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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Nov 27. 2023

[팀장]에 대한 시선

축하해, 부럽다, 어떡하냐, 괜찮아? 등등


삶을 이야기 하던 그룹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룹으로






팀장이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뒤,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 수입상과 마라톤 회의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핸드폰이 몇초 단위로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직감했다. 발령문이 뜬 거다. 정기 인사시즌이 아닌 시점에 뜬 발령이라 궁금증을 자아냈을 터.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고 싶었지만 눈 앞에는 후덕한 아저씨들이 빈 술잔을 내밀고 있었다. 한 잔, 두 잔 마시던 술은 일본식 카메(甕, 세숫대야잔)에 담기고 수입상과의 회식은 언제나 그랬듯 한일전으로 치달아 경쟁적으로 마셔대고 있었다. (참고로 다른나라 출장가서는 술을 안 마시는데 꼭 일본에 가면 먹게 된다. 가위바위보도 지기 싫은 한국인의 DNA라고나 할까.)      


시즈오카산 사케는 물보다 연하다는 듯 꼴깍꼴깍 마셔대는 수입상에게 이번에는 내가 졌으니 그만 마시자고 하려는데, 옆에서 이 꼬라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센터장님이 ‘방금 시드니는 팀장이 되었습니다!’라고 소리쳤다. 아니.. 저 여자가.... 나를 꼬꼬마 신입사원 시절부터 보아온 수입상 아저씨들은 들고 있던 잔을 다 내려놓고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고 소리쳤다. 여기서 흐름을 끊으면 안될 것 같아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 카메(세숫대야잔)을 들고 외쳤다. ‘자, 그럼 저를 위해 올해는 000억 합시다!’. 입 안으로 후지산 근처에서 자란 쌀로 만든 술이 쏟아졌다. 그 뒤 기억은 아무것도 없다. (또 참고로, 그날 나의 주사는 역대급이었다고 한다.)      



일본의 술독(?) 카메


한국에 돌아와서 출근을 하자 팀장이 된게 확 느껴졌다. 보는 사람마다 축하해요, 라고 말해줬고 누군가는 벌써 팀장이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뭐든 타인의 사사로운 감정일 뿐, 내 머릿 속에는 여전히 ‘망했다’는 생각 뿐이었다. 여러 가지 사업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문제는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한때는 회사에 오는 이유가 점심시간이었다. 12시가 되면 친한 동료들과 모여서 회사 욕도 하고 상사 욕도 (마구)하고, 소소한 소문과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이 이 회사를 다니는 이유였다. 그런데 팀장이 되면, 일단 점심시간은 낙이 될 수가 없었다. 언제 상사들이 부를지 모르기 때문. (요즘 이런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일부 IT/스타트업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아는 기업들은 여전히 이런 문화가 만연하다.)   

  

팀장의 상사는 부장/실장/본부장인데, 이들은 대체적으로 40대 후반~50대 중년들이다. 나 같은 30대 직원들 관점에서 성격이 좋든 안 좋든 잘생기든 못생기든 일단 불편한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제를 이야기 할 수도 없고 주로 듣기만 해야하고 공감대가 없는 세대라고나 할까. 직원들도 부/팀장들과 점심을 먹는게 싫겠지만, 부/팀장들도 상사들과 밥 먹는게 싫다. 상사와 점심을 먹는 시간은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다. 산 위로 돌을 밀어올리면 계속 떨어지고, 올리면 떨어지듯 한번 넘겼다 싶으면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느낌. (물론 one of 상사들 중, 함께하는 점심이 기다려지는 분들도 10% 정도 계신다. 하지만 대부분은...^^)       


게다가 직원들가 임원들의 화제는 물성 자체가 다르다. 직원들은 취미,커리어,연애 등 에너지를 연소하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대화가 오고간다. 대화의 꼬리를 물다보면 서로 공감대도 찾고 생산성있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반대로 연차가 높은 상사들과의 화제는 퇴직,골프,이혼... 심지어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참 대화를 하다보면 어디서 리액션을 해야하는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뿐이다.


한 상사 분이 집에서 아침을 먹으려면 고등학생인 아이 등교시간에 맞춰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주변 분들이 깔깔 웃어댔다. 같이 따라 웃긴 했지만 외벌이에 임원씩이나 되는 남편의 아침을 따로 안 차려주는 배우자의 이야기가 어디가 웃긴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후배들의 소개팅 이야기를 들으며 대리설렘을 느끼곤 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설렘은커녕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다.      


퇴직 후에 자사주와 연금처리를 이야기 하는 어른들 사이에 어린 후배들과 히히덕 거리는 동기가 보였다. 팝콘이 터지듯 피어나는 벚꽃처럼 파안대소하는 동기의 치아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면 팀장을 그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 저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점심시간으로 인한 우울한 마음에 의자를 젖히고 사무실 천장을 바라봤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톡톡 쳤다. 나보다 2-3년 입사 선배이자 나이는 5살 이상 많은 C선배 였다. ‘시드니 팀장님, 축하해요.’라고 말하는 그. 분명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묘하게 슬퍼보였다. 자세를 고쳐앉고 일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잘 할거라고 격려해주는 C선배를 보며 죄송한 마음과 동시에 여러 부담을 짊어지고 나를 팀장으로 발령을 낸 상사들이 생각났다.  미안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팀장자리.


많은 사람들의 부담이 모여 만들어지는 이 자리.

이렇게 된 거, 하긴 해야겠는데. 뭐부터 해야하지.


애먼 마우스 휠을 만지작 거리다가 얼마 전 지역 지사로 좌천된 Y과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린 팀장의 고충 1. 나보다 선배인 직원들에 대한 직함을 어떻게 해야할까?
   - 일단 평소처럼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프로젝트를 Leading을 해야하는 상황이 오면서 '00과장님(선배)은 이걸 해주시고요'라고 하곤 한다. 그럼 묘하게 기분 나빠하는 선배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땐 몸둘 바를 모르겠다. 계급이 깡패라곤 하지만, 별로 깡패가 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그분들의 역량이 발휘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갈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일단 '살려주세요' 권법을 쓰고 있는데 (일단 무릎부터 꿇는) 퇴근하고 현타가 와서 좋은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이전 02화 [팀장]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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