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아들과 둘이 남았다. 딸은 친구 생일 초대를 받아서 진작에 나갔고, 아내도 동네 친한 언니와 마실을 갔다. 고로 우리끼리 저녁을 해결해야 되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점심때 먹었던 국을 재탕하기는 싫었다. 슬며시 아들에게 다가가 먹고 싶은 것을 물어보았다. 잠시 고민하더니 우삼겹이 먹고 싶다고 했다. 즉시 배달 앱을 켜서 검색했다.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인 정식도 있었지만 우삼겹 양이 적었다. 다행히 우삼겹만 배달되는 곳이 있었다. 300g은 적을 것 같고, 700g은 많은 것 같아 중간인 500g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패드에 코를 박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얼마나 재밌는지 낄낄대는 소리가 방을 넘어 거실까지 퍼졌다.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었기에 방에 있는 아들에게 그만 보라고 한마디 했다.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벨이 울렸다. 기다리던 우삼겹이 도착했다. 반찬도 꺼내고, 국도 데워서 한 상을 차렸다.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며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소금장에 찍어 입안에 넣었더니 아이스크림처럼 샤르르 녹았다. 아들은 맛깔난 음식 앞에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저리 심통을 낼까. 사춘기를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참. 둘 사이에 냉기류가 흘렀다. 그러면서도 한 젓가락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아빠는 쉴 때 계속 패드만 보는 것이 그렇네. 다른 것도 좀 하면 안 돼?"
우거적 우삼겹 씹는 속도가 내 귓가에 들릴 정도로 커졌다.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아빠는 내가 어떻게 사는지 알아?"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맨날, 일한다고 늦게 들어오면서. 주말에 잠깐 보는 걸로 모두 판단하지 마. 평일엔 공부하느라 볼 시간도 없어. 나한테는 이게 쉬는 거야. 그러니깐 간섭 마."
그때부터 나의 '라테는 말이야'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들은 선크림을 잔뜩 바른 얼굴처럼 햇살을 모두 막아냈다. 결국 쉴 때 책을 읽거나, 밖에 나가 친구도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잔소리도 너를 위한 거다.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생각해 보아라. 뻔하디 뻔한 말만 소시지 줄처럼 늘어놓았다. 내가 생각해도 참....
밥을 다 먹은 후, 아들은 다시 패드 속으로 사라졌다. 설거지를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 영혼은 잠시 신발장에 넣고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도록 일에 매달렸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좋은 것 주고 싶었다. 그게 정답이라 생각했건만.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모르는 무심한 아빠가 되어 있었다. 문득 예전 아버지가 술 취하고 들어오면 쏟아냈던 하소연이 떠올랐다. 그때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이제 조금 알겠네. 쓰디쓴 소주가 당겼다. 접시를 타고 수챗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뽀얀 거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삶은 반복된다는데 그 말이 맞네. 일하느라 멀리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미움으로 번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꼭 아이들 옆에 있겠다고 다짐했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될 거야. 늘 관심을 가질 거야. 그리 다짐했건만, 아이들 마음도 잊고 간 지 오래였다. 곁에만 있다고 다는 아닌데.
우삼겹을 먹으며 들은 쓴소리가 내내 온몸을 휘감았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렵다.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