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배 Oct 16. 2024

70세에 함께 오로라를 보고픈 사이

중년 남자 여덟 명이 모여 아름다운 우정을 가꿔가고 있습니다

"야. 그때 우리 털린 것 기억나?"

"통영 횟집?"

"아주 제대로 털렸지. 남자 여덟이 주인아줌마 하나 당해내지 못하고.... "

"맞다 맞다!"

"우리가 늘 그렇지 뭐."


오래간만에 만난 우리 여덟 명의 용사는 술집 안이 떠나갈세라 옛 추억을 안주삼아 신나게 떠들었다. 벌써 통영 여행을 다녀온 지 7년이 다 되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때 이야기만 나오면 그 시절로 돌아가 내내 즐거웠다. 문을 일찍 닫으려는 주인아주머니의 계략에 넘어가 허겁지겁 먹고 쫓겨나 듯 나왔던 일이 무슨 자랑이라고 흑역사 이건만.

통영 다찌집에서 털렸던 순간

모임 장소는 노량진 수산시장이었다. 신선한 꽃게와 새우를 사다 위에 예약한 방에 모였다. 한강뷰가 보이는 멋진 공간에서 제철을 맞아 통통하고 쫄깃한 맛난 음식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니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사회나 가정에서 짊어진 짐을 모두 내려놓고 아이처럼 웃고 이야기 나누며 해방감을 즐겼다.  

문득 그 모습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았다. 이미 앞자리가 5가 넘어 인생의 반을 훌쩍 넘었고, 젊을 적의 생기로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깊게 파인 주름과 희끗한 흰머리가 자리 잡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20대의 패기 넘치는 학생들이었다. 상담을 공부하는 남성이 적은 현실상 뭉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만 해도 허름한 술집에서 소주 한 잔 하면서 취업, 연애, 결혼 등 현실적인 문제 앞에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와 공감을 나누곤 했다.


운명처럼 비슷한 시기에 모두 연애를 하고 결혼하고 취업을 했다. 상담계를 살짝 벗어난 나와 달리 나머지 일곱 명의 지인은 그곳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고 이제는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란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밖에선 후배들을 이끌어가고 근엄한 선배나 스승의 모습으로 지낼 사람들이 이렇게 짓궂을지 아마 상상하기 힘들 것 같다.


처음엔 가는 방향이 다르다 생각하고 조금 거리를 두었는데, 형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기존에 만나던 모임 안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고, 막내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형들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예전 그대로 섬세하면서 감수성이 풍부하고 더구나 유머러스했다. 마치 계속 모임에 있었던 것처럼 편하게 대해 주어서 금세 적응했다.


매달 회비를 내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연말에는 다 같이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란 변수로 인하여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다가 올 초에 드디어 부산을 다녀왔다. 얼마나 들뜨던지 전 날 잠을 다 설쳤다. 부산 먹거리를 탐방하고, 요트도 타고 숙소에서는 내내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한 명이 화두를 던지면, 다른 사람이 그걸 받아넘기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다들 개그 본능이 남달라 끝나면 배가 이쁠 정도로 정도였다. 그렇게 잔뜩 충전하고 나면 한동안은 삶의 세파에도 지치지 않는 힘을 얻었다. 때때로 어려운 일이 찾아와도 시간을 곱씹으며 이겨냈다.

생각해 보면 모임은 상상이상으로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다. 살아갈수록 좋은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는 깨닫는 중이다. 내가 나를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도 괜찮은 관계는 정말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다. 아직 철들기는 멀었지만 어느새 나이를 먹었고,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회생활 속에서 예전처럼 편하게만 있을 없다. 직급이나 지위가 주는 무게 속에서 때론 어울리지도 않은 근엄한 척도 해야 하고, 때론 불편한 쓴소리를 때도 있다. 가정 내에서도 남편과 아빠로서 책임감 속에 살아간다. 그걸 오롯이 벗어 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모임이었다.


술자리가 얼큰해질 때쯤 모임의 맏형이 소망을 내비쳤다.


"우리 나중에 꼭 단체로 오로라 보러 가자!"

"상상만 해도 정말 좋네."

"지금부터 계라도 해야 되는 것 아냐?"

"그럼 우리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아이슬란드가 되겠다."


다시 이야기가 꽃이 활활 타올랐다. 일장춘몽에 그칠지라도 그런 꿈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즉석에서 핸드폰 검색으로 아이슬란드 오로라를 찾아보고, 숙소나 기타 비용까지 알아보는 걸 보니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어느 기사에서 곧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중 하나가 바로 소중한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한 것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 의미로 지금까지 연을 맺어온 가깝고 소중한 이들과 오래오래 금란지교를 나누고 픈 바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