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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6. 2022

중세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드리아 해변

짙푸른 바다와 빨간 지붕이 아름다운 트로기르


크로아티아는 왠지 여자 친구들과 여행해야 어울릴 것 같았다. TV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여고동창들과 여행지를 고르다가 자연스럽게 크로아티아로 결정을 했다. 막상 떠나려니 각자 사정들도 있었지만 녹음이 짙어가는 7월에 네 명의 친구들은 일단 떠났다.      

 크고 작은 폭포가 많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호수는 맑고 투명했다. 나무 데크 길을 걸으며 다양한 청록색이 조화를 이룬 물빛을 보고 자꾸 걸음을 멈추었다. 나뭇잎이 드리워진 수면 아래 송어 떼의 유영은 한가로웠다.     

 성곽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는 친구들과 성벽 길을 걸었고 바다가 보이는 부자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이렇듯 자유로운 분위기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어렵게 지켜낸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유고 내전 당시 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인간 방어벽을 만들어 성의 폭격을 막기도 했다 한다.      

 이탈리아를 마주한 이스트라 반도의 아드리아 연안의 해변 도시들을 들렀다. 로비니와 오파티아, 리예타, 자다르는 바다풍경이 아름답고 유적지도 많았지만 돌아서면 구별해서 기억하기는 어려웠다. 트로기르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났다. 짙푸른 바다. 구름이 떠있는 하늘도 바다색과 똑같은 색으로 푸르렀다. 그 사이에 빨간색 지붕 건물들은 고풍스러웠다. 여느 해변도시처럼  바다와 하늘과 건물이 어우러진 풍경이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트로기르는 BC 3세기경에 로마시대의 항구도시로 건설되었다. 12세기 사라센족의 공격으로 파괴된 도시는 재건되었고 13~15 세기에  성벽 안에 도시가 발전 되었다. 1420년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카메를렝고 성은 그 당시 건축되었다. 먹구름을 이고 서있는 카메를렝고 요새는 웅장해 보였다. 순간, 중세 시대의 한 시간 속에 들어가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의 개념은  간혹 뒤죽박죽 다가온다. 사람들은 처음 만난 모습으로 상대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중년 아줌마가 되어 여행지에 함께 서있지만  친구들에게서 양갈래 머리를 땋은 여고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습시간에 체육복을 입은 채 잔디밭에서 리즈 크래커를 먹던 기억도 나고 완행열차를 타고 경주로 수학여행 가서 바다를 보고 좋아했던 일도 떠오른다. 하지만  단체여행에서 나이들은 티를 톡톡히 냈다. 비행기에 목 배게를 두고 내렸고 방 열쇠가 없어졌다가 가방의 한 귀퉁이에서 찾아내기도 했다. 남자 가이드 반응은 깜빡 깜빡하는 아줌마들을 많이 봐와서인지 덤덤했다. 뭐가 없어졌다고 하면 “침대 들어보셨나요? 냉장고 열어보셨나요? 어디선가 나올 거에요.”라는 식이었다.      

 방을 배정 받을 때는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방을 사용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함께 바닷가에 발도 담가보고 숙소 근처에서 산책도 했다. 그로아티아의 밤하늘에 둥근달이 환하게 떠올랐다. 한 친구가 ‘우리 소원을 빌자’라고 했다. 각자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자녀들 이야기를 한 후였으니까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염원이었을 것이다. 여고시절을 함께 했고 만남을 이어온 친구들은 자녀들의 취업과 결혼을 앞둔 중년 여자들인 것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 크로아티아에서 친구들과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을 때는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트로기르의 인상적인 바다풍경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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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는 고대 로마제국의 침입을 받은 후 고트족, 훈족, 프랑크 왕국, 동로마, 헝가리, 오스만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91년 유고연방에서 독립했고 1995년에 내전이 종식되었다.

 트로기르는 아드리아 연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거장 라도반의 ‘아담과 이브’가 로마네스크 현관을 장식하는 성 로브르 성당 같은 중세건축물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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