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 온 옆집 남자는 가로세로 세 뼘 남짓한 창문 밖으로 담배를 피웠다. 홀수인 그의 집과 짝수인 내 집은 벽을 사이에 두고 좌우 대칭 구조로 지어져서, 그의 집 창문이 붙은 벽에는 내 집 창문도 달려 있었다. 미처 흩어지지 못한 담배 연기가 집 안으로 흘러들어올 때면 나는 “우씨, 냄새!” 하며 창문을 닫았다. 얇은 벽 너머로 투덜대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를 뿜었다.
곧 그는 ‘밥도 먹는 책상’ 아니면 ‘책도 읽는 식탁’인 듯한 가구를 집에 들였다. 가구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것과 한 쌍일 게 분명한 의자 끄는 소리 때문이었다. 밀고 당길 때마다 ‘그드드득’ 하고 바닥 긁는 소리를 내는 걸 보면 의자에는 바퀴가 아니라 쇠나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다리가 달려있는 듯했다. 천장 낮은 원룸 치고는 층간 소음이 없다 했더니 옆집 사람이 복병이었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왔더니 현관문 틈에 노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문을 열자 바닥으로 툭 떨어지기에 발로 밀어 치워버리려다 말고 집어 들어 펼쳐보았다. A4 용지 반 정도 크기의 종이에다 검은색 펜으로 눌러 쓴, “안녕하세요” 하고 시작해서 “부탁드립니다”로 마무리되는 편지였다. 쓴 사람은 스스로를 밝히지 않았으나 내용으로 짐작건대 내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바닥에 집어던져 부딪치는 소리, 문을 있는 힘껏 쾅 닫는 소리, 서랍을 넣고 뺄 때 나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 가구를 바닥에 질질 끄는 소리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잠을 못 자고 입맛도 잃었고 신경이 곤두서서 도저히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얼 하시길래 하루 종일 그런 소리가 나는지 궁금합니다. 한 달 동안 참았는데 이제는 더 참기가 힘들어서 이 편지를 씁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 편지가 전달되어야 할 곳은 옆집 같았다. 휴일에 집에서 쉬고 있노라면 옆집에서는 휴대전화 알람부터 시작해 온종일 달그락거리고 드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편지에 쓰인 대로의 소리를 전부 합하면 그 소리와 비슷할 듯싶었다. 벽도 바닥도 천장도 얇게 지어진 원룸에서는 바닥과 벽을 타고 소리가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저는 보통 새벽녘에 출근해서 한밤중에나 집에 들어옵니다. 서랍 달린 가구도 없고 좌식 가구뿐이라 바닥 긁을 일도 없어요. 댁에서 들리는 소리는 저의 집에서 나는 게 아닌 듯합니다.’라고 반박할라 쳐도 어디 사는 누군지 알 수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집에서 음소거 상태로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기에 섣불리 옆집 현관문에 편지를 끼워 넣고 모른체할 일도 아니었다.
생각 끝에 답장을 써서 내 현관문에 붙여놓기로 했다. 편지를 쓴 사람이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문틈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는지는 확인하러 올 것 같았다. “많이 힘드시겠네요. 그런데 저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지 않습니다. 최근 이웃집이 이사를 왔는데, 그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겠네요. 저의 집에서도 종종 말씀하신 것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도 조심하겠습니다.”
다음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현관문에 붙여두었던 종이는 사라지고, 대신 “조심하겠다고 하시니 두고 보겠습니다.”라고 쓰인 포스트잇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어쩐지 쌔한 느낌이 들었다. 옆집 남자에게도 “공동 주거공간이니 소음에 조금만 주의해 주세요. 저의 집으로 담배 냄새가 들어오니 옥상이나 1층에서 담배를 피우시면 안 될까요?” 하고 이야기해야 하려나 싶다가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다.
한동안 집에 있노라면 마음이 불편했다. 화장실이나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 발로 바닥 딛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고, 기침마저 속으로 삼켰다. 집에 들어오고 나갈 때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이 타기라도 하면 아랫집 사람일까 싶어 그가 먼저 층수 버튼을 누른 후에야 나도 뒤이어 눌렀다. 아랫집 사람과 뜻밖의 순간에 마주쳐 호된 질책을 당하거나 뺨이라도 맞게 될까 불안했다.
