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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Mar 12. 2019

모두가 동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떠나간 몽이를 추모하며


엄마, 몽이 얼굴 좀 보여줘.


지난 며칠 동안 기분이 영 이상했어요. 한국에 있는 제 강아지 몽이랑 며칠 인사를 못했기에 오늘은 얼굴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많아, 그리고 유전적으로 몸이 강하지 않은 골든 레트리버라 지난 일 년간 계속 아파왔던 터라 이상한 기분이 이유 없이 든 게 아닐 거라 생각했습니다. 뉴욕에 살기 시작하고서부턴 내내 화상통화로나마 몽이의 얼굴을 보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요새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하지 못했었기에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고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카메라에 담겨있는 너의 마지막 모습_Korea. 2019. Film


“몽이가 며칠 전에 떠났어. 네가 요새 중요한 시기인 거 같아서 좀 덜 바빠지면 차차 얘기해주려고 했는데..”


비보를 들으면 제가 완전히 무너질 걸 부모님도 아셨던 건지. 그런 배려가 감사했기도 했지만 사실 일찍 들으나 나중에 들으나 힘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주일 전쯤 찜찜했던 기분을 느꼈을 때, 그때 바로 몽이랑 통화를 했어야 했는데. 그때 제가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그냥 그렇게 마지막 인사도 없이 보내진 않았을 텐데. 뒤늦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오늘 글을 쓸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눈물이 차마 멈추질 않았습니다. 양치질을 하면서 뚝. 책상 정리를 하며 뚝. 길을 걸으며 뚝. 실제로 몽이가 떠난 걸 본 것도 아닌데, 자꾸만 몽이가 누워있는 모습이 떠올라 일상생활을 하며 뜬금없이 자꾸만 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실은 오늘 이 글도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꼭 써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게 제가 몽이의 마지막을 기릴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몽이와 떨어져 있는 대가로 얻은 뉴욕에서의 다른 반려동물 사진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나 라고 뒤늦게 묻는다._New York. 2017. Film


어제 엄마와 화상통화를 끝낸 뒤 붕어눈으로 계속 울고 있는 저에게 옆에 있던 룸메이트가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습니다. “몽이가 죽었데.” 그간 계속 아팠던 몽이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룸메이트는, “아.. 그렇구나."라는 말 한마디를 건넨 뒤 주저주저하다 다시 제 할 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갔습니다. 원래 위로를 잘해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우는 친구를 보며 어찌 위로를 해 줘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도 멈추지 않는 눈물을 내내 흘리고 있는 저를 옆에 두고 친구가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깔깔 웃기 시작하더라고요. 여기서부터는 저도 조금 당황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르던 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막 들어 울고 있는 친구를 옆에 두고 어떻게 웃을 수 있는지, 솔직히 많이 서운했습니다. 


뉴욕의 가정집을 방문하여 반려동물 사진을 찍어준다. 그럼 내 반려동물의 사진은 누가 찍어주지?라는 뒤늦은, 쓸데없는 질문_New York. 2017. Digital


제 룸메이트에 대해 살짝 말씀드리자면, 이 친구는 살면서 한 번도 반려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딱히 반려동물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그냥 반려동물이란 존재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형제 없이 홀로자란 제게 반려동물과 한 번도 반려동물이란 존재를 가까이해 본 적 없는 친구에게 반려동물은 아주 다른 의미로 여겨질 수밖에 없나 봅니다. 제 동생이었던 몽이의 죽음은 마치 제겐 심장의 1/3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느낌인데, 친구에겐 그냥 동물이 하나 죽은 것 외의 별다른 느낌은 없을 테니까요. 부끄러운 이야기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니 저도 딱히 친구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비록 몽이가 떠난지는 며칠 되었지만, 소식을 이제야 들은 제게 몽이는 어제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어느 누구도 동생이 어제 죽었는데 오늘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와 웃도 떠들 순 없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계속 말을 걸어오는 친구에게 나지막이, “Please leave me alone.. 나 좀 혼자 있고 싶은데..”라는 말을 남기곤 홀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모두가 동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거겠구나. 나는 다른 친구의 강아지가 죽으면 저리 행동하진 않을 테니 상처를 줄 행동은 하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며, 그저 카페에 홀로 앉아 글을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렇다고 제 친구에게 성격상 문제가 있거나 한 건 아닙니다. 역지사지라고, 반려동물을 기르며 겪는 행복과 잃음의 슬픔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테니까요.)


반려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뉴욕의 꽃마차를 보며 말들이 불쌍하다 하지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이를 보며 타보자!라고 한다._New York. 2016. Digital


평소 잘도 웃고 재잘대던 제가 영혼 없이 로봇처럼 생활하는 모습은 반려동물이란 존재가 삶에 크게 자리잡지 않은 사람들에겐 결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실제로 반려동물 사진 촬영을 하는 일을 하면서도 주변에서 이를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반려동물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당연히 주변에 있기 마련인데요. 실제로 학교에서도 제가 반려동물 촬영을 하고 수업시간에 그에 대해 발표를 할 때면, 사진을 보고 있기가 힘들다며 제 발표시간에는 참여를 잘하지 않거나, 일부러 외면하고 앉아있는 친구들도 유학시절 내내 여태껏 2-3명 정도 만나보았습니다. 아니, 이렇게나 사랑스러운데… 처음엔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상엔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들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잘가, 몽아_Korea. 2016. Digital 


여러분 주변에도 아마 제 친구들처럼 반려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혹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지인이나 친구들이 서너 명쯤은 있을 텐데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고, 그 반대의 상황도 여럿 보았지만, 어차피 반려동물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본인의 자유의지에 달린 일이니 가타부타 논쟁을 벌여야 할 일은 아니겠지 싶습니다. 다만 무관심이라는 개개인의 자유의지가 반려동물을 향해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로 번져나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이걸 막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반려동물 보호를 외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동물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라는 변명이나 이유는 그것이 적용이 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걸 모두가 알아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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