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타종 없이 새해를 맞으려니 흥이 나지 않았다. 연기대상도 가요대제전도 보지 않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집에서 꼼짝 않고 이틀 동안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 일곱 편을 연달아 보았다. 연휴 중간에 당직이 걸린 터라 사흘째 되던 일요일에 사무실로 나갔다. 불과 며칠 전인 작년에 유예해 두었던 묵은 피로를 다시 둘러업고 일하던 중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신년이라 전화 함 해 봤다.” 나는 아빠에게 요 며칠 새 겪은 넌더리 나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냥 입다물고 있었어. 어렸을 때라면 뭐라고 안 하고는 못 배겼을 텐데, 이제는 그런 일에다 에너지를 쓰고 싶지가 않더라고. 하긴 반 칠십이니 나이 많이 먹었지 뭐.” 하고 푸념했다. 아빠는 “허허” 웃더니 “그래. 니 나이 마이 머건네!” 하고 맞장구쳤다.
나(=x)는 아빠(=y)가 서른한 살이 되던 해에 태어났고(y=x+30), 몇 해 전에 아빠가 살아온 시간의 절반까지 따라잡았다가(y=2x), 이제는 아빠가 인정하는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이 되었다(x →+∞, y →+∞). 함께 칠십 살로 향해가고 있는 아빠와 나는 “세상이 항상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매너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지”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속상하거나 처량한 일만은 아니겠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 점점 많이 알게 되고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며, 세상을 이해하려는 욕심으로부터 초연해지게 되는 수양이기도 하려니. 나이라는 건, 속상해하지도 처량해하지도 헛먹지 말고 꼭꼭 씹어 하나씩 잘 소화시켜야 할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