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 이야기 #3 - 베레나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베레나는 이탈리아 북부 출신이다. 독일어를 학교에서 같이 배우는, 알프스 산맥에 걸쳐있는 지역에서 온 사람이다. 그녀는 베니스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나보다 몇 개월 먼저 이 사무실, 바로찌베이가(BarozziVeiga)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니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일을 시작하고 겪은 일들은 오롯이 그녀도 목격하거나 같이 경험한 시간들이다. 그녀는 특유의 친밀함으로 사람들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도 유연하게 말하도록 끌어내는 신기한 능력이 있어서 두 소장들과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일을 했다. 심지어 어떤 직원에 대한 고민 같은 것도 어쨌거나 ‘직원‘이었던 베레나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장들이나 나를 비롯한 사무실 내의 사람들이 그녀를 신뢰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녀는 사무실 속속들이 아는 것이 많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었다면 그녀는 모든 말을 들었다.


그녀는 상대방의 말을 늘 경청한다.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드는 타입이다 / ©HK Shin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어느 집단에 속해 있어도 일정량의 또라이는 항상 존재한다는 '절대적인'법칙 말이다. 바르셀로나의 이 작은 사무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 자기애가 강한 또라이, 동료들의 우위에 서려는 또라이 등이 근무시간에 항상 상주했다. 베레나와 나는 이 또라이들과 함께 일을 하며 '또라이와의 시간'을 함께 이겨낸 전우이다. 결국 그 ‘또라이’분들은 제 발로 나갔고 고맙게도 베레나를 비롯한 모든 직원들은 더욱 돈독해졌다.


또한 그녀는 79년생으로 나의 친누나와 동갑이다. 나는 처음 이 사실을 안 뒤부터 왠지 그녀가 나의 누나같이 느껴졌고 그만큼 정말 편하게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가깝게 지냈다. 물론 그녀의 오랜 동반자 페르난도도 마찬가지로 가깝게 지냈다. 그녀와 내가 늦게 까지 야근을 밥 먹던 시절 페르난도는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다 지쳐 사무실로 야식을 들고 와 일하는 우리 곁에서 끝까지 말동무를 해주곤 했다. 이 커플은 그냥 둘 다 따뜻했다. 내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이 둘에게서 배운 ‘베풂’이다.


베레나는 사무실에서 독일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주로 스위스 지역의 업무를 봤다. 모든 업체나 현지 사무실과의 연락, 미팅 때 알베르또와 동행하는 것은 물론 스위스, 독일 지역의 공모전을 지원하는 일들까지 그녀가 하는 업무의 성격과 범위는 작은 아뜰리에 사무실의 성격과 아주 닮은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내가 지금 베를린에서 다니는 사무실의 지원 공고를 나에게 전해준 사람이다.


내가 베를린으로 이직을 고려할 당시, 과도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를 겪고 있을 즈음, 아무도 모르는 나의 이직 고민을 그녀만 알 때부터 그녀는 흔쾌히 베를린의 일자리를 알아보는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의 모집 공고를 나에게 전해줬다. 구직 프로필과 나는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한 번 믿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지원해보라고 했고 그렇게 시작된 지금 회사와의 인연은 6년째를 넘기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없었으면 나의 베를린 생활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녀는 아직도 바르셀로나의 그 사무실,바로찌베이가(BarozziVeiga)에서 일하고 있다. 이젠 더 이상 그녀에게는 횟수를 세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뭐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일하는 것이 좋은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고 복합적일 것이다. 사실 내가 근무하던 시절의 동료들은 그녀를 포함한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난 상태다. 지금도 가끔씩 통화하거나 만날 때면 바르셀로나에 너무 오래 살 있다고 푸념을 늘어놓지만 그녀와 페르난도는 마음과 다르게 ‘떠남’ 이 힘든 모양이다. 하긴 나야, 워낙 여기저기 떠돌아 살아서 그런지 도리어 새로운 환경에 대한 주저함이 별로 없지만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 나는 단지 그녀는 조금 더 나은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가 보다.



Tanzhaus Zurich / Barozzi Veiga / 2014 - 2019 ©Barozzi Veiga

버려진 수도공급기지(Wasserwerk)를 무용학교(Tanzhaus)의 확장 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이다. 2014년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이 프로젝트는 간단명료하지만 실용적인 기하학이 지배한다. (만약 위가 뾰족한 삼각형이었다면 실현 가능성에서 밀렸을 것이다.) 강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공간이 입구, 휴식공간 및 내부와 외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외부 난간은 최초 계획에 비해 둔탁하게 바뀌었지만 적당히 눈에 띄는 굵은 선이 뭐 눈에 띄게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keyword
이전 17화직장 동료 이야기 #2 - 파브리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