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기분 좋은 순간의 감정이다

삶의 결정하는 기분의 모든 것

십여 년 전, 서울의 공연장에서 일할 때 지인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나간 적이 있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성은 향이 좋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나에게 대뜸 “요즘 행복하세요?”라고 물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순간 정신이 멍했다.


질문을 받는 순간 ‘행복! 행복이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듯 혼란스러웠다. 행복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상대방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고 공연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내가 행복이란 말에 길을 잃은 것이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행복이란 말을 더 자주 쓰고 있다. 행복지수, 행복지표, 행복척도 등 행복을 수치화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방법들도 개발되고 있고 직장과 학교에서도 구성원들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인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대신 기분이 어떤지를 묻는다. 행복이란 말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행복은 결국 기분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이라고 하면 삶 전체를 대상으로 묵직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도 생긴다.


행복은 기분 좋은 순간의 감정이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기분이 좋은 때이고 기분 좋은 순간을 맞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기분이 나쁘다는 뜻이다. 이처럼 행복은 어느 한순간의 기분을 묻는 말이다. 일시적인 만족감이나 쾌감에 가깝다.


그런데 행복은 기분이 좋은 만큼, 좋은 기분을 느끼는 만큼 달라진다. 즐거움을 느낄 때의 행복과 황홀함을 느낄 때의 행복, 숭고함을 느낄 때의 행복이 다르다. 황홀함과 숭고함을 느낄 때 우리는 기분이 훨씬 좋아지는데 이때 느끼는 행복은 소소하게 경험하는 행복과는 확연히 다르다. 결국 행복은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좋은 기분을 얼마나 깊이 느끼는지에 달려있다. 기분이 더 좋아, 좋은 기분을 깊이 느낄 때의 행복이 훨씬 오래가고 흔들리지 않는다. 이유 없는 행복처럼 말이다.


우리는 기분이 좋을 때 편안하다. 예전부터 느껴왔던 것처럼 익숙하고 가슴에 무언가 꽉 찬 것 같으면서 마음과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반면 기분이 나쁠 때는 낯설고 불편하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어색하다. 마음과의 연결이 단절된 같은 느낌도 든다. 그것은 우리가 기분 좋게 살도록 몸과 마음이 준비되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행복은 기분에 달렸다. 기분이 좋으면 행복하고 기분이 나쁘면 불행하다. 행복은 관념의 문제도, 철학의 문제도 아니다. 행복은 기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이다. 좋은 기분은 늘리고 나쁜 기분은 줄이는 것이 행복해지는 비법이다. 결국 기분이 생각과 감정에 의해 결정되니 행복은 생각과 감정을 결정하는 삶의 태도 문제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시민 개개인들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아울러 시민들의 보편적인 기분에 맞춰 복지와 문화, 환경, 건설 등 도시의 제반 문제를 행복의 관점으로 풀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쁜 기분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쁜 기분을 마치 일상의 감정인 듯 체념하고 습관화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기분이 나쁜 것은 정상이 아니다. 기분이 나쁠 때는 빨리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기분을 전환해야 한다. 행복을 위해서는 좋은 기분을 자주 그리고 깊이 느껴야 하고, 기분 좋은 순간의 총량을 늘려야 한다.


특히 행복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분을 가장 나쁘게 하는 마음의 응어리를 인정하고 풀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기분을 가장 나쁘게 만드는 상처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가족 간의 애증관계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닥친 일로 인한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이 상처와 트라우마가 생각날 때마다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좋은 기분을 방해하는 이와 같은 응어리를 놓아버려야 좋은 기분을 더 자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행복은 기분 좋은 순간의 감정이고 기분이 더 좋을수록 우리는 더 깊은 행복을 느낀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만족감이 아닌 조건 없고 이유 없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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