 "카피업체에 제공한 적은 있다"면서도 기술탈취는 부인 (한국일보, 2020)

현대로템 vs. 썬에어로시스: 군 전술훈련 소프트웨어를 가로채 방위사업청에 납품한 혐의로 수년째 미해결


3.2 구조적 불균형과 침묵의 카르텔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다. 한국 중소제조업체의 40%는 매출의 80%를 대기업 납품에 의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도 막히게 됩니다.

2020년 한국일보 보도는 이를 "침묵의 카르텔"이라 표현합니다 (출처). 피해를 입어도 말하지 못하고, 말해도 소용없고, 소송을 걸어도 이기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법적 대응의 현실:

특허권자의 1심 승소율: 한국 20% vs. 미국 37%

특허 손해배상액 중앙값: 한국 6천만 원 vs. 미국 65억 7천만 원 (100배 차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2012년 도입): 적용 사례 전무

중소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①징벌적 손해배상 비율 확대 ②공정위·법원 사건처리 기간 단축 (MBC, 2021)


한 중소기업 변호사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종속적인 체제에 있다 보니까 기술 투자도 잘 안 해요. 왜냐면 딱 살아남을 수 있게 평균적으로 3% 정도 밖에 이익률을 안 주거든요, 대기업이."

3% 이익률로는 R&D에 재투자할 여력이 없습니다. 결국 저부가가치 하청 구조에 고착되고, 혁신 역량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입니다.


3.3 솜방망이 처벌과 경제적 합리성

더 큰 문제는 처벌의 실효성입니다. 2025년 더스쿠프 보고에 따르면, 중소기업 기술보호 상담은 매년 6,000건 이상 발생하지만, 신고와 수사까지 진행된 건은 2024년 기준 7건에 불과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대기업의 갑질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중소기업의 기술과 지식재산에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 뺏거나 침해하는 편이 더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기술을 정당하게 구매하는 비용이 100이고, 탈취했을 때 받을 과징금이 10이라면, 탈취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더구나 소송을 장기화하면 중소기업은 자금난으로 먼저 무릎을 꿇게 됩니다.


3.4 "허울 뿐인 오픈이노베이션"

국내 CVC L사의 한 임원은 이렇게 우려했습니다: "저희의 노력과는 달리 잘못하면 갑질 및 기술탈취 논란 등 좋지 못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어서 이러한 활동에는 고도의 주의와 원활한 내부 소통이 필요합니다."

성공 사례도 있지만, 실패와 부작용도 없지 않다는 방증입니다. 라스트오더와 세븐일레븐의 협업처럼 진정한 상생 사례도 있지만, 여러 곳에서 실패 사례가 들려온다면, (원래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소문은 더 빠르고 강하죠)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제안에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2년 한 창업지원기관 임원의 말은 더욱 냉소적입니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OI 담당자들을 불러, 꼭 필요한 협업이 아니면 그만두라고 할 게 뻔하다. 이렇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많은 활동 중 일부가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선량한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 담당들은 움츠러들고, 정부나 공공 부문에서는 더 강한 규제나 감시장치로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고, 스타트업들의 불신은 높아지겠죠. 이는 곧 곧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를 왜곡하고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 전략적 실패: 왜 똑똑한 기업들도 넘어지는가

4.1 Nokia, Kodak, Xerox: 거인들의 몰락

그럼에도 오픈이노베이션의 부재나 실패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역사적 사례들은 명확히 보여줍니다. Nokia는 2007년 휴대폰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했지만, 하드웨어에 대한 집착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스마트폰 혁명에서 뒤처졌습니다. 2008년 Symbian을 오픈소스화했지만, 이미 몇 년 늦은 대응이었습니다.

Kodak은 더욱 아이러니합니다. 1975년 엔지니어 Steve Sasson이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발명했지만, 경영진은 "귀엽긴 한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필름 사업을 잠식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1981년 연구에서 10년 내 디지털 전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받았음에도 대응하지 않았고, 2012년 파산했습니다.

