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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Feb 20. 2020

이 이사, 그깟 빵집 내가 하나 차려줄게

20년 직장생활을 접었다

2016년 12월 초 회사 대표님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사장님, 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순간 대표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물으셨다.

"회사 그만두고 뭐하려고?"

"조그만 빵집을 하나 열어보려고요."

"이 이사, 그깟 빵집 내가 하나 차려줄게. 나하고 같이 5년만 더 하자."


나의 폭탄선언 후 내 방을 지나칠 때마다 사장님은 떠나려는 나를 만류하였다. 하지만 나를 포기하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사장님은 내가 한번 마음먹으면 맘을 잘 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고 사장님은 다른 제안을 하셨다.


"이 이사, 이 이사가 회사에서 일한 시간이 얼만데 그 많은 업무 인수인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을까? 3개월만 시간을 줘. 후임자 얼른 뽑아서 인수인계할 수 있게 할 테니. 인수인계한다고 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그건 해놓고 가야죠. 업무 인수인계는 성심성의껏 하고 떠나겠습니다."


회사에선 나의 후임으로 세 명의 직원을 새로 채용하였고 나는 3개월 후 회사를 떠났다. 그렇게  20년의 직장생활이 끝났다.


터널 설계 연구원, sales manager, 전략기획팀 과장, 마케팅팀 팀장, 베이징대표처 수석대표, 중국 합자법인 CEO, 해외영업팀 이사. 내가 지녔던 명함에 새겨진 나의 직책이다. 나는 내 이름보다는 내 이름 위에 있는 직책으로 불렸고 직책보다 더 위에 있는 회사 이름과 함께 평가되었을 것이다.  


직책과 회사는 나의 든든한 뒷배였다. 회사를 떠난다는 건 그 든든한 뒷배도, 내 이름이 새겨진 법인카드도 버린다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은 채 모든 것을 내가 다 떠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회사를 떠난다는 게 두려웠던 이유였고 조그만 동네빵집을 연 이후로 종종 아쉬웠던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깟 빵집"을 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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