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절망과 괴로움을 이기는 느낌

<아리랑>

최근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어갔다가 모진 고초를 당하셨던 할머니가 방송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구순의 할머니는 가냘프지만 꼿꼿한 자세로 아리랑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을 힘주어 부르고 계셨다. 비록 목소리가 작아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노래의 울림은 어느 노래보다 강렬했다. 노래가 중반부로 넘어가자 할머니의 음성이 울려 퍼지는 공연장에는 숙연함이 가득해졌다. 어떤 관객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고, 어떤 관객은 깊이 올라오는 슬픔에 목이 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할머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것이었다.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 할머니의 얼굴에 향기로운 꽃내음이 스며들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을 고통과 치욕의 순간들,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 정도로 존엄이 짓 밟혔던 그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해 삶을 버텨낼 힘이 없을 것 같은 할머니가 자신의 삶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신 것이다. 미소는 오래지 않아 사라졌지만 할머니의 미소는 필자의 온몸을 전율케 했다. 무엇이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을까? 고민에 빠진 필자는 할머니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든 것은 할머니가 부르고 있는 아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아리랑을 부르면서 겨울바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파고드는 절망과 괴로움을 이겨내시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아리랑을 들으면서 자라고 아리랑을 들으면서 생을 보낸다. 그렇게 아리랑은 우리 삶의 매 순간과 함께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애국가보다 아리랑을 들을 때 가슴이 더 뜨겁게 타오른다고 할 정도로 아리랑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비단 위안부 할머니뿐만 아니라 40대인 필자도, 10~20대의 젊은 층과 어린이들도 아리랑을 들으며 가슴속에서 뭉클함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그 뭉클함을 통해 억눌렸던 울분을 토해내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일깨운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진 아리랑이 신명 난 축제의 노래였다면 할머니가 부르고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아리랑은 절망을 넘어선 희망, 슬픔을 넘어선 용기의 노래다. 요즘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아리랑이 수록돼 있어 어린 시절부터 아리랑을 배운다고 하니 아리랑의 울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울림이 우리를 하나로 묶고 있고, 우리의 가슴에 열정과 신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다. 언제 이 사태가 끝날지 가름할 수가 없으니 답답함을 넘어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야말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혼란이다. 지금의 상황은 IMF사태보다 더 혹독하고 2008년 금융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칠흑 속 어둠이다.


이렇게 어둠에 휩싸여 길이 보이질 않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희망이다. 가슴속에서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희망의 느낌을 깨워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희망을 느끼고 희망을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희망의 느낌을 자주 드러내지 않으면 절망의 그림자가 더 깊게 드리우고, 괴로움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다가온다. 우리에게 늘 맥동 치고 희망의 느낌은 행복과 기쁨, 열정의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희망의 느낌은 내면에서 좋은 기분이 솟구치면서 삶이 원하는 방향대로, 꿈꾸는 지점대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바로 희망이다. 희망의 느낌을 깨울수록 실제로 삶에서 좋은 일들이 벌어진다. 희망을 느낄수록 희망적인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건강의 느낌인 활력을 깨울 때 몸이 건강해지고 풍요의 느낌을 깨울 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 우주의 이치다. 느낌에 따라 삶의 흐름이 변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만끽할 때 삶이 도약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절실하다. 반면 원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꿈꾸는 지점과 완전히 다른 길로 향할 것 같을 때 우리는 절망을 느낀다. 절망을 느낄수록 삶은 더욱 뒷걸음을 친다. 그러니 위대한 희망의 찬가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을 자주 들어야 한다. 아리랑을 들으며 절망과 괴로움을 잠재우는 희망을 느껴야 한다. 어떤 역경과 고난을 물리치는 희망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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