Xerox는 PARC(Palo Alto Research Center)에서 개인용 컴퓨터의 핵심 기술들을 개발했지만, 복사기 사업에만 집중하느라 이를 제품화하지 못했습니다. Steve Jobs가 PARC를 방문한 후 그 기술로 Macintosh를 만들었을 때, Xerox는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4.2 실패의 공통 패턴

이들의 실패에는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첫째, 과거 성공에 대한 집착입니다. Nokia는 하드웨어 명가라는 자부심이, Kodak은 필름 시장 지배력이, Xerox는 복사기 독점이 오히려 변화를 가로막았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매몰 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가 작동한 것입니다.

둘째, 내부 혁신가들의 목소리를 무시했습니다. Kodak의 경우 내부에서 경고가 있었지만 무시되었습니다. 한 전 부사장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우리는 세계 최초의 소비자용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지만, 필름 시장에 미칠 영향이 두려워 출시나 판매 승인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SlideShare, 2022).

Xerox도 PARC 연구원들의 제안을 CEO가 거부했습니다. 위계적 조직 구조에서 아래로부터의 혁신은 실행되기 어렵습니다.

셋째, 자기잠식(cannibalization)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기존 수익원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혁신을 억제했습니다. Kodak CEO George Fisher는 1999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Kodak은 디지털 사진을 적으로, 수십 년간 Kodak의 매출과 이익을 이끌어온 화학 기반 필름과 인화 사업을 죽일 사악한 거인으로 여겼습니다" (Killer Innovations, 2016).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자기잠식하지 않으면 경쟁자가 대신 해줍니다.


4.3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실패율과 원인

충격적 실패율: 일반 혁신 프로젝트: 70-95% 실패 (분야와 연도에 따라) (LinkedIn, 2021)

신제품 출시: 95% 실패(클레이튼 크리슨텐슨 교수, Harvard) (MIT PE, 2023)

실제 제품 실패율: 약 40% (80-90%는 도시전설) (Dana Autenrieth, 2022)

Fahrenheit 212 조사: 10개 중 1개만 성공(Organizing4Innovation, 2024)


실패의 주요 원인:

75%의 혁신 실패는 마케팅 실패

- 제안된 제품/서비스와 실제 시장 니즈 간의 불일치 (UMI Innovation, 2023)

72%의 고위 경영진이 자사가 나쁜 결정을 더 자주 내린다고 인정 (McKinsey)

상업적 타당성(commercial viability) 약함 → 혁신 실패와 양의 상관관계

기술적 실현가능성(technological feasibility) 약함 → 혁신 실패와 양의 상관관계 (ScienceDirect, 2023)


오픈이노베이션 특수성:

제조업 연구의 70%가 성과에 집중, 실패와 비용은 상대적으로 소홀 (Emerald, 2022)

오픈이노베이션 조직은 높은 실패율을 보임 (ScienceDirect, 2022)

전략(strategy), 프로세스(process), 커뮤니티(community) 3개 레벨에서 제한 요인 존재


4.4 2022년 이탈리아 중소기업 연구의 통찰

2022년 이탈리아 스타트업 대상 연구는 오픈이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실패 사례를 분석했습니다 (Emerald, 2022). 흥미로운 점은 많은 응답자들이 실패 사례를 식별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는 것입니다.

실패 인정의 패턴:

실패를 인정하지 않거나

일시적 중단(temporary suspension)으로 포장하거나

제3자(예: 공공기관의 펀딩 거부)가 판단할 때만 실패로 받아들임

"그들이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 한 실패가 아니다(it is not a failure unless they tell you so)"


이는 "몰입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라는 심리적 현상과 관련됩니다. 이미 투입한 자원 때문에 부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이는 경향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를 조기에 인지하고 방향을 바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파트너 선택의 중요성: 프로젝트 중간에 파트너가 이탈하거나 역량 부족을 드러낼 경우, 응답자들은 초기 실사(due diligence)의 부족을 탓했습니다. 신뢰는 오픈이노베이션의 기반이며, 이전 협업 경험이 있는 파트너와 일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기술 집약도에 따른 차이:

하이테크 기업: 프로젝트 관리 문제로 공공 펀딩을 놓치는 경우가 많음

로우테크 기업: 파트너 관계와 신뢰 문제가 더 큼

이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이 일률적일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업종, 기술 수준, 조직 규모에 따라 맞춤형 접근이 필요한데, 많은 기업들이 이를 간과합니다.



