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탄다. 문이 열리고, 사람 숲을 비집고 구석으로 들어간다. 서둘러 핸드폰 앱을 켜고 글쓰기에 돌입한다. 앞에 있던 사람이 바싹 붙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바짝 올렸다. 벌서는 것도 아니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글감을 옮기고픈 욕망은 허공 속에 손가락질로 대신했다. 이리 쿵, 저리 꽝 울퉁불퉁 지하철 안에서 한 글자 적고, 멈췄다가 두 글자 적으며 속으론 '네 정거장만 가자.'라고 속으로 속삭인다.
드디어 우르르 떠나간 텅 빈 공간의 빈자리에 앉아 글을 이어간다. "짐에게는 세척의 배가 남았다."란 유명한 말처럼 나에게는 30여분이 남았다. 어제 만난 반가운 지인과의 만남 속에 오간 따스한 대화들이 글 속에 스며들어 손가락이 춤을 춘다. 입가엔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어느덧 지하철을 내릴 때쯤엔 글을 마무리하고, 그에 맞는 사진을 넣고 '매일글쓰기'란 해시태그를 남기면 끝이 난다. '휴'하는 안도감이 들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 버스로 환승한다.
출근길에 글쓰기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 당시 본사 발령 후 밀려오는 일을 쳐내느라 야근에 허덕였다. 도저히 퇴근 후에는 매일 글 쓸 시간이 없어서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집에서 회사까지 지하철로 50여분이 걸린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서 그날로 시작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자판을 들고 글을 쓴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나. 옆 승객에 부딪쳐 핸드폰을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오타 작렬에 도착까지 절반도 완성하지 못했다.
하루, 이틀, 삼일, 운동을 할수록 근육이 늘 듯이 점차 글을 완성하는 숙련도가 늘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균형을 잡고, 정확히 자판을 누르고, 생각을 그 안에 담아내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지만 그걸 해냈을 때 오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2018년 9월 21일 블로그에 첫 글을 발행하고 매일 글을 쓰겠단 각오로 계속 이어왔다. 커다란 위기를 맞닥뜨리고 이젠 끝날 수 있겠단 상황에서 지하철은 한줄기 빛이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한 줌의 먼지 속에 사라질 소중한 삶이 회사라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곳까지 인도하는 지하철 안에서 한 편의 글로 완성된다는 건 의미 깊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매일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쯤 글을 쓰지 않는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도 안다. 하지만 불안정한 지하철에서 글을 쓰면서 고집스럽게 해나가고 있는 건 글이 없는 내 삶은 상상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 하얀 공간이 까맣게 채워가는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커다란 실수 해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엄마가 발견하곤 푹 안아줄 때의 안도감, 포근함이라면 설명이 될까. 내가 쓴 글에 내가 위로받는 느낌은 강렬했다. 그때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주체 못 했다. 어디든 기록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아 쓸 수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썼다.
그렇게 글을 쓴 지 이제 햇수로 6년이 지났다. 매일 꾸준히 글을 쓴 덕분에 책도 내고, 매체에 기사도 쓰고, 청탁받은 원고도 작성하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글로서 무언가 이루길 바라기보다는 글 쓰는 그 자체가 행복하다. 남들처럼 깊고 훌륭한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작고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며 때론 누군가 마음에 닿아 공감할 땐 더없이 좋다.
연말이면 또다시 근무지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할지 보단 출근하는 지하철 노선부터 챙기는 걸 보면 나도 참 못 말리네. 되도록 환승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긴 아무렴 어떠랴.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쓰면 되니깐.
이제는 나에게 최선의 글쓰기 공간이 되어준 지하철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내일 또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고민하는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