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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화 Feb 26. 2022

자유여행도 연습이 필요하다

자유로운 도시, 방콕과 파타야


용기 없이 살았다. 진학도 취업도 결혼도 때를 놓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자녀들 키울 때는 눈앞의 상황에 급급해서 폭 넓은 선택을 못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중요한 문제로 여겼다. 일이 안 풀리면 핑계를 찾거나 남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를 합리화했다가 질책하기도 했다. 지나고 나면 좁은 시야로 살아온 시간들이 아깝기도 했다.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했을 테니 과거의 자신을 몰아붙일 수만도 없었다.     

 30대와 40대는 인생에서 활기찬 시기이지만 버거운 때이기도 했다. 한비야의 책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읽고는 언젠가 혼자 해외 자유여행을 해보리라고 결심을 했었다. 하지만 미루기만 했었고 퇴직을 해서도 실행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딸과 방콕으로 여행을 갔었다. 자유여행이지만 딸이 일정을 짰고 따라다니는 수준이었다.      

 문화센터에서 해외자유여행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교통편과 숙박을 예약하고 현지에서 어떻게 목적지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행경험이 많은 50대 남자 선생님이 알기 쉽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셨다. 수강자는 거의 나이 많은 여자들이었다. 해외자유여행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은 많지만 중년의 여자들에게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강의를 들은 사람들 대상으로 여행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유럽 자유여행을 위한 전 단계로 방콕과 파타야를 가는 8박 9일 일정이었다. 인솔자가 있으니 ‘자유여행 연습’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냥 가면 되는 거지 무슨 연습이 필요하냐고도 하겠지만 엄두가 안 났던 상태에서는 필요한 과정으로 여겨졌다.      

 도전하기로 하고 혼자 신청했다. 일행은 열두 명의 중년 아줌마들이었다. 각자 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알을 알음 아는 사이들이었다. 방콕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지하철 타는 법을 배웠다. 방콕 지하철에는 몇 년 전의 우리나라처럼 표를 파는 직원들이 있어서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토큰 같은 것을 사서 개폐기에 대고 타고 내릴 때는 구멍에 넣었다.       

 다음에는 둘이 한조가 되어 목적지를 찾아다니며 미션 수행을 했다. 미션이란 정해준 곳을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구글로 위치를 파악해서 핸드폰으로 전송하는 것이다. 터미널21과 시암센터 등의 대형쇼핑센터와 왓 아룬 사원과 후알람퐁 역 등을 찾아갔다. 역에서는 싱가폴로 가는 국제 열차의 열차시간과 가격 등을 알아봤다. 직원들은 인터넷으로 찾아보라했다. 역 안에 있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물어보다 어려우면 핸드폰 번역기를 이용해서 소통을 했다. 진지하게 도와주려고 애쓰는 한 여학생의 표정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다음 단계로 혼자 원하는 장소를 정해 찾아 다녔다. 씨롬역 근처의  룸비니 공원은 호숫가에 큰 나무들이 있어서 휴식하기 좋은 곳이었다. 더운 날씨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좋았다. 차츰 혼자 걷고 지하철을 타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지도를 보며 사원인 왓망곤을 찾아 걸어가며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니 쉽지 않았다. 사원의 불상 앞은 노란 색 꽃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야자, 파인애플, 바나나, 포도, 사과 등의 공양한 과일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왕궁까지 가기는 멀어서 툭툭이를 탔다. 거리 곳곳에서 왕족의 초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왕족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90프로 이상이 불교를 믿어서 인지 겸손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왕궁은 방콕이 수도가 된 해인 1782년 라마 1세에 의해 지어졌다.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대웅전 옆 상층테라스였다. 그 곳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황금빛 둥근 탑, 불교성전이 보존된 장서각, 앙코르와트 석재 모형, 왕들의 입상 조각상들을 모셔놓은 건축물이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에 있는 청동코끼리와 신화에서 유래된 반인반조의 부조물 들은 신비로웠다. 왕실 전용사원인 왓 프라깨오 본당의 외관은 다양한 색깔의 유리로 이루어져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실내에는 녹색의 옥을 깍아 만든 에머랄드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계절이 바뀔 때 마다 태국 국왕이 불상의 승복을 갈아입히는 예식을 수행한다. 왕궁에는 다양한 나라들로부터 온 관광객들이 엄청 많았다.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왕궁을 보니 왜 국내외 사람들이 이곳을 보기위해 몰려서 북새통을 이루는지 이해가 갔다.      

