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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nsee Oct 17. 2023

치매어머니와 동행 19

단골 미용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두려워 하던 말을 꺼내십니다.

"오늘 머리 하러 갔다 올 거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를 말릴 수는 없습니다.

잠시 화도 내고 큰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 고집을 꺾지 않으시니까요.

그러나 제가 걱정하는 것을 잘 아시기에 한마디 하십니다.

"앞집 친구하고 같이 갔다 올 거야."

어머니 집 바로 맞은 편 아파트에 어머니보다 3살 아래인 친구 분이 사시는데 그 분은 다리가 몹시 불편한 대신 치매 증상은 별로 없으십니다.

보호 센터에도 같이 나가시는 분이고요.


할 수 없이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거동이 불편하고 정신이 맑지 않은 두 어르신이 횡단보도를 두 개나 건너 미용실로 향하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예약은 11시에 해 두셨다고 하니까 성격 급하신 어머니는 10시 30분 쯤에는 집을 나설 것입니다.

10시부터 어머니 집에 설치한 카메라로 어머니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10시 조금 넘어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마 친구분 댁에 가서 두 분이 같이 단골 미용실로 가려고 좀 일찍 출발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때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좀처럼 가라앉을 줄을 모릅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여자 두 사람이 펌 손질을 마치려면 적어도 4시간 이상은 걸릴 거라고 합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점심 시간이 지나자 마자 어머니 댁으로 향합니다.


언제 오실 지 몰라 아파트 현관 앞에서 한참 기다렸는데 두 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어머니 단골 미용실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미용실이 대충 어디 쯤 인지는 알거든요.


횡단보도 앞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두 분이 길가 벤치에 앉아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신호등이 바뀌자 마자 뛰어서 길을 건넌 저는 두 분이 앉아 계신 벤치로 다가갔습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등장한 저를 보고 깜짝 놀라십니다.

저는 근처에 화사 일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나서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고 이야기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두 분이 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친구 분이 다리가 아프다고 하셔서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두 분을 모시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친구 분이 먼저 집에 들어 가시는 것을 보고 어머니와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머니는 머리 손실 결과에 만족하십니다.

역시 단골 미용실이 꼼꼼하게 잘 해 준다고 하시네요.

앞으로도 친구 분과 같이 미용실에 다니기로 했다고 하네요.


두 분이 미용실에 같이 가시면 안심을 해도 되는걸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차라리 토요일에 가시면 어떠냐고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제가 모시고 가면 되니까요.

어머니는 좋다고 하셨지만 기억을 하고 약속을 지키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늘상 하던 머리 손질도 어머니께는 모험길이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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