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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Feb 27. 2020

아기 엄마의 가방

by 베를린 부부-Piggy


찰리를 낳기 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생활할 때의 나는 현금이라고는 천원도 없이 핸드폰 하나만 달랑달랑 들고 돌아다녔다. 핸드폰 투명 케이스 뒷 면에 카드 한 장을 끼워 넣은 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카드가 안 되는 곳도 없고 대중교통도 다 카드로 사용이 가능하고 심지어 그냥 핸드폰 안에 앱으로 설치해서 실물 카드도 필요 없기도 하다. 화장을 하거나 거울로 내 얼굴을 틈틈이 챙겨보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더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몸 하나 챙기고 돌아다니다가 찰리를 낳고 상황은 역전되었다.

장소가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바뀌면서 기본적으로 교통권 따로, 카드 따로, 현금 따로 그리고 집 열쇠까지 챙겨야 되는 것도 변화의 큰 부분이다. 요즘은 베를린도 애플 페이도 되고 교통권도 핸드폰 앱으로 구입이 가능해서 조금 간단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카드를 안 받는 곳도 많고 집은 열쇠가 필요하다.

거기에 아기를 더하니 세상에, 이삿짐을 이고 지고 다니는 느낌이다.


"혹시 모르니깐" 하면서 챙기는 물건이 어찌나 많은지.

로션부터 시작해서 여벌 옷에 장난감, 지퍼백까지 가방을 열면 끝도 없이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면 그 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배낭 하나도 채우지 않고 가던 여행이 2박 3일이 되면 여행용 큰 캐리어가 등장해야 되고 심지어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가방 문이 겨우 닫힌다.


얼마 전, 한국에서 온 친구들을 뮌헨에서 만났다. 하룻밤 같이 놀겠다고 가면서 어찌나 짐이 많은지 그 와중에 우리(어른들)가 필요할 것 같은 짐도 이것저것 챙겼다.

사실 나는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는데 그날 밤 친구가 원래 이렇게 준비물을 챙겨 다니는 스타일이었냐 아니면 엄마가 되고 그러는 거냐 하는 질문에 나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게. 핸드폰만 들고 다니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각해보니 아기를 낳고 집 밖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변수에 대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 돌아다닐 때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현지에서 사서 쓰면 되지 했던 마음이 안 그래도 유모차에서 오래 있지 않는데 데리고 여기저기 다녀야 되고 그러다 보면 원래 생각했던 계획은 망가지고 아기도 짜증을 낼 테고 그럼 나도 지칠 테고.... 블라블라블라...

무겁더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면서 들고 다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 저녁에 우리가 립을 먹을 때 쓸 일회용 비닐장갑과 혹시 뭔가 과일을 먹을까 싶어서 작은 도마와 칼을 챙겨갔다. 쓰고 보니 참.... 


아기 엄마와 만날 때 혹시 있을까 싶으면 꼭 물어보길. 아마 웬만한 건 다 있을 것이다. 

면봉이라던가, 가위라던가.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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