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원래 바르셀로나에 올 때부터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첫 번째로 스페인의 설계 사무실들은 근무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전반적인 문화 자체의 성격인데 이는 또 흥미롭게 교육제도와 연관이 있다. 스페인에서 건축공부를 하고 졸업장을 취득하면 그 졸업장이 학위의 증명이기도 하지만 국가자격증이기도 한 것이다. 굳이 한국말로 바꾼다면 ‘건축사 자격증‘이 되겠다. 한국이나 미국, 영국 등 대학교육의 이수를 시작으로 실무 및 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아니라 대학 졸업장이 이 모든 절차를 대신한다는 셈이다. 그러니 스페인에는 대학 졸업자만큼의 ‘건축사‘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 졸업 후 여느 사무실에서 일을 하더라도 소장과 직원의 법적인 책임유무가 동등한 것이다. 이 길고 긴 이유가 근무 계약서를 쓰지 않고 프리랜서처럼 일한다는 환경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방인인 내가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였다. 심지어는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등 비슷한 대학제도를 가진 국가들은 근무환경도 심지어 비슷했다. 그러니 비자가 필요 없는 내국인과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에 대한 대우는 시작부터 달랐다. 아니, 그런 배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나도 그 소용돌이를 통과 중이었다. 마드리드에서 학교에 등록해 연장한 비자는 이미 만료된 지 오래였고 그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로 지냈다. 그 와중에 사무실은 주말에 자주 출근할 정도로 일이 바빴다.
비자가 없다는 뜻은 외국인으로서 모든 서류를 합법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특히 비행기를 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여권에 찍힌 입국도장이 3년여 전 것이었으므로 누군가 이를 유심히 본다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관광객이 많고 유동인구가 많은 유럽 내 노선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타 볼만했지만 영국이나 비유럽권은 사실 비행기로 이동한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행히 사무실 소장인 알베르또도 이 문제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내가 어떻게 해 볼만한 방법을 가지고 ‘이렇게 하자’고 해자고 해야 움직일 듯했다. 그러던 와중, 3년여 만에 한국에 꼭 가야 할 일이 생겼다. 친누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어떻게든 한국에는 가야 했고 가는 길에 비자로 문제가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번에 가면 유럽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었다. 어떻게든 비자를 해결해 바르셀로나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석사과정이었다.
바르셀로나 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하기 위해 입국하는 것처럼 여권을 새로 발급받고 새로운 스페인 비자를 받아 입국해 석사를 등록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들어가는 것만 잘 들어가면 새로 유학 나오는 것처럼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하는 것도 사무실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 1시간 일찍 퇴근해 수업을 살짝 듣는다는 것이 계획이었다. 다행히 알베르또도 동의했고 회사에서도 책임이 있으니 등록금은 회사 돈으로 내자고 했다. 물론 땡큐였다.
차근차근 석사 과정을 지원하고 (물론 회사 동료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다.) 입학서류를 구비한 뒤 출국 같은 귀국 길에 올랐다.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환승을 했다. 출입국 심사대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에는 누나의 결혼식 선물을 들고 있었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비행기도 얼마나 빠듯하게 표를 샀던지 도착 다음 날이 바로 결혼식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여차 잘못하면 결혼식에 참석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유럽에 나와서 나 혼자 먹고살기 바빠 누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였는데 친누나의 결혼식마저 참석 못하면 호적에서 빼 달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나로 인해 다들 결혼식 잘 안 하는 7월 말의 한 여름에 결혼을 하게 됐는데 내가 못 갔다고 할 수 없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내 여권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결국 나에게 묻는다. 마지막 유럽에 입국한 게 3년 전인데 비자나 서류를 보여달라고. 결국 나는 여러 명에게 둘러싸인 채 뒤쪽의 사무실로 불려 갔다. 난 그때 생각했다. ‘아 나의 유럽 생활이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구나‘. 여러 명의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결론은 내가 무비자의 상태로 핀란드 땅을 밟은 것이 ‘죄목‘이었다. 그렇게 애가 타는 사이 시간은 흘러 갈아탈 비행기의 시간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조금씩 감정적으로 동요하기 시작하자 그중 한 명이 한참을 기다린 나에게 말을 한다.
‘넌 비행기에 탈 거라고 걱정 마. 대신 이 벌금 서류를 가져가서 1달 이내로 벌금을 입금해야 해.‘
‘그래? 그럼 1달 뒤에 내가 벌금 내고 다시 비행기 타고 여기서 환승해도 되는 거야?‘
‘응. 그건 상관없어. 벌금을 내는 게 중요해.‘
그렇게 약간 허무하듯이, 허술하듯이 ‘구류‘의 과정이 끝나고 아슬아슬하게 난 서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3년 만에 부모님을 뵀다.
누구든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감히 침착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어차피 환승 비행기가 됐건 어떤 비행기가 됐건 비행기를 놓치면 출입국사무소 직원들도 복잡해지긴 마찬가지다. 중대한 범죄사실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예정대로 비행기에 탑승하고 목적지에 잘 도착할 것이다. 물론,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될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