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다웅 살아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는 꼴 아닌가
빈 상자가 두 개 있습니다. A상자는 책으로 가득 차있고 B상자는 속이 텅 비어있습니다. 먼저 A상자를 딛고 서봅니다. 나도 상자도 멀쩡합니다. B상자를 딛고 서볼까요. 무게를 싣자마자 상자가 폭삭 주저 않습니다. 빈 상자가 당신의 마음이라면, 무엇을 채우겠습니까? 마음 상자가 싱크홀이 무너지듯 위태로울 때 공허한 마음을 메워줄수 있는 책을 소개합니다.
@2020 Sydney Book Curation
“로그인 상태를 유지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안 할래요. 초록창을 배경으로 한 마우스 아이콘이 No 위에 놓여있다. 마우스가 원수라도 되듯 온 힘을 다해 거세게 눌렀다. 내심 딸깍,소리와 함께 암전이 되길 바랐다. 3초 후 환한 조명이 켜지며 ‘서프라이즈~ 오늘까지 인생이 매우 엿같고 거지같았죠? 짜잔~ 지금까지 다 꿈이었습니다!’하며 《파리의 연인》의 김은숙 작가님이 영롱한 케이크를 내 얼굴에 들이밀었으면 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너 인터넷 하면서 노니?’하며 배추머리를 들이미는 상사만 있을 뿐.
10년 동안 품은 꿈의 문턱에서 미끄러진 후 들어온 회사였다. 처음 배치된 부서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 사람들 같았다. 카밀라 카멜로의 히트곡 Havana의 노래가사처럼 그들의 행동에는 특별함이 있었다.(Thers’s somethin’ about his manners) 평생 한번 겪기 어려운 매너와 태도를 가진 인간 군상들이었다. 숨 쉬듯 야근했고 ‘좀 많이’라고 불렸다.
처절한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자존감은 지하감옥 바닥에 있었다. 희극과 비극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번 생에서 희극은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지긋지긋했다. 윤리적으로 인생을 끝내버릴 방법을 고민하며 지하철이 끊긴 저녁 하염없이 걸었다. 번뇌를 거듭했던 탓에 배가 고팠다. 다행히 월급날이라 만구천원 하는 치킨을 시킬 수 있었다. 치킨박스를 열어 입에 닭기름을 묻히는데 갑자기 꿈도 못이룬 주제에 배나 고픈 내가 혐오스러웠다. 최악의 시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나는 지금, 그때 내 인생의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지를 모두 골라놓은 것처럼 살고 있다. 시작도 전에 완벽히 고갈된 창작력, 최저시급을 간신히 넘기는 임금, 불법파일 공유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잠든 근육청년 탐하기’를 검색하는 서른 몇 살의 인생.
-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中』
인생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보기를 전부 골라 살고 있었다. 눈알 돌아가는 재무제표, 성비가 의미 없는 남초 조직, 찍소리 못하는 상명하복, 공과 사의 합체. 그나마 퇴근하고 채용사이트에 들어가는 게 탈출을 꿈꾸는 작은 행복이었는데 그마저도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며 퇴근하는 통에 불가능했다. 가끔 일찍 퇴근한 날은 회식이었다. 판이 벌어진 뒤 2시간 쯤 지나면 술집 화장실에서 토를 하는 내가 있었다. 턱 밑에 닿은 변기가 차가웠다. 입주변에는 억지로 먹은 막걸리와 찢어진 먹태가 번져있었다. 턱 밑은 곧 깨끗해졌다. 내 눈물로.
도저히 앞이 안 보였다. 인생을 걸고 했던 일들은 다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겠다는 풍운의 꿈을 꾼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 뿐. 그런데 세상에 점조차 되지 못했다.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자괴감이 피부에 상처를 내면 어두운 좌절이 암세포처럼 퍼져 나를 완전히 좀먹어버렸다. 인생에서 로그아웃할 윤리적 방법 따윈 없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어딘가에 몰입해야했다.
그러다 우연히 영화 『인생』을 만났다.
영화를 보고나서 머리를 한대 맞은 듯 했다.
바로 원작소설을 구입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화가 되기도, 나쁜 일이 복이 되기도 하는 인간사의 복잡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술집에서 토나 하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다가와 ‘이보게, 인생은 새옹지마라네. 힘내게.’라고 말했다면 부모님의 안부나 물으며 욕을 퍼부었을 거다. 그만큼 고루하고 피부에 닿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를 완벽하게 체현한 소설이 있다. 바로 위화(1960-)의 『인생』 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연상되는 새빨간 표지가 첫 페이지를 넘기는 걸 망설이게 하지만, 이 망설임만 이겨내면 생동감 있는 대서사가 펼쳐진다. 소설은 ‘푸구이’라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이뤄져있지만 이야기 속에 대약진운동(사회주의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굵직했던 근현대사가 등장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이 맞이하는 희극과 비극. 정감이 드는 인물이 등장하고 그 인물이 끔찍한 고난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이야기구조지만 이야기의 속도감과 전개는 독자를 단숨에 빨아들인다.
