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글태기가 찾아왔다. 글 만 쓰면 세상 행복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으니 괴로웠다. 그래도 쓰지 않으면 살 수 없기에 꾸역꾸역 하루를, 일상을 기록했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라라크루'란 글쓰기 모임 회원을 모집했던 기억이 났다. 사실 전부터 관심이 있었으나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새로운 기수를 모집 중이었다. 손가락은 이미 신청 버튼 앞에 놓여 있지만 머릿속 생각이 계속 말렸다. 갈수록 내 안의 내향성이 커져서 새로운 환경이 두려웠다. 눈 한번 찔끔 감고 떴다가 신청했다.
모임 시작 전에 줌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고, 범상치 않은 대장님(라라크루 모임 장)의 진행 하에 기존 회원과 신규 회원 간의 인사가 있었다. 물론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통하는 주파수는 여기서도 흐르고 있었다. 금세 안도감을 느끼고 잘 왔다는 마음이 들었다.
매주 두 편의 글만 쓰면 되었다. 이왕 시작한 김에 잘해보자는 마음에 브런치 연재글도 신청했다. 곧 회원들의 위한 카톡방이 열렸고, 톡만으로도 으쌰으쌰 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글을 올리면 다정한 댓글로 힘을 주었고, '화요 갑분글감', '금요문장', '백일장' 등등 수시로 글감을 나눠주어 따라가기만 해도 되었다.
라라크루 모임에 활동하며 점점 글태기에서 벗어났다. 다시 예전처럼 글 쓰는 일이 세상 행복했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양한 색을 가진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때론 감탄하고, 때론 질투도 하며 내 글도 키워나갔다.
정해진 기간이 모두 끝나고, 합평회가 열렸다. 그동안 쓴 글 중 한편을 퇴고해서 그날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합평회 동안 몇 번이나 울컥했다. 글에 담긴 사연을 듣고, 공감하고, 응원하며 그 시간 속에 푹 빠져들었다. 예전에도 합평회는 참여한 경험은 있었는데 이렇게 따뜻한 적은 처음이었다. 글에 관해 비판 하나 없이 오롯이 쓴 노고를 토닥여주었다.
합평회에 이어 연말 송년회도 참여했다. 백일장 대회가 열려서 글을 쓰고, 덜컥 수상도 하는 기쁨을 누렸다. 글을 쓰며 처음 타본 상이 었다. 얼마나 좋던지. 카톡 메인 배경으로 오래도록 그 순간을 기억했다. 즐겁게 송년회를 즐기는데 대장님이 슥하고 옆에 앉더니 '잔가지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잔가지? 그게 뭐지? 하는 궁금증에 물어보니 출간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동안 쓴 글이 있으면 한번 참여해 보라는 말에 알겠다고 했다.
라라크루 활동과 별도로 잔가지 프로젝트 카톡방이 열렸고, 그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출간할수록 도움을 주었다. 출간기획서 작성부터 직접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투고라는 걸 해보았고, 맙소사 출간 계약을 맺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함께 한 다른 작가님도 출간 계약을 맺게 되어 겹경사를 누렸다. 그리고 올해 책이 세상에 나왔다.
글태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시작한 모임이 출간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 보다 좋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계속 참여하는 고정멤버가 되었고, 더 나아가 운영진 활동도 하고 있다. 이번 기수부터는 '수요질문' 코너를 맞아 매주 수요일마다 회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보다 훨씬 빛나는 답을 만나며 역시 작가들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얼마 전 농담처럼 100기까지 모임을 이어가자고 했는데, 현실이 될 거라 굳게 믿는다. 나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함께 할 각오가 되어있으니.
아쉬운 9기 활동이 끝나고 새롭게 10기 모집이 시작되었다. 늘 새로운 만남은 설레기 마련이다. 이번에 또 어떤 글쟁이님이 참여해서 모임을 환하게 비쳐줄는지.
혼자 쓰면 조금 외로운 글길에 같이 걸어갈 글벗이 필요한 분이 있으면 주저 말고 신청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