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 커피
어머니는 식후에 꼭 커피를 한잔 드십니다.
그것도 달달한 인스턴트 커피로요.
가끔 자식, 며느리, 손주들과 외출해서 식사를 하실 경우에도 카페에 들어가면 꼭 달콤한 커피를 원하셨죠.
그럴 때면 모카커피를 주문해 드리곤 했습니다.
보호 센터에 약을 전달해 주러 갔는데 낯익은 직원이 저를 부릅니다.
"어머니께서 점심을 드시면 꼭 커피를 한 잔 타달라고 하세요."
"네, 원래 그러세요. 혹시 타드리기가 어려우신가요?"
"그게 아니고, 커피같은 기호 식품은 보호 센터 이용료에 포함이 되어있지 않아서요."
그제야 저는 그 직원이 왜 저를 보자고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저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편의점으로 뛰어가서 인스턴트 커피가 100개 들어있는 박스를 사들고 왔습니다.
"혹시 어머니 친구 분 중에 커피를 드시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시면 타 드리세요. 제가 커피 다 떨어지면 계속 사다 드릴께요."
직원은 웃으며 손가락으로 한 쪽을 가리킵니다.
거기에는 커피박스가 여러 개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같이 단 커피를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직원은 당뇨가 있으신 분에게는 인스턴트 커피를 드리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당뇨 증세가 없어 하루에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젊은 당뇨 환자가 심각할 정도로 많다는데 90이 넘은 어머니는 그렇지 않으시니까요.
이래저래 어머니께 고마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어머니는 일요일에도 커피를 드시고, 또 보호 센터에 나가는 평일에도 종종 아침이나 저녁에 커피를 타서 드십니다.
그래서 집 베란다에도 커다란 인스턴트 커피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일요일에 성당에 모시고 가려고 어머니 집에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무언가 할 얘기가 있으신 것처럼 머뭇거리십니다.
"무슨 일 있어요?"
"커피가 다 떨어졌나 봐. 아무리 찾아도 없구나."
커피를 사다 놓은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베란다에 나가보았던 커피가 들어있는 박스가 그대로 있습니다.
저는 몇 개를 꺼내어 어머니에게 보여드립니다.
"아직 많이 있는데요?"
어머니는 깜짝 놀라십니다.
거기에 커피가 있는 것을 모르셨다고 하시면서요.
그제서야 저도 어머니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 냅니다.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도 잊어버리시는 어머니에게 익숙해 지려면 저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커피가 있는 장소를 알려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계획을 바꾸어 봅니다.
식탁 위에 항상 대여섯개 정도의 커피 봉지를 놔 두는 것이죠.
가끔 어머니께 들릴 때마다 하는 일에 커피 확인도 포함 시켰습니다.
냉장고 열어보기, 가스레인지가 정상 작동하는지 켜보기, 분리 수거할 재활용 쓰레기가 있는지 살펴보기, 그리고 식탁 위에 커피가 있는지 확인하기...
이 정도만 챙겨드리면 어머니는 크게 불편해 하지 않으십니다.
보호 센터에서도 어머니는 걱정을 안 해도 안심이 되는 어르신 중의 한 분으로 꼽힙니다.
어머니는 보호 센터에서 우등생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