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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Jan 22. 2024

[사람]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험담에 대처하는 자세


할일 없는 사람들의 등장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때






입사 후 첫 부서가 기획부서였는데, 주 업무가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다. 신방과 출신에, 오랜 신문스터디가 도움이 됐는지 입사 직후 ‘글을 잘 쓰는 신입사원’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본부 바깥으로 나가는 보고서는 주로 내가 담당했고 업무 외적으로 연하장, 신년사, 편지, 자제분들 자기 소개서까지 작성하곤 했다. 무튼, 그때도 ’남작가‘로 불렸다. 타고난 글쟁이는 아니었지만 글 쓰고 글 읽는 걸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커리어도 그쪽으로 형성됐다.


팀장이 되고나서도 ‘보고서 잘 쓰는 팀장’으로 인식되곤 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 보고서를 쓸 때 주목도를 올릴 수 있는 워딩을 선택했다. 예를들면, 보통 사람들이 보고서를 쓸 때 현상위주로 작성하지만 나는 현상에서 나오는 인사이트를 주로 적었다.  ‘00품목 영업이익 마이너스‘라는 상황이 있으면, ’00품목 영업이익은 간접비 항목 중 000계정 과다배분으로 마이너스 심화‘라고 직관적으고 구체적으로 쓰곤 했다. 어떤 글을 쓰던 초등학교 1학년이 봐도 쉽게 읽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쓰기 때문에 쉽게, 스토리 중심으로 쓴다. 그래서 글 잘쓰는 팀장이라 불리는데, 이게 단점 될 줄 몰랐다.


회사 익명게시판이나 블라인드에 회사에 대한 험담이 올라온다. 보통은 감정적이거나 타인의 인격을 무너트리는 저급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가끔 문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게 바로 나다.

“이거, 너가 쓴 거 아냐?”

친한 동료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나에게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같이 핸드폰을 열어서 보여준다. “게시글 0”. 내가 한 거면 했다고 하는 편이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누명을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현장에서 논란을 종결 시킨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비호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비교적 웃는 얼굴이라 (글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작가 시드니는 웃상입니다.) 얼굴에 침은 못 뱉지만, 묘하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이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결국 그게 내 귀에 들어온다. 그럴 땐 그냥 그 사람이랑 맘을 터놓고 이야기 한다. 대부분은 오해였다고 미안해하거나, 의외의 절친이 되기도 한다. 적이라고 여겨질 때 돌아서는 게 아니라, 더 가까이 두고 나에 대해 좋은 여론을 퍼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기도 하다.



물론, 아름다운 경우에 한 해서다. 한번 어떤 여자 부장님이 나에게 메신저를 걸었다.

“시드니, 잘 지내?”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실까요.”

“너가 00 실장 딸이라던데? 너 그 사람 끄나풀이래.”

00실장은 과거 내 상사로, 나를 예뻐했던 분이다. 여자 부장님은 00실장과 실장 승진 경쟁에서 진 사람이라 00실장에 대한 앙심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에 대한 분노와 시기가 나한테까지 온 거다. 이런 경우에 당황하며 “네? 아니에요.”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날 따라 이성의 끈이 잘려나가서 이렇게 말했다.


“부장님, 그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에요?”

“응? 그건 내가 말해줄 수 없지. 그 사람도 보호해야지.”

“아, 그렇군요. 그 사람한테 전해주세요. 내 눈 앞에 걸리지 말라고.“

“어후, 뭘 또 그렇게 받아. 그런 말도 있다는 거지.”

“아뇨. 저에 대해 유언비어 퍼트리는데, 제가 왜 가만히 있어요. 무튼 만나면 얼굴에 침부터 뱉을거니까 마스크 잘 쓰고 다니라고 전달해주세요.^^”


신기하게도 다음날 카페에서 만난 여자부장은 마스크를 꽁꽁 끼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줄행랑을 치는 그 여자.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아이유.. 본문과 무관함...



필요한 적은 가까이 두되,

불필요한 적은 철퇴를 가하는 것도 괜찮다.


이상 안 순한데 착한 시드니 팀장이었습니다.



ps. 독자님들에게는 한없이 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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