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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Jan 29. 2022

꿈결같아라

섬진강변 광양 매화마을


겨울은 길다. 단조로운 색채뿐이다. 남쪽에서 동백과 매화가 핀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달려가고 싶어진다. 망설이는 사이 봄꽃들은 연이어 피어난다. 꽃의 북상 속도가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니 기다려도 되지만 며칠을 못 참고 남쪽으로 향하기도 한다.


 서둘러 내려갔을 때 개화시기를 못 맞춘 적도 있었다. 토요일 밤기차를 타고 여수 영취산에 갔을 떼 진달래가 거의 봉오리 상태여서 허탈했었다. 새벽에 출발해 간 진해에서 비에 젖어 떨어진 벚꽃 잎들이 물길 따라 흐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렸던 적도 있었다. 주말을 이용해서 가야 했으니 꽃 피는 날짜를 맞추기가 더 어려웠다.      

 평일 여행이 가능해도 최적의 시기에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진 동아리에서 3월 초에 광양 매화마을로 출사를 갔다.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갔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일행들은 작은 버스를 대절해 밤 12시에 서울에서 출발했다. 마을에 도착하니 캄캄했다. 누군가가 플래시를 켰고 다 함께 가지에 매달린 매화꽃을 찍었다. 배경이 검으니 색다른 멋이 있지만 찍기가 쉽지 않았다.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다. 인위적인 빛은 자연의 빛 앞에 너무 무색했다.      

 동이 터오자 마을은 모습을 드러냈다. 돌담길을 따라 한적한 길을 걸었다. 초가집 담장 옆에는 청매화와 홍매화가 어우려져 있었다. 언덕에 오르자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매화는 반 정도 핀 상태였다. 일주일 후쯤 전체적으로 개화하면 온통 하얀 꽃 세상이 될 것이다. 아쉽기도 했지만 꽃이 좀 덜 핀 상태도 나름 멋이 있었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는 시 구절이 떠올랐다.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처럼 가지에서 먼저 꽃들만 피어나는 봄꽃 들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다. 꽃이 져 가는데 한편에서는 잎이 돋아나면 나무도 '생활'이 시작되는 듯했다. 사람들도 꽃들로 만발한 꿈같은 며칠이 지나가면 살아 내야하는 현실이 다가오는 것 같다.      

 새벽부터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해 뜨는 언덕자리에는 미리 삼각대를 설치해 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해가 구름에 가려 일출은 밋밋했지만 높은데서 보는 풍경은 특별했다. 어두울 때 일찍 와서 자리를 잡으려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좋은 전망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위치는 정해져 있고 이미 선점한 곳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구름처럼 몽글 몽글 피어나는 하얀 매화꽃 무리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홍매화의 색채 조화가 꿈결 같았다. 돌담 사이 길로 걷는 사람들은 꽃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런 축제 같은 날들이 있도록 나무를 심고 가꾼 사람들이 있다. 섬진마을 밤나무골로 시집왔던 홍쌍리 여사는 황무지에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밤나무를 베고 돌을 골라가며 매실 밭을 일구기 쉽지 않았다. 열매인 매실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주변 농민들도 매화나무를 심게 되었다.  보는 것은 쉽지만 가꾸는 것은 인내의 연속일 것이다.      

 동창모임에서 전원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 친구는 순천에 가본 적은 없지만 좋을 것 같아서 그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어릴 때 살았던 마당 있는 집을 떠올리며 좋은 점만 상상하고 전원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실제 산에다 매화나무를 심고 가꾼 한 친구는 말리고 싶다고 했다. 매실을 얻기 위해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고 가지치기를 하는 과정이 너무 힘겨운 작업이라고 했다. 친구 남편은 손가락 관절 수술을 몇 차례 받았다한다. 꽃을 보고 즐기는 것은 순간이지만 이면에는 나무를 유지하기 위한 노고가 숨겨져 있다.       

 유월이 되면 매실은 술이 되고, 청이 되고, 절임이 되어 사람들의 몸을 건강하게 해 줄 것이다. 푸르렀던 매화나무 잎이 지고 긴 겨울이 지나 봄이 다시 오면 살갑고 푸근한 섬진강변 가에 또 눈부신 꽃이 피어나리라.  하얀 꽃이 눈처럼 피어나는 매화마을을 설레는 마음으로 또 찾아가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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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마을은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섬진마을에 있다. 3월이면 백운산 자락에 1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핀다. 1995년 3월 청매실 농원 매화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매화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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