5. 경제적 비용: ROI의 불편한 진실


5.1 측정의 어려움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성과 측정의 어려움입니다. 2025년 Mind the Bridge 보고서에 따르면 (출처), 기업들은 주로 재무적 성과만 측정하고 있으며, 조직 문화나 다양성 측면은 10%도 안 되는 기업만이 중요 측정 영역으로 꼽았습니다.

이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진정한 가치를 놓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역량 향상(upskilling), 부서 간 협업 문화 개선, 외부 네트워크 확대 등의 무형 자산은 단기 재무 지표로 포착되지 않습니다.

Viima의 2023년 분석에 따르면 (출처):

BCG 2017 조사에서 최고 혁신가들은 77%의 경우 오픈 협업을 지원한 반면, 약한 혁신가들은 23%에 불과

최고 혁신가들은 프로젝트 승인 시 미래 수익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22%에 불과했지만, 약한 혁신가들은 75%가 미래 수익 예측에 의존

80%의 경영진이 자사 비즈니스 모델이 조만간 파괴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 (McKinsey)


5.2 비용은 즉시, 수익은 나중에

무협(2025) 오픈이노베이션 관련 연구보고서

한국무역협회의 2025년 연구 결과는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합니다 (출처). 성공적인 오픈이노베이션 사례의 경우 시작부터 유의미한 성과 창출까지 평균 2~3년이 소요되며, 협업 성사까지 평균 7.2회의 시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픈이노베이션은 마라톤이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초기 투자 비용은 즉시 발생하지만, 수익은 몇 년 후에야 나타납니다. 분기 실적에 민감한 상장 기업의 경우, 이러한 장기 투자를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연구보고서 내 업계 설문 결과 역시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의 인식의 큰 갭을 보여줍니다.

2025년 오픈이노베이션 전망: 대기업 54.3%가 "금년과 유사" (보수적), 스타트업 52.5%가 "확대" 기대

PoC 중요 요소 1순위: 대기업은 "자사 전략수요와 적합성", 스타트업은 "제품/서비스 우월성" (목표 불일치)

스타트업 경쟁력 평가 (대기업 vs. 스타트업): 기술력: 6.76점 vs. 7.92점 비즈니스 혁신성: 6.13점 vs. 7.94점 글로벌 진출 준비도: 4.93점 vs. 6.58점 (가장 큰 격차)

오픈이노베이션 만족도 (5점 만점): 스타트업 4.51점, 대기업 총평 3.58점, 성과 3.25점


5.3 S-curve 관계와 최적점의 미묘함

2023년 Schäper 등의 연구는 충격적인 발견을 했습니다 (The limits of open innovation, ScienceDirect). 오픈이노베이션과 재무 성과 간에 S자형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오픈이노베이션을 너무 적게 하면 효과가 없고, 적정 수준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과도하게 하면 오히려 비용이 편익을 초과합니다.

문제는 이 최적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업마다, 산업마다, 시기마다 다릅니다. 더구나 최적점을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이미 많은 자원을 낭비한 후입니다.


5.4 CVC의 냉혹한 현실

Corporate Venture Capital(CVC)은 오픈이노베이션의 주요 수단 중 하나입니다. 그 성과는 어떨까요?

CVC 시장의 급성장:

2011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약 5배 증가(TechCrunch, 2020)

2018년 활성 CVC 유닛: 773개 (전년 대비 35% 증가)

CVC 투자액: 지난 10년간 10배 이상 증가(Bain & Company, 2022)

전체 VC 투자에서 CVC 비중: 2010년 11% → 2020년 거의 25% (Bundl, 2025)

2023년 신규 CVC 유닛: 65개 (2022년 122개에서 47% 감소)


하지만 성과는?

