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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16. 2019

오후 3시,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시간

엄마가 마중나온 아이, 시터가 마중나온 아이

아이를 낳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세상과 기분 좋은 변화에 대해 기록하고 소회를 적습니다.





오후3시 북적이는 도로변,

울고 웃는 아이들의 표정이 보인다




오후3시, 아파트 앞 도로변에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버스정류장이나 표지판은 없지만 저곳에 하원하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차량이 선다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노오란 버스가 하나 멈춰서고 아이들이 한두명씩 내리기 시작한다.


첫번째로 내린 아이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그 아이는 버스 안에서부터 창밖에 보이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는 토끼처럼 버스 계단을 껑충껑충 튀어내리더니 엄마에게 와락 안겼다. "엄마, 보고싶었어요!"하고 외치는 아이와 "엄마도"라고 대답하며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는 엄마. 고작 7시간의 이별이었지만  엄마와 아이가 만나는 순간은 70년을 견딘 이산가족처럼 극적으로 보였다.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가장 마지막에 내린 아이였다. 그 아이는 다른 애들과 달리 내리는 모양새가 거북이 같았다. 그 아이가 버스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오니, 엄마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한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주머니도 아이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다. 하원차량 선생님께도 정감있게 인사하셨다.


아이는 아주머니를 흘끗 보더니 무표정으로 앞질러 갔다. 아주머니가 손을 잡으려고 하자 손을 뿌리쳤다. 작은 몸으로 동요하는 감정을 표현하며 한발짝 앞질러 빠르게 걸어갔다. 아주머니는  엄마들 무리에게 눈인사를 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5~6살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걸음걸이는 아주 빨랐다. 아주머니는 그 아이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갔다.

누가 봐도 아주머니는 엄마가 아닌 시터였다.


처음엔 아이가 버릇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오지 못한게 섭섭하더라도 아주머니도 사람인데 그렇게 뾰루퉁하게 주변사람이 더 민망해지는 표정을 지었어야 했는지. 아무리 '고용주' 입장이라지만 비인격적인 대우는 사회적 문제로 자주 언급되는 '갑질'이다.  아이에게 화살을 돌리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가 고용주, 갑질을 인식하고 행동할 리가 없었다. 그저 아이는 친구들은 다 엄마가 나오는데 혼자 시터가 나왔으니 서운했을 터. 그 서운함의 깊이과 농도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요즘 일을 하는 엄마들이 많다보니 시터가 보는 아이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동네마다 차이가 있을수 있지만 여전히 시터보다는 엄마 비율이 높은 듯 보였다. 오후 3시에 아이 하원을 할수 있는 엄마들은 무슨 직업을 가졌을지 궁금했다. 프리랜서? 시간강사? 작가? 아니면 공무원? 은행원? 갑자기 다가가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알수 없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대부분 전업주부 같았다.


그녀들이 처음부터 전업주부이진 않았을거다. 보통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 두진 않는다. 커리어를 포기하는 경우는 대부분 출산을 하면서다. 내가 아는 유일한 전업주부는 앞동에 사는 예담엄마인데, 시터를 쓰는 비용보다 월급이 더 적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월 200남짓 받는 돈을 받기 위해 모르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시터월급+기회비용(시터는 부모만큼 사랑을 주지 않으니까)이 드니까 직장생활을 포기하게 되는거다.


문득, 캐나다의 보육환경에 대해 들려준 사람이 생각났다. 바로 내 전화영어 선생님 재닛. 복직하면 바로 영어로 업무를 해야해서 휴직 중에 틈틈이 전화영어를 했는데, 시터손을 뿌리치고 간 아이를 본 날 재닛에게 교과서에 없는 질문을 했다. "캐나다의 양육환경은 어떤가요?" 재닛은 캐나다도 시터가 있지만 보통 직장이나 대학 안에 Kids care center가 있어서 일하는 부모들이 걱정없이 아이를 돌본다고 했다.


나는 재닛에게 한국적인 질문을 던졌다. 국가나 단체에서 운영하는 보육기관은 필수교육과정을 제외하고 남은시간에 통합보육(이라고 쓰고 방치)하지 않는지. 그녀의 대답은 놀라웠다. 국가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고 부모의 피드백도 정성스럽게 반영하고 있어 교육과 보육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 자신이 보냈던 Kids care center에 대한 만족도는 100이라고 했다.


아직 100% 만족스럽진 않지만, 우리나라도 날이 갈수록 가족돌봄관련 복지가 좋아지고 있다. 2019년 10월부터 육아기 단축근무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고, KPI만 달성하면 주40시간 내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 복지천국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지만, 과거에 비해 점점 나아지고 있는건 사실이다.


완벽한 환경이 조성되길 바라지만 아직은 갈길이 멀긴 하다. 그래도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목소리를 내야한다. 나도 복직을 하면 단축근무를 신청할 생각이다. 조금 유난스럽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만, 쓸수 있는 제도는 용기를 내서 써야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큰 걸 바라는게 아니다. 모든 아이가 하원하면서 사랑하는 부모와 상봉 할 수 있길, 거북이 느림보 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없길. 그저 그것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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