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장점 2. 인간관계에서 해방된다

사람에게 아쉬운게 없다

by 시드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친구가 아니다




"라하엄마, 정말 내 스타일이야!”

아이반 엄마들 톡방에 얼떨결에 초대되서 하루에 300개씩 올라오는 카톡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한 엄마에게 개인톡이 왔다. 그녀는 내 인스타그램에서 봤다며 내가 올린 영어 사운드북 시리즈를 어디서 살수 있는지 물었다. 한국에서 구할 순 없지만 직구로 살 수 있고 해외출장이 종종 있으니 기회되면 구매대행을 해주겠다고 했다.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다는 그녀는 이모티콘을 10개씩 보내며 위 대사를 날렸다.


원서 책을 한번 구매대행 해준 이튿날부터 매일매일 그녀에게 카톡이 왔다. 기관에 대한 불만부터 아이 자랑, 남편 자랑, 커리어에 대한 고민 등등 어떤 날은 얼마나 자신이 처참한지, 어떤 날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정성스런 답은 아니었지만 틈틈이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나중에도 친하게 지내자며 매달리던 그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겼다. 기관에서 보내오는 사진에 우리아이와 어깨동무한 그집 아이가 보였다. 요즘 왜 뜸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봤다. 그녀는 친한 엄마들과 영어모듬을 꾸며 운영하고 있었다. 아, 내가 필요가 없어졌군.


사실 "라하엄마, 정말 내 스타일이야!"를 외칠 때부터 한가지 정정해주고 싶은 게 있었다. "내 스타일이야!"를 영어로 바꾸면 "You are my style"이다. 실제 영어를 쓸 때 '사람'에게 쓰지 않고 물건이나 방식을 말할 때 쓰인다. 사람에게 표현하면 "You are my type"이 맞다. 그런데 말해주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물건'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맞게 쓴 표현이다. 그녀에게 관계란 필요할 땐 쓰고 필요없을 땐 버리는 물건이니까.


사실 이런 일을 한두번 겪은 건 아니다. 학교, 동아리, 팀플, 직장생활을 겪으면서 이득이 될 때 찾고 그렇지 않으면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때마다 좌절했다. 아마도 세상이 아직은 희망이 있고 아름답다는 걸 믿고 싶어서였을 거다.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론 일생을 함께 하고 싶은 동료들도 만났지만, 대부분은 가만히 있으면 눈 뜨고 코 베어갈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잘해보려고 고민하던 중 이 글귀를 만났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걸. - 김영하 『말하다』 38-39쪽


김영하 작가의 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을 맞추느라 고생하느니 집에 가서 책 한권 더 보는 게 낫다니.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내가 이해하려면 모두를 품을 수 있다는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를 떠나면 내가 더 잘해줄걸 하면서 자책했는데. 결국 인정해야했다. 내가 모든 사람을 맞출 수 없다는 걸. 맞춰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서서히 인간관계를 줄여나갔다. 최소한의 약속만 잡고 남은 시간에 책을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걱정 근심을 잊는데 최고의 처방약이었다. 그의 책을 다 읽어가면서 다음 책이 없음에 대한 불안감이 찾아올 때면 그는 인자하게 두통약을 내미는 약사처럼 다음 책을 내밀었다. 스토리 전개속도가 웬만한 드라마보다 빠른 그의 소설은 모든 잡념을 잊기 딱이었다. 김영하 작가의 책도 많이 봤다. 묘사와 상념이 많은 책보다는 스토리가 펼쳐지는 소설이 마음의 빈공간을 채워줬다.


관계를 줄이고 책을 읽으면서 나타난 변화는 3가지 였다. 첫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뒤돌았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이 없었다. 둘째, 몸이 덜 피곤했다.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잡고 말을 하는데는 큰 에너지가 드는데, 관계를 줄이니 에너지가 아껴지는 기분. 게다가 큰 사건사고에 별로 휘말리지 않았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조직에서 터지는 사건사고는 모두 '술자리'에서 벌어졌다. 셋째, 책 읽기를 통해서도 사회성이 발달한다는 것. 오히려 타인을 이해하는데 더 수월해졌다.


모든 불상사를 겪고 나자 조나단 노엘은 사람들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 해야만 평화롭게 살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사실 두려웠다. 사람을 적게 만나면 나의 사회성이 소멸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하되,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에게 아쉬울 게 없었다.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 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그 사실을 끔찍하다고까지 표현했지만 그걸 인정해야만 자유를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것도 내가 나를 무리하게 합리화하는 과정이었다.

캐나다 요크대학 연구결과에 의하면, 실제로 소설을 이해할 때 사용하는 뇌 부위가 인간관계를 다룰 때 사용하는 뇌 부위와 상당부분 일치한다고 한다. 등장인물과 그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심리를 해석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실제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들(잘 찾긴 어렵지만)과 일을 해보면 결핍이 느껴지거나 무언가에 집착하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다. 이미 책 속에서 많은 이들과 상호작용을 마친 후, 현실 인생에서는 닥치는 일은 차분히 대처하고 마음의 중심을 자신에게 잡는 사람. 바로 책 읽는 사람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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