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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Nov 05. 2024

쓰리 잡

감사편지. 마흔한 번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해요

"9.7 이면..."


남편이 무어라 물어봅니다.


"?"


갑자기 차를 세우고 길가 밭에 씌워진  비닐을 확인해 보자고 하지만, 도대체 봐도  모르겠습니다. 

무얼 보라는 건지도, 아직 잘 이해가 안 되는 중이니.


"지금 이 밭에 마늘을 심어놓은 건지, 양파인지  함 보라고"


 "?"


"아! 이거 마늘인가 보네"


"?"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한 시골길을 달려가면서 남편이 저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 농부의 딸이었다는 이유로.


"아 저건 배꽃이지"

"이건 자두나무"

사실 과수원집 딸이었기에 과일에 관한 건 척척 대답을 해 줄 수 있습니다.


남편의 쓰리잡.

복숭아꽃이 좋아 복숭아나무를 심기 위해 올봄 사둔 밭에 마늘과 양파를 심으러 가는 중입니다.


투잡을 위해 구입한 화물차 뒷칸엔 양파모종 세 다발이 실려있습니다.

양파모종을 구입하며 심는 법을 잘 배워왔다고 자신만만해했습니다만. 모종을 심을 구멍 뚫린 비닐을 구입하기 전부터 남편의 머릿속은 복잡합니다.


몇 군데를 들러 겨우 비닐을 구입했지만 남편의 계산이 잘 맞지 않나 봅니다.


"9.7이 뭔데요?"

"아~~~ 비닐폭과 뚫려있는 구멍수.

나는 9.9 사고 싶었는데"


남편은 90센티미터 폭에 모종 심을 구멍이 7개 뚫려있는 걸 구입했는데 본인은 구멍이 9개 뚫려있는 걸 구입하고 싶었다. 요런 뜻입니다.


"일 미터에 구멍이... 그럼 길이가...

비닐이 모자랄 수도 있겠지?


"?"

.

.

.


"간격이 넓으면 양파가 굵겠지. 모자라면 다시 사고"

"허허 자네답구먼"


수에 대한 계산이 +.-. ×.÷, 꼭 필요한 계산 외에 주관식 문제는 바로 혼란스러운 수포자에게 이런 질은 도통  의미가 없다 걸 알고 그냥 서로 마주 보며 깔깔깔 웃어젖힙니다.


날씨는 비로 바뀌고, 초보농부의 길잡이가 되어주시기로 한 이장님께서 깔끔하게 갈아놓은 밭을 보노라니 머리는 더 복잡합니다.

이장님께서 주신 마늘모종 포대는 자그마치 세 자루입니다.

그냥 보아도 우리 식구가 몇 년은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아무리 마늘이 유명한 의성이라지만 이건...


우의까지 챙겨주며, 어제저녁에 먹은 '양장피'는 그냥  사준게 아니라며 비속 양파심기 노동의 현장으로 내 몰았습니다.


남편의 계산과는 달리 심어도 심어도 깔아놓은 비닐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양파모종 세 다발은 도무지 몇 개나 되는지 남편과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다음날엔 마늘 심기 도전이 시작되고. 벌써부터 내년에 수확한 마늘과 양파는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늘어집니다.


그렇게 깔깔대며 양파 한 포기 한 포기, 마늘 한 알 한 알을 심어 가다 보니 그 많던 비닐들이 정말 모자랄 듯합니다.

이것저것 챙겨간 간식들이 바닥나고, 상추쌈으로 해결한 점심이 소화가 다 되어 갈 즈음  우리는 가을햇살에 주황빛 환한 단풍들을 품은 산자락을 마주하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양파심기


김권사님!

한바탕 요란스럽던 며칠이 지나고 마늘 한 알 한 알을 심듯이 저의 감정 하나하나를 비닐 구멍 하나하나에 꼭꼭 묻었습니다.


저의 글에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셨지요.


김권사님.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괜찮았어요.

저희 교회에서 처음으로 구독버턴을 눌러주셨고 저의 글쓰기를 격려해 주셨었지요.

그걸로 저는 충분했습니다.

지금까지 글쓰기를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이 권사님이심을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이 심방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같이 수다 떨 수 있어서 감사했고.

가끔 잘난척해 볼 수 있어서 감사했고.

가끔은 서로를 찾아다녀볼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권사님 덕에 저의 피부가 뽀예졌어요.


권사님 그거 아세요?

숨어있는 누군가를 찾아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라며 등 토닥이시는 거 지금 권사님께서 하고 계신 일이에요.

참 귀한 역할이라 생각해요.


혹.


저 때문에 조금이라도 맘 무거우셨다면 덜어내셨음 해요.

저는 지금까지 권사님의 섬김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권사님.

교회 안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제가 잘하지 않아요.


그래도 권사님에겐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감사해요!


2024년 11월  4일  김 ㅇㅇ 권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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