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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Apr 28. 2024

Prologue. 18시 15분, 새기는 생각


“아까 너무 세게 말했나.”


저녁 6시 15분,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퇴근시간이라서 그런지 10초 단위로 사람들이 점점 쌓인다. 도미노가 놓이듯 늘어나는 인파 사이에서 갑자기 강풍에 몰아치는 너울성 파도처럼 후회가 확 밀려든다. 아무리 기분이 상했어도 그 정도로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손목만 잡으면 되는 걸 멱살을 잡아버린 회의가 생각난다. 다시 생각해보니 한 손으론 멱살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뺨도 때린 것 같기도 하고.


10분 정도 기다린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이미 전 정류장에서 승객을 가득태운 버스가 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필사적으로 뛰어가서 승차카드를 찍으려는데, 내 뒤에 줄을 서있던 사람이 내 어깨를 확 밀며 먼저 카드를 찍는다. 어이없는 순간도 잠시, 자아성찰하던 마음이 분노로 바뀐다.



“근데, 그 무례한 말에 난 왜 웃었지.”


침묵이 길어지거나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피식, 웃어버리는 습관이 있다. 아까 웃지 말았어야 했는데,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내가 개그맨도 아닌데 굳이 왜 거기서 농담을 하면서 넘어갔을 까.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절대 웃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비슷한 생각을 불과 며칠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 난 왜 또 같은 후회를 하고 있는 거지?


그 이유는 내가 관성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20년 동안 자신들만의 철학으로 날 키워주셨고, 대학, 사회생활하는 동안 내가 나를 이렇게 키워왔다. 약 몇십년 동안 만들어진 나는 바뀌기가 쉽지 않다. 그런 이유로 항상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후회를 한다. 언제 나는 후회를 안 할 수 있을까.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승객의 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온다. 흰 목을 더 두드러지게 하듯 새겨진 짙은 글자들. 고운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새겨야 했던 저 말의 뜻이 궁금해졌다.      


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      


저 문장의 뜻을 확인하고, 가방에 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평소 새기고 싶었던 말 10문장을 쫙 적어 내려갔다. 이 문장들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보단 훨씬 내가 나아지지 않을까. 아니, 더 나아지진 않더라도 퇴근길마다 후회로 가득 찬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퇴근길 새기는 마음, ‘퇴근 타투’ 연재를 시작합니다.     

                                   




Faber est suae quisque fortunae
모든 사람은 자기 운명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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