어느 날, 곤히 자고 있던 밤중에 별안간 쿵쿵 쾅쾅 하는 소리가 나기에 놀라 잠에서 깼다.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니 오전 두 시. 이 시간에 어디서 이렇게 큰 소리 날 일이 있나 싶었는데 귀 기울여 들어보니 바닥이 울리는 소리였다. 아랫집에서 야구방망이 따위로 천장을 찔러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큰 소리는 몇 분이나 계속되었다. 소리가 그친 뒤에도 한참 동안 심장이 두근거려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이튿날도 같은 일이 생겼다. 당장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가 “뭐 하는 짓이야?” 할래도 층간 소음 때문에 벌어지는 비일비재한 사건사고가 머릿속에 떠올라서 좀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모르는 척 112에 신고를 해 버릴까 싶다가도, 사생활의 영역이라 경찰이 강제하거나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걸 뻔히 알기에 치사하고 남우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만약 아는 직원이 출동하기라도 한다면...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건물에서 마주치는 온갖 사람들이 죄다 아래층 사람 같았다. 집 안 어딘가에서 작은 소리라도 날 때면 ‘아랫집이 또...?’ 하는 생각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내가 집에 있다는 걸 드러내기 불안해서 하루 종일 커튼을 치고 지냈다. 마침 집 계약기간이 얼마 안 남았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금방 입주할 수 있고 천장이 높을 것’을 최우선 조건으로 집을 구하기 시작했다.
보름 만에 새 집을 구해서 계약기간을 두 달 남기고 이사했다. 매일 조금씩 짐을 싸서 차에다 미리 옮겨놓고, 주말 오전에 큰 가구를 모두 실어 새 집으로 갔다. 짐 나르는 소리에 아랫집 사람이 오늘에야말로 쳐들어와 생짜를 놓는다면 ‘옆집 남자와 당신 때문에 나는 집에서 쉬는 동안도 편하지 못했고, 끝내는 이사 갈 마음까지 먹었다’ 하고 이야기해 주어야지, 하고 마음먹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담배 냄새와 소음으로 주변에 널리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옆집 남자는 무얼 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랫집 사람은 내가 이사한 걸 언제쯤 알게 될까. 내가 이사한 이후로도 소음이 계속되면 그는 어떻게 반응할까. 처음엔 현관문에 예의 바른 말투로 쓴 노란 쪽지를 붙이겠지. 그리고 나서는 어디 한 번 두고 보겠다고 하겠지. 그러고 나면 어떻게 하려나. 아무렴 천장을 때려봐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이사하고 며칠 동안은 문득 아랫집에 들린다는 소음의 원천이 내 집이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어디선가 분개한 남자의 고함과 함께 쿵쿵하고 벽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던 날 전까지는 말이다. ‘쿵쿵쿵 쿵쿵쿵쿵’ “으아아악 시바아알!!!”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이번엔 윗집이다. 윗집이 분명하다. 대체 무슨 팔자가 사는 곳마다 아래윗집이 죄다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이 집...에서는 적어도 2년을 살아야 한다. 이런 소리를 두 해나 참아가면서 지낼 생각은 없다. 관리실에 이야기를 하든지 위층에 올라가 보든지, 아무튼 어떻게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현관문을 열었다. 옆집 문 앞에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들은 여자가 내 쪽을 돌아보며 이야기하기를,
“지금 이 소리 때문에 나오셨죠? 저희 윗집이거든요. 시끄러워서 돌아버리겠어요. 저희 집에서는 천장에 달린 조명도 휘청휘청하고 난리에요. 저는 한 달 전에 이사 왔는데, 처음 이 소리를 듣고 누구 하나 죽이는 거 아닌가 싶어 경찰에 신고했었거든요. 출동했던 경찰분 이야기로는, 윗집 남자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했대요. 여자친구랑 통화하다 싸운 거라며 약봉지를 보여줬다는 거예요. 어쩐지 집이 시세보다 싸더라니. 저는 부동산에 전화 좀 하려고요.”
나, 나는... 이제 서울살이에 자신이 없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