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Jan 15. 2024

[팀장] 님 과장님 부장님 대리님 선배님

나를 부르는 다섯개의 이름



어린 팀장의 특권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멕이는 걸까요




동네 골목길을 걷는데 뒤에서 누군가 ”사모님!! 사모님!!“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 부동산에 들린 고객님이 지갑을 놓고 갔거나, 교회 열혈 신도 집사님이 우연히 마주친 목사님의 아내를 부르는 소리겠거니 하고 지나가는데, ‘사모님‘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사모님! 아니, 사모님!!!


예사롭지 않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는데, 사모님을 애타게 부르던 입이 지척에 있었다. 한 손에는 우유팩과 전단지를 들고 있는 40대 정도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부르는 ‘사모님’은 유모차를 밀고 가고 있던 나였다. 그때 충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데리고 다녀도 그렇지, 이렇게 뽀얗고 앳된 새댁한테 사모님이라니! 추레한 행색만 봐도 남편이 사장이 아닌 걸 알텐데 멕이는 건가 싶어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단지를 받아왔다.


그 후로 몇년 후,,, 팀장이 되고 가끔 그때 떨떠름했던 기분이 데자뷔된다. 상사든 후배들이든 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팀장’이라고 제대로 부르는 사람은 반의 반도 안된다. 선배님! 과장님!! 특히 누가 나를 ’부장님!‘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확 상한다. 아니 어딜봐서 내가 ’부장‘이라는 거야. 자고로 회사 부장님은 눈가 옆에 지네 옆다리 같은 주름이 늘어져있어야하는데, 눈에 주름 하나 없는 나한테 왜 부장님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기분 좋으라고 직함을 높여 부르는 걸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또 멕이는 것 같다. (배부르네요.)


그래도 좀 기분 좋아지는 이름도 있다. 누가 ‘대리님~’이렇게 부를 때. 사실 대리에서 과장으로 매우 힘들 게 진급한 편이라 대리시절이 정말 힘들었는데, 팀장이 되고나니 누가 우연히 불러버린 ‘대리’라는 이름에 설레곤 한다. 특히 바로 밑 부사수가 대리급이라 둘이 다닐 때가 많은데, 가끔 시력이 매우 나쁜 사람이 ‘두분은 동기신가요?’ 묻는다. 그럴 때마다 가만히 있지못하고 말한 사람 등짝을 탁 치며

“나를 대리로 본거야? 그런거야?”  (주책)

라고 하며 호들갑을 떤다.


사실 날 뭘로 부르든 아무 상관없다. 팀장이든 대리든 과장이든 부장이든 선배님이든 나라는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일단 누군가 부르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이렇게 직함이 헷갈리는 시기도 얼마나 길게 갈까 싶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 한가지 직함으로 모일테고, 또 언젠가 회사를 떠나면 부를 일도 없어질 테니.

부르고 싶은대로 맘대로 부르길.



아, 00 실장님 자꾸 부장이라고 부르실 거면 그냥 승진을 시켜주세요! 부장 안 시켜줄거면서 자꾸 부장이라 부르시면 저도 00실장님을 전 사원 보는데서 사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전 08화 [사람] 사고치면 제발 바로 말해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