64%의 CVC가 14% 이상 IRR 목표를 세우지만, 상당수가 목표 미달할 것으로 예상 (TechCrunch, 2020)

18%의 CVC는 재무 목표가 없음 (전략적 목표만 추구)

CVC의 평균 수명: 4년 미만(Bundl)

초기 단계 투자에서 20%만 2차 펀딩으로 성공 (Wikipedia: CVC)

2022년 메타분석(105,950개 관찰): CVC가 전략적 성과와는 긍정적 관계이지만 재무적 성과와는 유의미한 관계 없음(Journal of Technology Transfer, 2022)


2024년 역풍:

2023년 CVC 딜 가치: 2022년 대비 27% 감소

2022년 벤처 불황 이후 오픈이노베이션 관련 투자 절반 수준으로 감소


5.5 좌초된 프로그램들의 비용

2024년 여러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폐쇄된 것은 이러한 경제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월마트 Store No.8 (2024년 1월 폐쇄): 2017년 출범, 7년 만에 "지속가능한 모델 실패"

SAP.iO (2024년 3월 폐쇄): 50여 명 직원 해산, 전 세계 여러 거점에서 액셀러레이션/벤처빌딩 진행했으나 투자효율 미달


이들 프로그램의 폐쇄는 직접적 비용뿐 아니라 기회비용도 발생시킵니다. 해당 인력과 자원을 다른 곳에 투입했다면 얻었을 가치, 참여했던 스타트업들의 신뢰 손실, 조직 내부의 사기 저하 등입니다.

MIT Sloan Management Review는 이를 "stuck in the middle"(진퇴양난)신드롬이라 명명합니다 (출처). 전통적 VC와 기업 내부 투자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해 양쪽의 장점을 모두 잃는 현상입니다.



6. 중소 스타트업의 특수한 어려움: 작은 배는 더 크게 흔들린다


6.1 자원의 제약

중소기업(SME)은 오픈이노베이션의 주요 수혜자가 되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2024년 포르투갈 중소기업 297개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이노베이션 실패 원인이 다름을 발견했습니다.

대기업은 조직 구조와 문화 측면에서 더 많은 도전을 받는 반면, 스타트업은 자원과 관리 프로세스 측면의 문제가 더 큽니다. 구체적으로:

재무적 제약: R&D 예산 부족

인적 자본 부족: 전문 인력 확보 어려움

외부 네트워크 접근성 제한

지적재산권 관리 역량 부족


6.2 경영 스킬의 부재

흥미롭게도 스타트업에서는 "경영 스킬과 행동(management skill and actions)" 차원이 두 번째로 중요한 실패 원인으로 나타났습니다. 대기업에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담 조직과 전문가가 있지만, 스타트업은 CEO나 소수의 관리자가 모든 것을 처리해야 합니다.

파트너 선택, 계약 협상, IP 관리, 프로젝트 관리 등 오픈이노베이션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외부 전문가를 고용하자니 비용 부담이 크고, 내부에서 학습하자니 시간이 없습니다.


6.3 대기업 의존의 함정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매출의 대부분을 대기업 납품에 의존합니다. 이와 같은 구조가 스타트업에게도 이어진다면 오픈이노베이션에 있어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거래가 끊기고, 제공하면 탈취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종속적 관계가 혁신 동기 자체를 약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앞서 증언을 재인용하면: "우리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종속적인 체제에 있다 보니까 기술 투자도 잘 안 해요. 왜냐면 딱 살아남을 수 있게 평균적으로 3% 정도 밖에 이익률을 안 주거든요, 대기업이."

다양한 배경과 이유가 있지만, 대다수의 대기업 내부 , 특히 사업부나 계열사의 인식과 위임받은 권한이 스타트업이 혁신성을 유지할 만큼의 비용 구조나 투자를 결정할 환경이 되지 않습니다. 예컨대 3% 이익률로는 R&D에 재투자할 여력이나 혁신을 창출할 동인에 부족합니다. 결국 저부가가치 하청 구조에 고착되고, 혁신 역량은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돠죠. 오픈 이노베이션이 성공하고자 하면 이 구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큰 그림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키맨, 즉 C레벨 또는 오너(Owner)의 팔길이 안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6.4 정보 비대칭의 피해자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에서 정보는 권력입니다. 대기업은 자신들이 전통적인 산업 내 시장 정보, 기술 및 규제 동향 등에 접근하기 쉽습니다. 스타트업은 자기 도메인의 지식과 병화 동향에는 빠르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결합하여 스케일업 할 전통 산업 영역에서는 정보 비대칭에 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 역시 실무 레벨에서 스타트업의 도메인, 예컨대 인공지능이나 로보틱스 등에 대한 기술 정보나 레퍼런스, 활용 예 등에 정보가 부족하면 개방형 협력의 검토에 있어 소극적이고 보수적으로 임하게 돠고 소위 "하면 안 될 이유", "해도 안 될 전망"을 수 없이 꺼내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은 협상력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대-스간에 불공정한 조건을 강요받거나 스-대에 있어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협상 구조에 빠지게 됩니다.

