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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나라 Jan 15. 2022

제주 겨울은, 오름이어라

오름의 여왕, 다랑쉬 오름을 오르다



뜨거운 여름, 제주의 오름은 '두려움'이었다.

봉긋봉긋 이쁘게 솟아 올라 어여 올라오라며 나를 부르는 듯 했지만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숨막히는 열기, 그리고 그늘 한점 없는 무자비한 능선....

도저히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아름답다는 오름들, 올라가면 뷰가 정말 끝내준다는 오름들, 움푹 파인 분화구인 굼부리가 그리 매력적이라는 오름들... 모두 애써 외면했다. 태양을 피해 나의 몸은 숲으로, 곶자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다시 찾은 제주, 이번엔 겨울이다.

훈훈한 기온과 한낮에 쏘아주는 기분좋은 햇빛, 청량감 넘치는 신선한 공기는 시선을 저절로 오름으로 향하게 한다.

우거진 나뭇잎들을 다 떨어뜨려서인지 그 아름다운 능선들이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며 여기 저기 봉긋봉긋 솟아 올라 손가락으로 한번 쓰다듬고 싶어졌다.

제주 동부 지역은 아름다운 오름들이 즐비하다. 용눈이 오름, 다랑쉬 오름, 높은 오름 등등. 멀리 보이는 성산일출봉도 오름이요 그 옆에 누워있는 듯한 우도도 오름이란다. 마치 한라산을 부모로 모시고 그 아래 자식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형상이라고. 정말 여기 저기 솟아 있는 모습들이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계림이나 만봉림, 태국의 크라비처럼 드라마틱하게 높이 치솟지는 않았지만, 말그대로 사람의 눈에 편안한 부담스럽지 않은 곡선의 미학을 보여주며 적당히 아름답게 솟아있어 오래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또한 적당한 높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다랑쉬 오름’은 제주 동부 지역 대표 오름이다.

능선의 곡선이 아름답다는 용눈이 오름이 휴식기에 들어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일단 다랑쉬 오름으로 '오름'의 물꼬를 트기로 했다.

차를 타고 다랑쉬 오름에 다가가며 보니 다랑쉬 오름의 높이가 상당했다. 가까이 갈수록 더욱 우뚝 솟은 느낌이다.

잠시 다랑쉬 오름 바로 앞에 있는 억새가 그리도 아름답다는 아끈다랑쉬 오름을 오를까도 고민을 했다. 하지만 아끈다랑쉬 오름은 생각보다 너무나 낮았다.

그래 다랑쉬 오름 올라가서 한번 내려다보자!

내 결심은 듣기라도 한듯 아예 시작부터 온통 가파른 계단이다. 이 정도야 싶었지만 계속되는 가파른 길에 장사는 없다. 다들 숨을 헐떡이며 오른다.



세상은 공평하다. 적어도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만큼은



세상은 공평하다 적어도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만큼은.

내 발자국 만큼 힘들여, 공들여, 올라간 만큼 딱 그만큼의 아름다움을 내어준다.

카메라 렌즈는 멀리 있는 풍경도 끌어당기고,  보고 싶은 풍경만 잘라내어 담기도 한다.

멀리 있지만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아니면 더 먼 곳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 눈을 현혹시킬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얼만큼 올라갔는지, 그래서 보여지는 풍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숨을 헐떡이며 그저 열발자국 만이라도 오르면 딱 그만큼의 풍경이 나를 맞이한다. 숨을 몰아쉬며 그 풍경을 오롯이 즐기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성산일출봉도, 아끈다랑쉬 오름도 다들 그 자리에 있는데 마치 처음 만난듯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왜? 다 다르니까.

분명 다른 느낌이라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다 똑같았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는 인간의 눈을 따라갈 수 없는건가.



바로 앞이 아끈다랑쉬 오름, 그 뒤로 저멀리 성산일출봉과 왼편으로 우도도 슬며시 보인다


용눈이 오름,  지금은 휴식중



정말 딱 올라간 만큼 아끈다랑쉬 오름의 정수리가 점점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끈다랑쉬 오름은 억새밭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주차장을 내려다보니 차가 자그맣게 보인다. 휴우. 다랑쉬 오름은 사뿐사뿐 산책하듯 올라갈 수 있는 길이 거의 없고 그저 계단식으로 위로 위로 위로.

가파른 길이 끝나면 갑작스럽게 정상에 도착한다. 해발 382.4미터.

오름에서는 정상에 올라온 기쁨도 잠깐이다. 정상이 끝이 아니라 광활한 분화구를 둘러싼 능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랑쉬오름은 긴 타원형 형태의 깔때기 모양의 원형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 상당히 깊이 있게 패여 있었다. 분화구의 둘레는 1,500미터, 깊이는 115미터라고 한다.

이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의 깊이와 비슷하단다. 고작 200미터 정도를 헐떡이며 올라왔는데 아직 1500미터가 남아 있는 셈. 길은 두갈래다. 오른쪽은 다시 가파른 능선길이고 왼쪽은 완만하다. 왼쪽으로 가고 싶었으나 사람들이 모두 오른쪽으로 간다. 왜일까.  나도 오른쪽으로 간다.

정상인 줄 알았건만 정말 또 가파른 능선을 오른다. 그런데 진정 풍경이 기가막힌다. 사방팔방 탁 트여서 움직일때 마다 멋지다 멋지다 멋지다.

이래서 다들 오름오름 하는구나.


다랑쉬 오름 분화구
겨울이지만 그래도 초록초록하다
다랑쉬 오름 분화구의 가장 높은 곳,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손지오름, 모양이 이뻐 오르고 싶은 곳.
분화구의 저 밑바닥이 보인다. 지름은 30미터 정도


마음 같아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 분화구 아래로 마구마구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출입금지.

다랑쉬 오름 밑에서 위를 올라다보았을 땐 나름 뽀족해보였는데 이렇게 큰 분화구가 내려앉아 있었다. 신기하다.


내사랑 성산일출봉 . 다랑쉬 오름에서 보니 철옹성처럼 보인다.


이제 다 끝났구나..싶은 시점에 앙상한 은빛 나뭇가지들이 나타났다.

앗 이건 뭘까. 나뭇잎 없는 그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인건 처음이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는데 이길이 다 끝나니 설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나무는 바로 '소사나무'

소사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부이남에서 잘 자라며 10미터 정도 자라는 소교목 나무라고 한다. 줄기는 회갈색.

이곳 다랑쉬 오름 분화구 남측이 바로 이 소사나무 제주도 최대 군락지다.

소사나무를 끝으로 분화구 둘레길이 완성되었다.

만약 다시 다랑쉬 오름을 찾는다면 난 왼쪽길을 먼저 택할 것이다. 오른쪽 길은 진짜 가파르다. 반대로 돌아 천천히 풍경보다 내려오는게 나을 듯하다.


올라 갈때는 그리고 가쁘던 숨이, 내려올 때는 그저 가쁜하다.

긴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물 한통, 커피 한 잔 들고 올라가 풍경을 내려다 보며 한 잔 마시는 거 참 행복하다.

오름 산행은 짧지만 강렬하고, 가쁜하지만 만족감이 충만하다.

생각보다 큰 매력이다.


역시 겨울 제주는 오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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