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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Dec 11. 2023

[일] 죽은 사업 살리기


투자계의 똥손 시드니가
어떻게 수익화를 합니까


 




팀장이 되고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건 바로 이 사업 때문이었다. (우리 파트 안에는 여러 가지 사업이 있는데 편의상 ‘M사업’이라고 칭하겠다.) 내가 입사하기 전 이 사업은 우리회사 효자사업이었다. 사업은 연 10%이상 성장했고 손익도 좋았다. 당시 담당자들은 M사업으로 인해 승진하고 보직을 달았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23년 지금, 이 사업은 회사 최대 난제가 되어있었다. 사업은 정체에 손익은 곤두박질 쳤고 생산비 증가로 인해 원가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게다가 M사업 수입상과 가격협상에서 번번이 실패했는데, 반복되는 협상실패는 담당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모두가 좌절감에 우리 파트를 떠나고 누군가는 내쳐질 때 딱 한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남아있었다. 그게 하필 나였다.       


<막내팀장 일기> 1화에서도 언급했지만, 내 주식은 – 40%다. 투자나 재테크 관련해서는 역대급 똥손을 자랑하는 편이라, 보통 가정에서 와이프들이 통장관리를 하지만 우리집은 반대다. 월급이 나오면 전액을 남편에게 송금하고 용돈을 받아쓴다. 주식을 샀다하면 마이너스에, 은행직원의 기가막힌 재무 포트폴리오로 가입한 펀드도 곤두박질 쳤다. 나라는 인간과 돈은 상생할 수 없는 관계로 정의내리고 멀어지고 있는데, 회사 돈을 수익화 하라니.      


일단 앞서 말한 것처럼 히스토리 분석은 끝나있었다. 정성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는데, 정량적으로 어떤 포인트에서 개선을 해야하는지 잘 이해가 안됐다. 혼자 품고 있어봤자 절대 해결책이 안나올 것 같아서 팀원과 상의를 했다. 참고로 내 팀원은 공대출신에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아이다. 팀원 K는 한두시간 엑셀을 돌려보더니 이슈 몇가지를 찾아냈다.      


결론적으로 우리 파트에서는 수입상과 가격인상을 해야했다. 하지만 앞선 선배들도 번번이 실패한 가격협상을 쪼무래기인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M사업의 수입상은 영리하기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간 날고 기는 선배들도 다 혀를 내두른 노련한 사람들인데, 사업경험은 신생아 수준에 이제 기저귀를 막 뗀 내가 어떻게 그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미국출장에 가 있는 실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현재 분석된 데이터와 해결책을 팩트 중심으로 보고했다.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실장은 일단 비행기 표를 끊으라고 했다. 시드니 말이 일리가 있으니 가서 그대로 이야기 하자고. 몇 개 백데이터만 더 정리해달라고 했다. 해결의지가 강한 실장님이 있어 든든했지만, 사실 두려움이 가득했다. 전화를 끊으며 속내를 넌지시 드러냈다.     


“실장님 근데, 좀 무섭습니다.”

“뭐가 무서운데?”

“협상이 될까요?”

“될 거야. 준비 많이 했잖아.”      


수입상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왔고 약속 장소에서 실장님과 나와 담당자 여러명이 앉아있었다. 한국에서부터 이날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지 장염이 와버렸다. 모두가 협상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데, 10분에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법인 직원들이 준비해준 지사제를 먹었지만 여전히 배에서는 천둥번개 소리가 났다. 나 오늘 괜찮을까? 식은 땀이 줄줄났다. 한바탕(?) 해우(解憂)를 하고 테이블에 앉는데, 실장님이 목소리를 확 깔며 한마디 한다.     


“나랑 시드니, J팀장 빼고 다 나가라.”      


칼피스 워터... 장염에 좋다


나와 실무진들 눈빛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M수입상과 교류하던 담당자들을 다 빼버린 거다. 담당자들이 없으면 대화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실패한 협상에서 관여했던 사람들이 또 자리를 차지하면 영리한 수입상들에게 휘둘릴 가능성도 높았다. 실무진들이 확 빠지고 나니 좁았던 회의실이 황량하게 느껴졌다.      

실장님, 나, 그리고 법인팀장. 우리 셋이 할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에 머리도 지끈거리고 장도 뒤틀리는 난리 부르스 상황에 M사업 수입상들이 등장했다. 그들이 용안을 본 순간, 장에서 성난 토르의 망치 소리가 들렸다. 할 수 없이 한국에서 가져온 최후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대원제약 포타겔. 예전에 한번 먹고 일주일 간 변비에 시달린 적이 있어 잘 먹지 않는데, 이 상황에서는 일단 뭐든(?) 막아야했다.          



니가 날 살렸다



다행히 포타겔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토르가 화를 멈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앞에는 흰머리가 머리 전체를 덮은 70대 할배 두명이 앉아있었다. 단연코, 내가 태어나서 본 할배들 중에 가장 카리스마 있었다.

 

이 할배들과 5시간 후, 과연 우리는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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