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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부라이프 May 20. 2022

시어머니께 꼭 전화해야해?

“전화드렸어?” 남편이 무심히 말을 꺼냈다. 

하기 싫은 숙제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선생님께 혼나는 아이처럼 울상이 됐다. 착실히 숙제를 마친 남편도 얄밉다. 내게 안부전화는 큰 숙제다!   

  

우리 시어머님은 자식들과 손주들에 대한 사랑이 한없이 깊다. 물론 며느리도 포함이다. 항상 자녀들을 염려해주시고, 기도해주신다. 어린 아이처럼 웃기도 울기도 잘하신다. 뭐든지 아낌없이 주려고 하시고, 잘 먹이려고 하시는 천사같은 분이고 광고에 나오는 모든 문구를 그대로 철떡같이 믿는 순수한 분이다.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맙다는 말씀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시도때도 없는 며느리 자랑에 주변 할머니들의 질투를 받으실 정도다.     

내게도 우리 시어머니를 만난 것이 은혜고 축복이다. 신혼 때도 시댁에 가면 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어서 나가서 놀으라고 하셨다. 그동안 애 보느라 못 만난 친구도 만나고, 남편이랑 영화도 보고 오라며, 젊을 때 즐기라고 내 등을 떠밀어 내보냈다. 시댁에서 잠을 자도 며느리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상을 다 차리시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신다. 시집살이라는 것을 한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일까? 시어머님께 해드리는 것은 뭘해도 아깝지 않고, 진심으로 뭐라도 좋은 것들을 더 해드리고 싶다. 시댁에만 가면 먼저 어머님께서 뭐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폈다. 세제나 가정용품이 떨어진 것은 없는지, 전기가 잘 들어오는지, 뭐가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피고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다드린다. 


그런데 그런 시어머니께 내가 정말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안부전화다. 유독 전화드리는 것은 선뜻 내키질 않아 못하겠다.   


© quinoal, 출처 Unsplash

    

“여보세요! 어머니! 

“아이고! 애미냐?”

“어머니! 뭐하세요?”

“그래. 그냥 있다!”

“식사는 하셨어요?”

“그래, 대충 먹었지 뭐!”

“건강하시죠?”

“난 잘 있다. 너희도 잘 있지? 너희들 건강 잘 챙겨라.”

“네...”    


매번 전화할 때마다 똑같은 레파토리다. 얼굴 뵙고 얘기할 때는 어쩌구 저쩌구, 주저리 주저리 잘 떠드는데 전화만 하면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가 낯설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떠오르질 않아 말수가 줄어든다. 그 어색한 상황이 싫어서 전화드리는 일은 자꾸 뒷전이 된다. 물론 요즘은 줌이라는 것도 있고, 구글미팅도 있으나 87세의 시어머니에게는 먼 세상일이다.   

  

정녕 어머님이 싫거나 미워서가 아니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고 안부를 묻는 것은 왠지 꺼려진다. 평소 친구나 남편에게 먼저 전화하는 것도 즐기기 않는다. 친정엄마에게도 연락없는 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어쩌다 전화를 드리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결코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해외에 있으니 5시간의 시차도 한 몫을 한다. ‘아차! 전화드려야 해!!’라고 생각하면 벌써 저녁이고 한국시간으로 자정이 훌쩍 넘어갔으니 ‘이미 늦었어. 내일 전화드려야지’하고 미뤄진다. 전화할 때마다 유심을 바꿔 껴야 하는 것과 그 때마다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도 점점 전화통화를 멀어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니다! 모두 핑계일 뿐이다. 손가락으로 그저 터치만 하면 한국과 아부다비라는 거리가 무색하게 생생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린다. 지금이 그런 시대인데도 난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듣는 것이 그렇게 싫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모르는 정처 없음이 싫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을 수 없고, 다음 말을 내가 어떻게 받아 이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그 찰나의 순간도 괴롭다. 마음과는 다르게 진심을 부지런히 표현하지 못하는 게으름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그렇게 핑계와 망설임을 반복하다 결국 전화드리는 때를 놓치고는 카톡으로 잔뜩 최근 사진들을 보내드렸다. 하기 싫은 숙제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기한을 넘긴 꼴이다. 그렇다고 내가 결코 못된 며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홀로 계신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순도 100%를 자부한다. 나만큼 시월드에 대한 마음이 진심일 수 있나. 그저 안부전화하는데 소질이 없을 뿐이다!


나는 당당하게 아들들에게 말한다. 

“아들들아! 엄마정도 되는 며느리를 데려와라! 연락은 자주 안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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