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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Feb 20. 2020

아기의 성장과정과 속도

by 베를린 부부-Piggy

"몇 개월이에요?" 

아기를 키우다 보니 자주 듣기도 하고 나도 자주 묻는 질문이다. 반려견이나 아기를 데리고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과도 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데(물론 나의 경우다) 주로 쓰이는 첫마디 이기도 하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몇 개월 단위로, 혹은 날짜 단위로 이야기하는 나이 계산법이 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같은 해에 태어나더라도 3월생의 아기와 10월생의 아기는 정말 다른 인간이다 보니(사실 동물에 가깝다) 이제는 나도 몇 월생 혹은 몇 개월이라고 이야기하는 계산법이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몇 개월 차에는 뒤집기를 하고 몇 개월 차에는 기어가고 걷고 뭐 그런 성장의 모습들이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분명 우리 아기보다 늦게 태어났음에도 벌써 뒤집는다던지 혼자 앉을 수 있다던지 하는 사소한 인간의 모습을 마치 언제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인터넷을 뒤져보고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나는 이런 성장 속도에 어느 순간 마음을 내려놓았던 것이 우리 집 찰리는 참으로 다른 아기보다 느리게 느리게 성장했다. 같은 개월 수 아기가, 심지어 더 늦게 태어난 아기가 하는 행동도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하는 느낌이었달까. 그저 하루하루 어서 빨리 혼자 앉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왠지 혼자 앉을 수 있으면 외출해서 여유롭게 카페에 같이 앉아있을 줄 알았던 그 날의 내가 부끄럽다) 막상 혼자 앉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잡고 서는 지금이 더 넘어지고 뭔가 사고를 치기 때문에 내 몸이 분주해졌다.


그래도 누워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말을 반만 인정하는 편인데 어찌 됐든 혼자 기어 다니고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주야장천 하루 종일 아기띠로 안고 다녀야 되는 일은 없어졌고 벽을 보고 있는 느낌에서 이제는 내 눈을 보고 분위기를 느끼고 서로 함께 반응할 수 있다는 건 큰 변화이면서 소소한 기쁨이 돼주고 있다. 

내 친구의 아기는 벌써부터 이랬는데 나는 이제야 하네 라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나도, 그리고 나의 아기도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최근 이런 성장 속도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지 하는 사건이 있었다.

찰리는 8개월쯤 아래 이빨 두 개가 올라오고 아무 변화가 없었는데 얼마 전 고열을 며칠 앓고 나더니 지금 동시에 5개의 이빨이 나오고 있다. 11개월을 향해 가고 있는데 2개월을 숨죽이고 있던 이빨이 동시에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래 2개-위 2개-송곳니 뭐 이런 순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로 가나 서울만 가면 된다'를 간접 경험하고 있달까.  무책임해 보여서 별로 안 좋아하는 말이기도 한데 요즘은 그렇게나 공감이 된다. 자매품으로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정도가 있겠다. 


아기가 왜 다른 아기처럼 뫄뫄 하지 않지라고 고민하지 말기를. 

어차피 천천히 그리고 빨리 아기는 부지런히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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