클러스터 조직이나 중개 기관이 이러한 격차를 줄여줄 수 있기에, 한국 역시 혁신 중개 기관의 역량과 신뢰도, 전문성을 끌어올려 이와 같은 정보 비대칭을 줄여가는 사례가 필요합니다.



7. 측정과 평가의 한계: 보이지 않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


7.1 KPI의 편향

Mind the Bridge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현재 기업들이 사용하는 오픈이노베이션 KPI는 심각하게 편향되어 있습니다. 재무적 ROI는 모두가 측정하지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가치들은 수치화되지 못한 채 놓치고 있습니다:

전략적 정렬(Strategic Alignment): 오픈이노베이션이 기업 전략과 얼마나 부합하는가?

기술적 역량 향상(Technological Capability): 조직의 기술적 수준이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문화적 변화(Cultural Transformation): 조직이 얼마나 개방적이고 협력적으로 변했는가?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s): 외부 파트너 생태계가 얼마나 강화되었는가?

MTB에서 2025 오픈이노베이션 아웃룩 보고서를 통해 제시한 오픈이노베이션 KPI들의 예


7.2 단기 지표의 오류

분기별 실적을 중시하는 기업 환경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의 장기적 가치는 평가절하됩니다. 오늘 투자해서 3년 후 결실을 맺는 프로젝트보다, 당장 다음 분기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프로젝트가 선호됩니다.

이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관리된다"는 원칙의 부작용입니다. 측정하기 쉬운 단기 지표에만 집중하다 보면, 측정하기 어려운 장기 가치를 놓치게 됩니다.


7.3 실패에서 학습하지 못하는 구조

2022년 이탈리아 연구가 발견한 것처럼, 많은 조직이 오픈이노베이션 실패를 인정하고 분석하는 데 서툽니다. 실패 사례를 공유하면 책임 추궁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실패를 일시적 중단으로 포장합니다.

하지만 실패에서 학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Silicon Valley의 "fail fast, learn faster" 문화와는 대조적입니다. 한국의 경우 실패는 커리어의 오점이 되기 때문에, 실패 사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7.4 성공의 귀인 오류

성공 사례를 분석할 때도 오류가 발생합니다. 성공했을 때는 오픈이노베이션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요인(시장 타이밍, 우연, 기존 역량 등)이 더 중요했을 수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근본귀인오류)라고 합니다. (일종의 내로남불?) 성공은 우리의 전략 덕분이고, 실패는 외부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이러한 편향은 잘못된 학습과 반복된 실패로 이어집니다.



8. 복잡성의 증가: 많은 주방장은 요리를 망친다


8.1 조정 비용의 폭발

오픈이노베이션은 근본적으로 복잡성을 증가시킵니다. 내부에서만 일하면 한 개의 팀을 관리하면 되지만, 외부 파트너가 추가되면 관리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2019년 Greco 등의 연구는 "inflated coordination costs"를 오픈이노베이션의 주요 리스크로 꼽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정 비용이 발생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비용: 언어, 문화, 시차 차이

의사결정 비용: 여러 조직의 승인 프로세스

통합 비용: 서로 다른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연결

갈등 해결 비용: 이해관계 충돌 시 중재


8.2 목표 불일치의 문제

앞서 소개한 2025년 한국무역협회 연구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공동 PoC(Proof of Concept)에서 중요한 요소 1순위로, 대기업은 "자사 전략수요와의 적합성(Fit)"을 꼽은 반면, 스타트업은 "제품/서비스 자체의 우월성"을 꼽았습니다.

이러한 목표 불일치는 협업을 어렵게 만듭니다. 대기업은 전략적 가치를 추구하고, 스타트업은 기술적 우수성을 강조합니다. 양측이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셈입니다. 혁신 중개자가 조율의 역할을 해야 하는 영역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8.3 "너무 많은 파트너" 문제

한 가지 역설은, 오픈이노베이션 파트너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최적 수준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파트너는:

관리 부담 증가

품질 관리 어려움

기밀 유지 위험 증가

의사결정 지연

하지만 너무 적은 파트너는 다양성과 혁신성이 부족합니다. 적정 수준을 찾는 것이 관건인데, 이는 기업마다 다릅니다.


