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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Dec 25. 2023

[사람] 전설의 티키타카

환장의 티키타카에서 절 구해주세요

환장의 티키타카 현장
스페인 아저씨의 심정으로






2015년 2월, 바르셀로나 캄프누 경기장에 FC바르셀로나 경기 직관을 간 적 있다. 당시 FC바로셀로나는 전설의 삼각편대로 불리는 메시, 네이마르, 수아레즈가 뛰고 있었다. 축구라고 하면 회사 체육대회에서 본 전설의 동네축구와 사장님이 공을 잡으면 모세의 기적처럼 수비수가 갈라지는 성경 속의 한 장면만 보다가 실제 예술적인 티키티카를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슬프게도, 내가 방문한 날 FC바르셀로나는 전설의 삼각편대가 모두 출전했음에도 말라가에 1:0으로 졌다.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스페인 아저씨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화를 냈다. 스페인어는 ’올라!‘ 외에는 한마디도 몰랐지만 그들의 언어가 쌍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전설의 삼각편대에게 쌍욕을 날리는 스페인 아저씨의 심경으로 회의실에 앉아있다. 히트제품을 만들거나 사업구조를 변화시키는 등 회사에서 전설의 업적을 남겨 최단기간 부장이 된 세 사람이 앉아 티키타카를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점잖게 대화를 하더니 각각 소속된 본부의 KPI가 공개되자 점점 중동식 침대축구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날 우리가 모인 이유는 글로벌 유통사 C사에 대한 전략 때문이었다. C사는 대형유통 체인으로 물량을 많이 가져갔지만, 자신들의 마진은 고정해두고 우리에게 가격인하와 광고비 투입을 요구했다. C사와 거래를 하면 매출은 높아지지만 거래규모가 커질수록 손익이 줄어드는 형태였다. 영업본부 입장에서는 숫자가 나온다는 점에서 끌고 가고 싶은 유통사지만, 전략이나 마케팅본부 입장에서는 가격인상을 하거나 광고비를 줄여야 했다.     



수아레즈가 말한다. 가격인상을 하게 되면 결국 소비자 매출이 줄어든다. 인상은 안된다.


네이마르가 말한다. 가격인하 또는 유지 해주면 우리회사 손익이 안 좋아진다. 인상하자.


메시가 말한다. 다들 지엽적인 소리. 브랜드와 제품력을 키워서 가격관계없이 소비자 선택을 받게 해야한다.       



다 각자 맞는 말이다. 사실 그들의 주장은 마케팅원론이나 경영서적 몇 권만 봐도 알수 있는 이론적인 말들이다. 모두 이론을 말하지만 현실화 해야하는 사람은 나라서, 내 머릿 속에는 어느정도 현실과 부합한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C사 바이어는 일본인이었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라 C사의 전체 운영전략과는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을 공략하면 협상에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삼각편대 앞에서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쓸모없는 회의를 길게 가져갈 필요가 없었으니. 내가 한마디를 거들게 되면 연장시간이 늘어난다.   

    

마음 속으로는 "시간낭비는 그만하고 저는 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셋 다 직간접적으로 내 상사들인데다 회의를 듣다보니 전설의 삼각편대들이 살짝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내 자랑을 할때는 너무 신나지만, 남의 자랑을 들을 때는 무기력해지고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고나 할까. 이 회의의 클라이막스가 지나가면 경기 후에 바닥에 주저앉는 축구선수들처럼 곧 주저 앉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메시가 나를 쳐다본다.      

"남팀 생각은 어때?"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다들 제발 조용히 하라는 말이 입 바깥으로 나올랑 말랑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저 사람들은 내 인사권자다. 태도가 망가지면 끝이다.      

"저는 세 분 말이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제 입장에서는 C사와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서로 상생하는 구조로 사업을 운영하려고 합니다. 가격인하든 제품력이든 중요하지만 꾸준히 사업을 일궈나가고 그들이 우리와 거래로 인해 손실을 보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저희도 매출/손익을 안정화해야지만, 파트너사가 무너지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요."     


다행히 전설의 삼각편대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팀장이 되고 나서 힘든 것 중 하나는, 직속 상사들이 임원들이 되면서 이분들과 의견조율을 하는 거다. 실무와 한 발짝 떨어진 사람들이 각자의 성공경험을 기반으로 말을 한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신이 아는 걸 말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공감이 안된다. 자신의 경험보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거나 타 부분까지 고려한 사고를 한 분들이 더 신뢰가 가고 멋져 보인다.      


카탈루냐의 기운이 가득했던 뜨거운 회의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메시가 뛰어와서 같이 탄다. 남팀장 덕에 회의가 잘 정리됐다고 칭찬을 해주던 메시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네이마르와 수아레즈 욕을 한다. "저 인간들말 다 틀렸어. 저딴 게 뭐가 중요해. 역시 중요한 건 000지! (000은 메시의 분야)".    

  


욕쟁이 스페인 아저씨가 다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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