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나는 아직 교회를 옮기지도 않았고, 다음 해에 대한 아무런 결정이 없었기에 이분의 청소년 부서에 대한 열정은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침묵을 지키는 저에게
"놀라셨죠? 사실은 제가 선생님을 추천받았습니다."
어린이집에서 같이 근무를 하던 선생님의 남편이 수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수원에서 근무를 하던 이분과 만났답니다. 다음 해에 구미로 다시 내려오게 될 이분에게 저의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이분은 저에 대해 전해 들은 환상적인 이미지를 품으신 채 이후에도 몇 차례의 통화 끝에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다음 해 첫 주 이분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지금까지 청소년을 섬기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가족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올해를 마무리해야겠다는 결정을 비집고 자꾸만 이분이 생각납니다.
K 장로님!
얼굴도 모른 채, 한번 만나기도 전부터 저를 최고라는 색안경을 끼고 봐주신 분입니다.
18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제 옆에 계셨고, 매주마다 제 이름을 불러주셨어요. 'ㅇㅇ 언니'. 'ㅇㅇ누나', 'ㅇㅇ 원장님', 'ㅇㅇ 권사님', 'ㅇㅇ 작가님', 때론 'ㅇㅇ 박사님'이란 호칭까지 부르셨을 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야 하나 할 정도였지만, 돌아보니 장로님의 과한 응원의 메시지 덕에 지금의 저로 버티어 온 거 같습니다.
예민한 저의 기질을 너무나 잘 아시는 그분이 저의 곁에 파수군처럼 장로님을 세워 놓으셨나 봅니다. 유리그릇 같은 저를 감추기 위하여 겹겹이 사용한 가면들 속 저의 진짜 모습을 장로님이 제일 잘 알고 계셨던 거 같아요. 호탕한 저의 웃음뒤엔 늘 긴장된 두려움이 있었어요.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바사삭 금이 가 버리는 섬세한 내면 때문에 많이 아팠어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감추면서.
K장로님.
누군가의 지나치듯 던지는 무례함조차 공격처럼 느껴지는 것이 저랍니다. 감사편지를 쓰면서 저의 진짜 기질이 어떤지 알게 되었어요. 아니 '인정'하게 되었다는 게 더 맞을 거 같아요. 어쩌면 장로님도 저처럼 섬세한 분이라 저를 더 많이 배려한 거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에겐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지만 저에겐 늘 저를 지지하는 든든한 지원군 같은 분이셨습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장로님과 함께 시작한 청소년들과 떠난 '꿈을 찾는 여행'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저의 선교여행 첫 출발점이 되었죠.
K장로님.
장로님의 옆에서 저에게 동일한 지지를 보내주신 권사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려요.
저도 언제이든 두 분의 가족을 지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함께 주의 일을 섬길 시간들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만, 장로님의 응원의 메시지가 들려올 주일 아침을 기다려 봅니다.
장로님만의 에너지로 전해지는 유쾌한 아침 인사는 저만이 아닌 많은 분들에게 행복함으로 전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