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드니 Aug 30. 2024

아이 좀 잠깐 맡아주시면 안될까요?

잠깐만 정말 잠깐만요.



그저 평온한 날이었다.


창문 안으로 햇살이 들어온다. 직장생활 할 땐 사무실 안으로 내리친 햇살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는데, 퇴사 후 차린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천지창조의 기운이 느껴저 힘이난다. 깔끔한 공간 안에는 은은한 원두향과 함께 손님들의 수다소리가 잔잔하게 채워쟈있다.


이게 내가 바라는 삶이었다. 애초에 카페를 열 때부터 발길이 왕성한 대박 카페를 바란게 아니었다. 여러 로스티잉 대신 싱글 오리진 원두만을 취급하고 커피 본연에 집중하고 싶었다. 메뉴도 4개 뿐이다. 아메리카노, 콜드브루, 라떼, 스페셜티. 메뉴를 적게 한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간중간 설계를 해야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도 고려했다. 결국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나만의 설계사무소를 갖는거니까. 손님들에게 커피를 서빙하고 멀리서 초점없이 손님들을 바라봤다. 사람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일면식 없는 손님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했다.


간만에 맞이하는 꽉찬 행복에 젖어 카운터 옆 대형 모니터 앞에 앉았다. 카페를 오픈 후 매상 올려줄 겸 놀러온 선배가 본인 사무소 일손이 부족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카페 운영 만으로 벅찰 시기긴 했지만 건축에 대한 감을 잃으면 안될 것 같아 요청을 수락했다. 마우스를 클릭해서 설계 프로그램을 여니 빽빽한 모눈종이가 시야를 가린다. 익숙한 막막함이다.  


점선면을 이으며 구조를 잡아가는데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수다를 떨던 여성 손님들의 시선이 내 모니터에 향해있었고 손가락으로 날 가르키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장님, 직업이 뭐에요? 설계 디자이너에요?’라고 물어올 느낌.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굳이 바라진 않았다.


최대한 못 본 척하고 작업을 이어나가는데 그녀 중 한 명이 용기를 냈는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몸을 모니터로 밀착하며 작업에 집중하는 척을 했다. 눈치없은 그녀는 내가 멀어지는 만큼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때, 카페 전화벨이 크게 울렸다. 쏜살같이 달려가 전화기를 들었다. 사실 그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를 맡아달라고요?”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급했다. 전화기를 뚫고 나오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나에게 다가오던 여자가 뒷걸음질을 쳤다. 목소리는 울먹이며 사정했다. 자신의 딸이 카페 위 2층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데 선생님이 20분 정도 늦는다는 거였다. 학원 문이 닫혀있어 아이가 갈 데가 없으니 잠시만 카페 안에 들어가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목소리의 데시빌이 점점 높아졌다.


“제발, 제가 업무 중이라 지금 나갈 수가 없어서요.”


상대방은 돈을 드릴 테니 한번만, 한번만을 외쳤다. 세상이 흉흉하고 좁은 골목길이라 아이가 길에 서 있다가 화를 입으면 어쩔 거냐고 울먹였다. ‘화를 입는다.’는 말이 신경 쓰여 창밖을 보니 연분홍 니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추 하나를 매달아놓은 듯 가슴이 묵직했지만 내 원칙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저 아이의 인생에 개입했다가 만약 잘못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한번 저 아이를 카페 안으로 들이면 2층 피아노학원 아이들의 대기 장소는 이곳이 될 게 뻔했다.


“죄송합니다.”
  나직하게 외친 후 전화를 끊었다. 괜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설계작업을 집중해서 하느라 자정이 되는 줄도 몰랐다. 정리를 하고 집으로 나서는데 일본에 사는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큰일났어. 카페 인스타 들어가봐.”


인스타 아이콘을 누르자마자 빨간색 알림이 비오 듯 쏟아졌다. 대부분 처음 보는 아이디들이었고 게시글 곳곳에 저주와 혐오를 표현하는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그렇게 살지 마세요’, ‘당신은 아이가 아니었나요?’, ‘여자애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심호흡을 하고 댓글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오후에 걸려온 전화와 내용이 연결되는 듯했다. 어디서 이 많은 아이디들이 출몰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건 확실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녹담동 카페 The Block’를 쳐서 넣었다. 보통 검색을 하면 카페 기본정보가 뜨고 아래 블로그 체험단 포스팅이 뜨는데 카페 기본정보 바로 밑에 여성 커뮤니티로 추정되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커뮤니티 글>  

- 닉네임 : 여공회인싸

- 제목 : 세상이 각박하네요. (ft.노키즈존)

 오늘 워킹맘으로 살면서 가장 착잡한 날이네요. 오후 3시쯤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데 딸 아이에게 전화가 왔어요. 피아노학원 문이 열려있지 않다고.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차가 막혀서 10분쯤 늦으신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학원 문 앞에 서있으면 된다고 했지만 날씨도 쌀쌀하고 여자아이가 골목에 서 있는게 좀 그래서 아래층 카페 사장님에게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어요. 10분만 아이를 좀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실 수 있냐고 정중하게 요청했는데 글쎄, 노키즈존이라고 안된다고 하는 겁니다. 카페 안에 있는 빵도 사고 음료도 주문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일단 아이들이 카페 안으로 입장하는 것 자체가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노키즈존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민폐맘들이 있는 것도 아는데, 이 정도로 세상이 각박해 진 걸까요? 다행히 아이는 별일 없었고 피아노 선생님 만나서 수업 잘 듣고 3층 미술학원으로 갔는데.... 착잡한 기분이 가시질 않아요. 애둘 키우며 일하느라 몸은 껍데기 뿐인데 오늘은 마음까지 수렁으로 떨어지네요.

  


다급했던 목소리와 달리 글은 차분하고 교양이 있었다. 대신 댓글에는 격한 분노가 터지고 있었다. 거기 어디냐, 사장이 미친 거 아니냐, 어떻게 발을 들이는 것도 안 되냐, 그런 가게는 망해야한다, 저출산 시대에 애국했더니 결국 이거냐, 혼내줘야한다, 난리였다.


맹렬한 분노 사이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보였다. 초성 뿐이었지만 그걸 보고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ㅡ 카페이름이 영어로 된 ㅂㄹ아닌가요? 오늘 거기 갔었는데 …….

먹잇감을 못 찾아 날뛰는 좀비들 앞에서 숨소리를 들려주는 듯한 문장이었다. 그 글이 올라온 시간과 인스타그램 계정 테러가 시작된 시간은 정확히 일치했다.      





독자님들이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나요?





이전 02화 나는 아침마다 편지를 찢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