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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Feb 21. 2020

근데 왜 하필 빵집이야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

사실 나도 이게 궁금했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내가 빵집을 하겠다 생각하게 된 계기를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중국 생활에 사건의 발단이 있음을.


2007년, 중국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새로 옮긴 회사의 베이징사무소 수석대표로 발령이 난 것이다. 2004년 상하이를 떠난 지 2년 만이다. 다시 시작한 중국 생활에서 나는 끔찍한 음식 스캔들을 여럿 겪었다. 시작은 2008년 멜라민 우유 파동이었다. 단백질 함량을 맞추기 위해 멜라민을 넣은 우유가 대량으로 유통되었다. 이 우유를 먹은 아이들의 몸에 결석이 생기고 심지어 죽는 사례도 나왔다. 당시 3살이던 딸내미도 그 우유를 먹고 있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지금도 가끔 딸내미 몸에 그때의 영향이 남아있지 않을까 걱정하곤 한다. 그 후로도 가짜 고기, 가짜 달걀, 하수구로부터 추출, 정제한 식용유 등 기발하고 창의적이기까지 한 음식 스캔들을 다양하게 경험하였다.  


음식 스캔들을 겪으며 음식에 대한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린 딸내미에게 건강한 음식만 먹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도 한 몫하였을 것이다. 당장 우유를 끓었고,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탐색을 시작하였다. 수소문 끝에 베이징 북쪽 만리장성 아래에 자리한 유기농 농장을 알게 되었다. 중국농업대학을 졸업한 시아오딩이 부모님과 함께 일구는 6000여 평 규모의 농장이었다. 화학물질 없이 키우는 채소, 달콤한 살구가 가지가 휘도록 달린 살구나무, 그 아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닭들, 두꺼운 깔개 위에서 호박 파먹는 흰 돼지, 그리고 굵은 손마디에 두꺼운 손을 소유한 선하게 생기신 시아오딩의 부모님. 첫눈에 이 농장에 반했다. 그리고 농장은 곧 우리 가족의 놀이터가 되었다. 특히 딸내미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밭을 갈고, 씨앗을 심고, 닭 모이도 주고. 직접 모은 달걀을 바구니 한가득 담아 오던 딸내미의 뿌듯해하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목요일, 채소 장수가 되다

주말 농장 나들이는 무료한 베이징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사무실 근처 빌딩 숲 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흰구름마저 둥둥 떠 다니는 날에는 업무 땡땡이치고 농장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사장님, 감사합니다. 좋은 일자리를 주셔서^^). 시아오딩 부모님을 도와 채소밭에 물 주고 풀 뽑고 닭 모이 주다 보면 주위에 어둠이 내리기 일쑤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내가 직접 수확하고 모은 각종 채소와 계란이 양손 가득이었다. 농장 수확물을 나눔 받은 주위 분들도 맛이 기가 막히다는 말과 함께 사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오셨다. 시아오딩에게 이 사실을 전하니 같이 한번 해보자고 권유하였고 그렇게 난 일주일에 한 번 채소 장수가 되었다(사장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일자리를 주셔서^^).


주문 관리를 위해 "자연이 키우는 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였다. 카페 회원들이 매주 화요일 올린 주문을 목요일 아침까지 농장에서 준비하여 목요일 오후에 아파트 단지별로 배송하는 시스템이었다. 일종의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우리말로는 채소꾸러미라고 한다)였다. 베이징에는 왕징이라는 한인촌이 있기에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유기농 채소로 시작한 꾸러미엔 달걀, 닭, 돼지고기가 더해졌다. 수요도 늘어 일주일에 돼지 두 마리를 잡게 되었다. 먹거리를 파는 장사다 보니 이런저런 말도 많았지만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자연의 방식으로 키운 채소와 고기는 그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돼지뼈로 끓인 감자탕은 끓이면서 걷어낼 거품도 생기지 않았고, 특별한 양념 없이도 잡내 하나 없이 풍부한 맛을 냈다. 아 중요한 건 결국 재료구나!


채소 장사는 허페이에 합자법인을 설립하면서 끝이 났다. 가족이 사는 난징과 직장이 있는 허페이를 매주 오가는 생활을 하는 동안 음식은 한동안 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열망은 맘 속 깊은 곳에서 다시 피어나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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