 왕궁에서 툭툭이를 타고 짜오프레야 강변으로 갔다. 왓아룬 궁으로 가는 보트를 타기 전에 휴대폰충전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망고밥이 80바트(약 2400여원)이니 물가가 싼 편이었다. 보트 타고 강을 건너 석양이 지기 시작하는 화려한 궁의 탑들을 보고 아시아티크로 가는 배를 타러 갔다. 러이끄라통 축제 기간이어서 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러이’는 ‘띄우다’, ‘끄라통’은 ‘물에 띄우는 바구니’라는 뜻이다. 태국 사람들은 바나나 나무줄기나 연잎으로 만든 아주 작은 배에 초와 향, 꽃 들을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빈다고 한다. 놀이시설과 쇼핑센터, 음식점등이 있는 아시아티크 주변에는 꽃등을 띄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양한 생화로 만들어진 꽃등에 소원을 담아 작대기를 이용해 조심스레 강위에 띄우는 축제는 차분하면서도 화려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대중으로 가자니 험난했다. 싸판딱신역으로 가는 배는 무료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1시간을 기다려 겨우 탔다. 시간이 늦어져 지하철을 환승하면서 호텔에 전화를 했다. 툭툭이를 호텔 근처 펫부리역까지 보내달라고 했다. 역에 내리니 툭툭이가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하니까 곧 보내주겠다고 했다. 휴대폰 밧데리가 닳아서 일행에게 연락을 못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툭툭이가 안 와서 결국 택시를 탔다. 택시는 다른 방향으로 가더니 비슷한 이름의 다른 호텔에 내려주었다. 겨우 호텔로 돌아오니 12시였다. 모두 걱정들을 하고 있어서 미안했다. 호텔에 와서 왜 안 보냈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전화를 받았던 여직원은 퇴근을 했단다. 영어로 말하기도 어렵지만 듣고 소통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처음에 전화했을 때는 툭툭이를 보냈는데 경찰이 역 근처에 세우지 못하게 해서 그냥 갔고. 두 번째는 안 나왔단다.  미안하다 했지만 마냥 기다리다 더 늦었을 생각을 하니 맥이 풀렸다.     

 휴양도시 파타야는 자유로운 분위기 였다. 터미널21, 센트럴 파타야 몰 같은 대형쇼핑센터가 들어서서 사람들이 쾌적한 공간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바닷가의 오래된 지역도 밤이 되니 북적였다. 일행들은 유흥거리를 지나갔다. 요란한 음악과 여자들의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정신이 없었고 관광객들이 몰려 걷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걷다가 일행 중 몇 사람들은 못 견디겠다고 중간에 길을 돌아서 숙소로 가버렸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닷가가 나왔는데  아쉬웠다. 여행을 주관한 선생님이 생음악이 연주되는 beer bar에 가보자고 하셨다. 굳이 술을 안 시켜도 싼 가격으로 음료를 마시며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한물 간 외국 밴드인지는 모르겠지만 팝송이 듣기 좋았는데 신청곡을 받기도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영화로 한참 퀸 노래가 인기 있을 때여서 쪽지에 적어냈더니 ‘Don’t stop me now’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음악을 들으며 앞자리 사람들을 보니 나이든 백인 남자와 젊은 태국 여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우리 자리가 조금 높은 위치에 있어서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남자는 게리쿠퍼를 닮은 듯 인상이 좋았다. 잘생긴 나이든 백인 남자와 안 예쁜 젊은 태국 여자. 그 들은 진지하게 무슨 이야기인가를 계속 하고 있었다. 다음날 툭툭이를 타고 가다 오토바이 운전자 뒤에 탄 게리쿠퍼 닮은 백인 나이든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 뒤에는 젊은 여자가 타고 있었다. 그 바에서 본 여자가 아닌 늘씬한 젊은 태국여자였다. 잘 못 보았나 싶었지만 전 날 하도 인상적으로 봤었기에 구별이 갔다. 소설을 쓰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파타야는 어떤 도시인가 싶었다.  


 혼자서 파타야의 골목을 걸어봤다. 호텔이나 리조트는 화려하고 쾌적하지만 그 지역을 벗어나면 길도 좁고 낡은데다가 건널목도 없는 상태에서 차와 오토바이들이 수시로 다녀서 위험했다. 쇼핑센터들도 돈 벌기위해 지극히 화려하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도로는 대조적으로 열악했다. un named load라는 곳은 주거환경의 변화가 별로 없어 보이는 옛모습 그대로인 동네였다, 외국인들이 휴양하는 장소와 현지인들이 주거하는 장소는 분위기가 완전 달라서 부조화된 느낌이 들었다. 파타야에서는 교통수단으로 쏭테우를 많이 이용한다. 작은 트럭 같은 차인데 올라탔다가 내릴 곳에서 벨을 누르고 20바트(약 600원)를내고 내린다. 진리의 성전을 보고 근처 길을 따라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전에 걸었던 곳과는 달리 한가로운 길이었다. 좋은 바닷가는 큰 호텔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백인들이 많이 보였고 현지인들은 경비를 서거나 음식을 서빙하거나 물건을 팔고 있었다. 내국인들이 자신들의 나라 해변을 많이 누리지 못하는 것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자유여행연습도 끝나가고 있었다. 나이든 사람들이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인터넷으로 지도를 보며 다니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하다 보니 두려움도 없어졌고 외국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대중교통으로 찾아갔던 쇼핑센터나 짜뚜짝 시장, 카오산 로드, 아시아티크 등도 알고 보니 딸과 함께 갔던 곳이었다.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자유여행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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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은 총면적 218,000평방미터, 1782년에 라마1세에 의해 세워졌다. 새벽사원은 아유타야왕조 때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104m. 도자기 조각이 붙어 있어 햇빛에 반사되면 화려하게 빛난다. 

카오산 로드는 우리나라 명동 같은 분위기의 거리로 상점들과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팟퐁거리는 방콕을 대표하는 야시장. 짜뚜짝 주말시장은 금, 토, 일요일 주말에 열리는데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처럼 규모가 크고 활기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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