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Nov 06. 2019

엄마 나이는 아이 나이와 같다

애가 어리니까 엄마도 어리게 봐요

아이를 낳고나서 새롭게 알게된 세상과 기분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서른에 아이를 낳든,

마흔에 아이를 낳든,

엄마는 아이나이 따라간다.




“몇 살이야?”

힘찬 붓글씨 같은 주름을 구기며 할머니가 물었다. 푸근한 인상은 시골에 혼자 계신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어디가서 말하기가 부끄러운 나이지만 나이 지긋한 할머니 앞에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서른셋이요”   

  

대답을 들은 할머니 표정이 오묘했다. 고개를 갸웃하던 할머니의 시선은 내 눈보다 낮은 곳을 향해있었다. 그 곳에는 버스 장난감을 양손에 쥐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그제야 ‘내 나이’가 아니라 ‘아이 나이’를 물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세살이에요.”     



그날 오후, 싱크대 밑에 덩그라니 버려진 드라이아이스 포장이 보였다. 아침까지만 해도 얼음으로 묵직했던 포장이 오후가 되자 텅 비어버렸다. 갑자기 우울감이 몰려왔다. 드라이아이스가 증발하듯, 이제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는 구나. 이제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사는구나.     


침울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낯선 여자가 다가왔다. “라하 엄마시죠?”, “아, 네”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치려는데 그녀의 한마디가 나를 붙잡았다. “시간 되실 때 차 한 잔해요. 예담이가 라하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은 언니나 친구들이 엄마모임을 조심하라고 했었다. 괜히 나갔다가 남이랑 비교하게 되고 말 잘 못했다가 뒷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직장생활 때도 그랬다. 괜히 사적인 모임에 갔다가 정치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고, 잘나가는 동료를 보며 열등감에 절어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데 마침 아이가 어린이집 친구 이야기를 했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예담엄마에게 연락하니 모임장소를 알려줬다.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길에서 마주쳤던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다들 초면이라고 했는데, 창밖에 보이는 그녀들은 이미 친한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엄마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라하엄마, 이리오세요.”     


엄마들은 격하게, 반갑게 맞아줬다. 아무래도 ‘라하’라는 이름 자체로 들떠 있는 듯했다. 어색한 표정을 감출 틈도 없이 그녀들은 아이들을 화제로 유려한 대화를 이어갔다. 쉬지 않고 떠든 입에게 잠시 수분을 공급하는 사이, 한 엄마가 용기를 내서 엄마들의 나이를 물었다. 한 때 앳된 소녀였던 엄마들은 목소리를 낮춰 자신의 나이를 말했다.       


“제가 제일 많을 거 에요. 마흔…”

이 자리를 주도한 예담엄마가 입을 열자, 주변 엄마들이 깜짝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마흔으로는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화장기 없는 투명한 피부, 부피감이 있는 입술은 여전히 30대로 보였다.

“애가 어리니까 어리게 보더라고요.”     


예담엄마의 말이 들린 순간, 그동안의 우울감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나는 보이지 않고 아이만 두드러진다고 여겼는데, 아이의 기운이 엄마의 세월을 가려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아이와 놀아주기 위해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팔의 절반도 벗어나지 않던 몸짓은 체조선수처럼 커져있었다. 의미를 둔적 없던 파란색 버스에 행여 눈 모양이 그려져 있으면 ‘타요봤다!’하며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확실히 아이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있었다.   


첫 아이를 20대에 낳든 30대에 낳든, 엄마나이는 아이의 나이에 따라가는 것 같다. 그 나이가 하고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들에 엄마도 함께 깊숙이 빠져든다. 엄마도 아이처럼 똑같이 1살이 되었다가 2살이 되었다가 3살이 된다.     


모임에서 본 엄마들은 다들 친구 같았다.  마흔살 예담엄마든, 서른일곱살 지우엄마든, 서른세살 라하엄마든 세살 아이들의 엄마는 같은 반 친구가 된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요의가 느껴져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멀찍이 엄마들이 보였다. 꺄르르 웃는 모습이 마치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파안대소하는 여고생 같았다. 


각자 어떤 길을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시간은 그저 어린 아이였다.     


문득, 나이를 물었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 할머니는 정말 내 나이를 물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 할머니의 묘한 표정, 할머니는 정말 나를 세살로 봤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낳고 어려졌으니까.      

이전 06화 아토피 아기, 갸루 엄마를 바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