8.4 표준화 vs. 맞춤화의 딜레마

효율성을 위해서는 표준화된 프로세스가 필요하지만, 혁신을 위해서는 맞춤화된 접근이 필요합니다. 표준화하면 유연성을 잃고, 맞춤화하면 확장성을 잃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관료적이고 경직된 프로세스로 전락합니다. 이는 본래 목적인 '혁신'과는 정반대입니다.



9. 산업별·지역별 차이: 만능 해결책은 없다


9.1 제조업 vs. 서비스업

오픈이노베이션의 효과는 산업별로 크게 다릅니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공 사례가 많습니다. 유한양행의 렉라자 사례처럼, 라이선스 인/아웃 모델이 잘 작동합니다. 신약 개발 비용과 기간이 워낙 크기 때문에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반면 제조업, 특히 한국의 경우 하청 구조가 고착화되어 진정한 의미의 오픈이노베이션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 문제가 만연합니다.

서비스업과 플랫폼 업종은 또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디지털 기술의 특성상 복제와 모방이 쉬워, IP 보호가 더욱 어렵습니다. 소프트웨어 코드는 물리적 제품보다 훨씬 쉽게 유출되고 역공학될 수 있습니다.


9.2 선진국 vs. 신흥국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공은 제도적 환경에 크게 좌우됩니다. 베트남을 대상으로 한 2023년 연구는 흥미로운 발견을 했습니다. 공식적인 IP 보호가 약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IP 보호의 필요성이 오픈이노베이션의 동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지식 번들의 복잡성(complexity)과 인과적 모호성(causal ambiguity)을 높이면, 경쟁자가 모방하기 어려워진다는 논리입니다. 즉, '비공식적' IP 보호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제도적 보호가 약한 환경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은 더 큰 위험을 수반하며, 신뢰 구축이 더욱 어렵습니다.


9.3 문화적 맥락의 중요성

일본의 오픈이노베이션은 한국이나 미국과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2020년대 들어 제조업 디지털 전환과 탈탄소 대응을 위해 CVC 설립 붐이 일었지만, 여전히 계열사 중심의 폐쇄적 생태계가 강합니다.

한국은 재벌 중심 경제 구조에서 대·중소기업 간 수직적 관계가 강하고,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높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은 서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10. 미래 전망: 오픈이노베이션은 어디로 가는가


10.1 모델의 진화와 도태

Mind the Bridge의 2025 보고서는 오픈이노베이션 모델에의 선호도 변화 추세를 보여줍니다. 다수 대기업들의 인식 속에 효과적인 모델은 유지·강화되고, 비효율적인 모델은 축소되고 있습니다. 즉 불황이 길어지고, 장기간 일정 확률로 성과가 나오는 오픈이노베이션에 지친 경영진과 이해관계자 대상으로 보다 효과적/효율적으로 증명해야하는 도전을 오픈이노베이션 조직 모두가 받고 있다는 뜻이죠.


강화되는 모델:

벤처 클라이언트(Venture Client)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

축소되는 모델: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

일부 인큐베이터

평가가 엇갈리는 모델:

벤처 빌더(Venture Builder)


이는 기업들이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도 있고 OI의 가성비를 따지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마 생성형 AI와 같이 새로운 기대와 거품이 몰려드는 모멘텀이 아니면 한동안 이와 같은 겨울은 이어질 듯합니다. 다만 ROI를 따지면서도 꾸준히 오픈이노베이션에 투자를 거듭하는 대기업은 소위 "Winner takes all.", 승자 독식을 하게 되겠죠.


10.2 AI와 디지털 전환의 영향

생성형 AI의 등장은 오픈이노베이션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합니다. 한편으로는 AI가 내부 창의성과 아이디어 생성을 지원하면서, 외부 인사이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NIH 신드롬을 더욱 강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AI를 활용한 파트너 매칭, 기술 스카우팅, 협업 관리 등이 더욱 효율화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결합하면 IP 관리와 거래의 투명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제 과거 글 중 하나에서 근 미래 소싱 트렌드로 소개한적 있네요.

