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해서 좋아
저의 표정은 늘 미소 아니면 함박웃음입니다.
인사할 때 목소리는 거의 솔톤을 유지합니다.
걸음걸이는 씩씩하다 못해 발이 바닥에 닿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가볍습니다.
허리는 꼿꼿하게 세워져 있고, 턱은 살짝 올려져 있습니다.
앞뒤로 가볍게 흔들리는 두 팔이 의지한 어깨는 활짝 펴져있습니다.
이 모습이 공식적인 저입니다.
"저 아파요!!!"
손나팔을 해가며 고백을 해 보지만 잘 믿지 않습니다.
가끔씩은 입원한 사진을 증빙자료처럼 공유하기도 하고, 검사결과지를 사진을 찍어두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참 많은 오해들이 있었습니다.
입원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관심을 받기 위한 행위로 보였다는 것으로 눈치챘을 때 절망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과한 책임감으로 버티어 온 섬김들은 응급실에 입원을 하고도,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한도 초과된 수치심을 동반한 분노로 저를 잠식해 버린 적도 있습니다.
아니, 지금도 그 분노는 잠시 얼려놓은 것처럼 그들과 마주할 때 바로 녹아버립니다. 다 토해냈다고 착각하며
"이제는 괜찮아요"
습관처럼 웃어 재치고 선
"아니 안 괜찮아요"
솔직해지려 손사래를 치며 강조해 봅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절어 살아온 건지, 진짜 착한 사람인 건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아 찾아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가식적이진 않았다는 거, 나의 이익을 위하여 착한 척하는 건 더욱 맘이 불편해 할 수 없었다는 것, 이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임 권사님.
사랑방이란 공동체에서 첫 목자 셨기에 지금까지도 저에게 권사님은 목자로서의 직분이 가장 많이 인식되어 있나 봅니다.
박힌 돌(기존에 계신 분들. 죄송합니다. 저에겐 이렇게 밖에 구분이 안되어서) 중에 그나마 저의 맘을 털어놓는 소수중 한분이신 걸 보면.
그러고 보니 지금도 목자이시네요.
권사님.
지난번 솔직하게 상담해 주셨던 몇 가지, 깊이 되새겨 보았습니다.
제가 그랬죠.
"사실 나는 무섭다"
공동체에서의 저의 이미지는 어떨 거냐는 질문에
"세다"
라는 저의 답에
"씩씩하다"
라고 하셨죠.
사실 저는.
벨소리와 함께 저의 폰에 찍히는 발신자의 이름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받고 싶지 않을 때가 꽤 있습니다.
저의 박힌 돌(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박힌 돌'과 '굴러온 돌'로 분류합니다)들에 대한 선입견은 '무례하다'인 거 같아요.
어렸을 적, 서울에서 살다 온대다 오빠만 있는 외동딸이어서 저에게 벌떼처럼 덤벼들던 동네 자매들의 공격에 공포를 느꼈었죠. 우르르 몰려다니며 친목을 과시하는 박힌 돌들의 행위는 어렸을 적 느꼈던 그 감정들을 그대로 발현시키는 거 같아요. 너무나 오랜 시간 그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그냥 센 척 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치 지쳤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맘인 거 같습니다.
어쩌면 이들도 채우지 못한 결핍 때문에 무리를 짓지 않으면 불안했겠지요.
씩씩하다는 것이 가면이라면 벗어던지겠습니다. 저의 평안을 위하여.
저의 눈높이로 바라보면 안 된다고 하신 말씀은 '내가 조금은 특별하다'는걸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는 '4차원'이라 느껴질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차원이 높다'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건 그들의 몫이니 제가 어찌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예민한(섬세함이 더 맞을까요?) 이 모습 이대로 하나님 창조하신 존재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권사님
요즘은 친정엄마가 많이 생각났어요.
목에 까지 서러움이 차서 너희가 조금만 건드려도 울음이 터진다던 엄마.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이해하다
"제발 그냥 감사하며 살면 안 될까? 엄마가 무어가 부족해서"
그랬던 제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네요.
10명도 가능하냐며 찾아 헤매던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찾아볼게요.
저를 바라보며 웃어주는 누군가를.
바로 생각해도 열명은 훌쩍 넘어버리는군요.
1%도 안 되는 무례한 그들의 찌푸린 눈살에, 저를 사랑하거나 모르거나 아무런 관심이 없는 99%의 사람들을 '일반화' 하는 오류는 하지 않겠습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늘 든든한 저의 지원군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24년 11월 12일 김 ㅇㅇ권사드림
사진. 김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