주인공 푸구이의 어린시절, 그는 유복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문을 나설 때마다 “우리 땅에 좀 가보리다.”라고 했다. 푸구이는 대지주의 아들로, 소위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방탕한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노름을 하게 되고 빚을 잔뜩 져 조상들이 쌓은 재산을 모두 날렸다. 재산은 룽얼이라는 이에 넘어갔고 결국 그에게 밭을 빌려 소작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다 갑자기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한창인 전쟁터로 끌려갔다.
결국 포로로 잡혀 죽을날만 세고 있는데 해방군이 풀어준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딸이 농아가 된 걸 알게 된다. 마침 그때 중국의 토지개혁이 시작된다. 공산당은 룽얼의 재산을 몰수해 이전 소작인에게 나눠줬다. 인민정부는 룽얼을 잡아들여 악덕지주로 몰았고 곧 총살했다. 총살을 당하기 전 룽얼은 코를 훌쩍이며 푸구이에게 말한다. “너 대신 내가 죽는 구나.” 룽얼에게 재산을 뺏기다못해 빚을 졌지만 결국 룽얼은 죽고 푸구이는 살아남는다.
드라마로 따지면 10화 정도 될듯한 에피소드가 시간순서로 나열되어 있다. 희극-비극-희극-비극이 계속 반복되는 스토리 구조인데, 스토리가 극에 치닫는 순간 (딸,아들,사위,손주까지 모두 죽는) 작가의 메시지가 궁금해진다. 탁월한 이야기 꾼인 작가 위화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그는 푸구이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운명의 길과 자기의 삶을 담담하게 걸어나가는 게 길고 지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임을 알려준다.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은 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 나를 보게나. 말로 하자면 점점 꼴이 우스워졌지만 명줄은 얼마나 길고 질기냔 말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죽고 그렇게 다 떠나갔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
- 위화, 『인생 中』
소설에 등장하는 푸구이 노인은 고통 속에서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낙관적이다. 소설 속에서 자존심을 세우고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은 모두 무너졌다. 비록 세울 자존감 없이 비참하게 사는 푸구이 노인이지만, 그는 살아있다. 우리네 인생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거다. 살아있는 주제에, 죽지도 않은 주제에 절망을 느끼는 건 어리석인 마음임을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노인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끝없는 절망을 느끼던 20대, 내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최지우가 그렇게 애타게 불렀던 줄 백마탄 ‘실장님’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머리에 조명이 켜진 대머리 부장이었다. 그와 근무한 시간은 1년 남짓. 직원 입장에서 그는 매우 한심했다. 쉬운 의사결정 하나 하지 못했고 보고서를 가져가면 엉뚱한 소리를 했다. 속으로 그를 혐오하며 무시했다. 저런 인간 밑에서 일하는 나도 한심했다.
‘부장님 방향성을 주세요’하면 화살표나 그리는 그가 회사에 와서 가장 열성적으로 하는 일은 하나였다. 바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일. 그는 상무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부리나케 뛰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자신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를 보며 상무님은 혀를 찼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기존 상무님이 떠나고 새로운 상사가 발령을 받아와도 그가 온 날부터 떠나는 그날까지 버튼을 눌렀다.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비웃었다. 회사가 최악의 시기를 맞이하면 1번으로 잘릴 주제에 꼴값을 떤다고 했다.
어느 날, 그에게 불호령을 내리기만 했던 상무가 전무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상사는 버튼을 부르던 부장을 ‘실장님’으로 승진시켰다. 전무는 자신이 여러 조직을 돌아다녀보니 회사에 일 잘하고 잘난 사람은 많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없다며 그를 높게 평가했다. 그가 실장으로 발령나는 날, 깨달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보면 비극인 그런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존버’다. 버티는 놈이 성공하는 거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꽤 씁쓸하지만 현실 인생은 저런 논리로 굴러가기도 한다.
세상은 ‘정도를 걷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니가 안되는 이유는 '노력을 안해서'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부장이 열심히 노력하면 보고서를 기똥차게 잘썼을까?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할수 있는 일을 계속 했기 때문에 그는 승진했다. 2016년 올림픽에서 펜싱선수 박상영이 결승전에서 ‘할 수 있다’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화제가 됐었다. 그것이 희망적인 이유는 결과적으로 그가 ‘해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면 전혀 화제가 되지 못했을 거다. 노력하면 되는 이가 있긴 하지만 안 되는 사람이 태반인 게 현실이다.
‘할 수 있다’라고 자기최면을 걸고 안 됐을 때 크게 좌절하는 것 보다는 ‘아니면 말고’ 정신이 훨씬 낫다. 원하는 대로 인생이 돌아가지 않더라도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지난한 인생을 사는 지혜라고, 살아남은 자들이 말하고 있다.
위화 『 인생 』 - 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