하지만 2024년 연구들이 경고하듯이, AI 도입 자체도 조직의 준비도(readiness)에 달려 있습니다. 데이터 관리, 규제 준수, 문화적 수용성 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0.3 규제와 정책의 역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23년 대·중소기업 간 표준계약서 보급, 기술보호 특별법 강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배율을 3배에서 10배로 확대하는 논의가 있지만, 실제 적용 사례가 극히 드물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법 집행의 실효성이 더 중요합니다.

유럽은 Horizon Europe 프로그램을 통해 오픈이노베이션을 촉진하고 있으며, 미국은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같은 프로그램으로 SME의 혁신을 지원합니다. 각국의 제도적 맥락에 맞는 정책 설계가 필요합니다.


10.4 생태계 접근의 필요성

미래의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한 일대일 협력을 넘어 생태계(ecosystem) 접근이 필요합니다. 대학, 연구소, 스타트업, 대기업, 정부, 투자자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하지만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은 더욱 복잡하고 장기적인 과제입니다. 각 주체의 인센티브가 정렬되어야 하고, 신뢰가 축적되어야 하며, 플랫폼이 작동해야 합니다. 이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11. 결론: 오픈이노베이션을 다시 생각하다


11.1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은, 오픈이노베이션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헨리 체스브로가 제시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습니다.

지적재산권 유출, NIH 신드롬, 대기업의 기술탈취, 높은 조정 비용, 측정의 어려움, 문화적 장벽 등 수많은 한계와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실행을 잘하면 된다'는 식의 조언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입니다.


11.2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오픈이노베이션을 포기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Nokia, Kodak, Xerox의 사례가 보여주듯, 폐쇄적 혁신만으로는 급변하는 환경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입니다:

첫째, 자기 진단이 필요합니다. 우리 조직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조직 문화, 자원, 역량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면 실패 확률이 높습니다.

둘째, 맞춤형 전략이 필요합니다. 산업, 규모, 기술 수준,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성공 사례를 무조건 벤치마킹하기보다는, 우리 상황에 맞는 모델을 설계해야 합니다.

셋째, 점진적 실험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큰 베팅을 하기보다는, 작게 시작해서 학습하고 확장하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실패를 인정하고 빠르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합니다.

넷째, 신뢰 구축이 우선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불신이 높은 환경에서는, 장기적 관계와 상호 신뢰가 성공의 열쇠입니다. 단기적 이익을 위해 파트너를 착취하면, 결국 생태계 전체가 무너집니다.

다섯째, 제도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기업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공정한 거래 질서, 효과적인 IP 보호, 분쟁 해결 메커니즘 등 제도적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11.3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자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과도한 낙관도, 과도한 비관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도구입니다. 도구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용할 수도,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맥락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오픈이노베이션을 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신중한 답변 없이 유행을 좇아 뛰어들면, 또 다른 실패 사례가 될 뿐입니다.


11.4 마치며

2024년은 오픈이노베이션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많은 프로그램이 폐쇄되고, 투자가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성숙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초기의 과도한 열광이 가라앉고, 현실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진정으로 효과적인 모델들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화려한 마케팅이 아니라 실질적 성과를 내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자리잡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사고입니다. 성공 사례만 보지 말고 실패 사례도 보고, 장밋빛 전망만 듣지 말고 불편한 진실도 직시하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지 말고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여정입니다. 도착지가 아닙니다. 이 여정에서 우리가 마주할 장애물들을 미리 알고, 준비하고, 대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할 것입니다.

혁신은 언제나 불확실성과 위험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그 위험을 이해하고 관리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을 꿈꾸되 실패를 준비하고, 협력을 추구하되 경계를 늦추지 말고, 개방을 지향하되 보호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후 실무 가이드 파트에서는 본장에서 언급한 한계와 문제들을 극복하는 실무 방안들을 함께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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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여러분의 혁신 여정을 응원합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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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celli, L., Strazzullo, S., Greco, M., Grimaldi, M., & Mignacca, B. (2022). "The fine line between success and failure: an analysis of open innovation projects." Emerald Insight

Chatterjee, S., Chaudhuri, R., Mariani, M., & Fosso Wamba, S. (2023). "The consequences of innovation failure: An innovation capabilities and dynamic capabilities perspective." Science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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