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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Oct 09. 2024

아이 마음을 모르겠다면 가족 독서모임이 정답이다

가족 독서모임으로 평생 남을 추억을 쌓았다

"우리 가족 독서모임 해볼까?"


할 말 있다는 내 말에 안방으로 따라온 아내는 그제야 얼굴에 긴장이 풀렸다. 속으로 '이 인간이 무슨 사고 친 것 아냐?' 하며 내내 걱정했을 텐데 안도하는 모습에 이제는 내가 떨렸다. 마치 수화기를 귀에 대고 대학 합격 여부를 바들대며 기다렸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래 하자."


우려와 달리 너무나 쿨하게 알겠다는 아내의 답에 내 귀를 의심했다. 몇 번이고 되물었다. 나중에 번복이라도 할까 지장이라도 찍을까 했지만 한 대 맞을 것 같아 말았다. 대신 기쁨으로 아이처럼 폴짝 뛰었다. 로망이 현실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요즘 유행하는 책육아를 시작하신 분이다. 따로 책을 읽어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집 안 곳곳에 책을 비치했다. 서재 책장엔 책이 넘쳐나 바닥 가득 쌓아 놓을 정도였다. 자연스레 책은 가장 좋은 친구였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거대한 협곡 아래서 커다란 칼을 들고 도적떼와 맞서 싸우고, 빨간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짜릿한 모험을 떠나기도 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져만 갔다. 성인이 되고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면 함께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다고.


그 오랜 꿈이 이루어졌다. 아내가 허락했으니 이제는 아이들의 허락이 남았다. 그때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딸은 초등학교에 각 입학한 1학년이었다.


"알았어. 해볼게."


살짝 떨떠름한 표정의 아들과 달리,


"와. 엄마, 아빠랑 같이 하는 거지 좋아!"


라며 딸은 무언지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


고장 난 TV를 없애고, 오래된 소파까지 버린 거실 공간은 인천 가구단지에 구매한 테이블로 채웠다. 시작 전 가족회의를 먼저 했다. 독서모임 규칙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성인 독서모임을 오래 했기에 규칙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규칙을 만드는 과정도 아이들과 함께 합의해서 정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규칙들이 독서모임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될 줄. 재밌었던 것 하나, 독서모임 전 책을 읽어오지 않으면 가족 앞에서 엉덩이로 이름 쓰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몇 번 수줍게 엉덩이를 흔든 적이 있다.

인천 가구단지까지 가서 구매한 테이블

첫 가족 독서모임은 결혼기념일에 북카페에서 진행을 했다. 각자 책을 읽어오고 줄거리를 설명하고 서로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았다. 아직 어린 딸은 질문을 몹시 어려워했고, 그 모습에 답답하다며 다그치는 아들 때문에 한바탕 울음이 터졌다. 어찌어찌 수습하고 나니, 이젠 아이들이 새로운 공간에서의 호기심으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결국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마무리하고 서점 나들이를 했다.

카페 콤마에서 진행한 우리의 첫 가족 독서모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궁금한 걸 묻고 나누는 진지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렸건만, 단박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진이 다 빠져서 여긴 어디요, 나는 누구인가가 절로 나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책에 집중하는 건 짜릿했다.


그 뒤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번 독서모임을 이어갔다. 요즘처럼 날이 좋은 가을날엔 돗자리를 챙겨 집 앞에 있는 안양천에 가서 야외 독서모임도 하였고, 여행을 떠나면 여행지에 관한 책을 미리 읽고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후 마지막 날 카페에서 독서모임을 하는 여행 독서모임도 진행했다. 처음엔 집중하는 시간이 채 10분이 되지 않았으나 한 두해 흐르며 거의 한 시간 동안 책 이야기만 나누게 되었다.

가족 독서모임을 해왔던 5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순간순간 마다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아이를 깊게 이해하게 되었고,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 역시도 독서모임에서 보이는 엄마, 아빠의 솔직한 모습에 놀라기도 하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감사하게도 그 과정들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책을 쓰는 과정은 고통보다는 설레고 행복했다. 추억을 곱씹고, 그걸 하얀 종이 안에 가득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나오고 가족 모두가 참 많이도 기뻐했다. 특히 딸은 책에 언급된 본인을 확인하며 내가 좋아하는 반달눈을 한가득 떴다. 세월이 흘러도 책 속에 담긴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이제는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고, 딸은 곧 중학생이 된다. 바쁜 일정 탓에 예전처럼 가족들이 모두 모여 독서모임을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틈틈이 아들과 딸과 하고 있다. 얼마 전 아들과의 독서모임에서 나눈 대화가 진하게 마음에 박혔다.


"아빠. 전에는 독서모임에서 책 읽는 게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책을 읽으면 그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잖아. 그게 큰 의미가 있어. 그래서 지금은 책이 좋."


독서모임에서 늘 삐딱하고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던 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 솔직히 울컥했다. 힘들지만 버텼던 순간에 대해 보상이라도 받는 듯했다. 책을 좋아하길 그토록 바랐는데, 바쁜 중에도 틈날 때 책을 읽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그리 흐뭇할 수 없다.


작년부터는 가족 독서모임을 알리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도서관에서 꾸준하게 가족 독서모임에 관한 강의 의뢰가 들어온다. 무엇보다 '아빠의 가족 독서모임 만드는 법' 책을 읽고 강의 의뢰를 하게 되었다는 말 가장 좋았다. 처음엔 독서모임을 구조화하는 이론 교육 위주로 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실제 실습도 코칭하고, 줌을 통해 가족들에게 피드백을 주는 새로운 시도도 해보았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강의의 스펙트럼 또한 확장되었다. 주중엔 일하랴 주말엔 강의하랴 정신없이 바빴지만 불러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사랑하는 가족 독서모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해나가고 있다.

그저 오래도록 가슴속에 간직한 자그마한 꿈이 현실이 되었고, 한 발 한 발 꾸준히 해나가다 보니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가족 독서모임'이란 여섯 글자는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살아가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전진해 나가면 언젠가 빛이 발한다는 걸 배웠다.


마지막 남은 소망이 있다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 아이들이 서점에서 우연히 가족 독서모임 때 했던 책을 발견하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 한 조각 지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러할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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